[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국의 마피아 두목 미키(매튜 맥커너히)는 옥스퍼드대 재학 때부터 대마초 장사로 돈을 벌고 담대한 용기의 존재감으로써 깡패로서 성공해 현재는 유럽 일대의 대규모 대마초 시장을 장악한 거물급 인사다. 그는 귀족들의 뒤를 봐주고 그들의 영지에 대마초 농장을 세워 안정된 경영을 하고 있다.

그는 마리화나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매튜에게 자신의 사업을 전부 넘기려는 빅딜을 벌인다. 그는 아내 로잘린드(미셸 도커리)를 끔찍이도 아낀다. 삼합회 중간 보스 드라이 아이(헨리 골딩)가 로잘린드의 자동차 수리 센터에 이어 미키의 사무실에 나타나 그의 사업을 자신이 사겠다고 한다.

타블로이드 데일리프린트의 편집장 데이브는 기사로 미키에게 타격을 준 바 있다. 파티에서 데이브가 악수를 청하자 미키는 무시하고 데이브는 복수하기 위해 사립탐정 플레처(휴 그랜트) 등을 매수한다. 미키는 오른팔 레이먼드(찰리 허냄)로부터 매튜에게 보여줬던 농장이 털렸다는 보고를 받는다.

주짓수 선수들을 거느린 코치(콜린 패럴)는 선수들이 미키의 농장을 털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레이먼드를 찾아가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어떻게든 보상하겠다고 약속한다. 플레처가 레이먼드를 찾아와 그 조직의 각종 범죄 사실의 증거물을 내밀며 2000달러를 안 주면 데이브에게 넘기겠다고 협박한다.

왕위 계승 서열 4위 프렌스필드 공작이 딸 로라가 약쟁이들과 잠적했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미키는 레이먼드 등 정예 멤버들을 급파한다. 그 과정에서 약쟁이들과 실랑이가 있었고 사고로 아슬란이란 청년이 추락사하자 조직원들은 그 사실을 은폐하고 시신을 조직 내부의 은밀한 곳에 숨긴다.

드라이 아이의 도전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하자 미키는 다시 예전처럼 거칠어지기로 결심하고 삼합회를 이끄는 조지를 찾아가는데. 최근 ‘알라딘’의 성공으로 상업적인 진가를 인정받은 가이 리치 감독이 ‘스내치’처럼 재기 발랄한 스타일의 ‘젠틀맨’으로 되돌아왔다. ‘영국의 타란티노’의 귀환이다.

‘젠틀맨’은 호화 캐스팅의 면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나리오가 완벽에 가깝게 흥미진진하고, 액션을 과대포장하거나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는다. 마치 개미가 개미지옥으로 빠져 들어가듯 관객으로 하여금 재미의 늪으로 점점 더 깊게 미끄러져 갈 수밖에 없는 촘촘한 시퀀스와 완성도로 승부를 건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에 비해 세련됐지만 그만큼 B급 정서는 완화돼 상업성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만 감안하면 초기의 리치를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이다. 여러 인물들이 쉴 새 없이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쏟아내 정신없지만 신기하게도 어느새 모든 에피소드는 한 군데로 모인다.

얘기를 장황하게 펼쳤다 깔끔하게 매조지는 솜씨는 여전하고, 시퀀스들을 늘어놓았다 붙이는 편집 기술도 훌륭하다. 특히 레이몬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우스 런던에서의 장면은 마피아 영화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할 만큼 신선하다. 미키가 바에서 피를 보는 인트로와 타이틀부터 스타일리시하다.

전체적으로는 플레처가 불현듯이 레이몬드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며 신경전을 벌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감독은 마피아 세계를 정글로 표현하면서 모든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그린다. 미키, 플레처, 데이브 등의 영국인, 유대계 미국인 매튜, 중국인 삼합회, 러시아인 아슬란 등이 구성한 미니어처다.

‘러시아 마피아는 한 번 실수하지, 두 번은 실수하지 않아’는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양극단의 이미지를 동시에 포함한다. 드라이 아이가 보스인 조지에게 “때가 되면 젊은이가 늙은이의 뒤를 잇는 것”이라고 정글의 질서에 도전하는 시퀀스는 중국과 삼합회에 대한 유럽의 부정적인 시선의 반영이다.

매튜는 미키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부자다. 그런데 하필 유대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유대인을 싫어한 이유는 그들이 고리대부업으로 부를 쌓았기 때문이다. 철학이 모든 학문의 어머니인 이유는 지혜, 덕, 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입장에서 고리대금업은 악행이었다.

왜 미국인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만한 설정이다. 미국 입장에서 그들의 조상은 개척자이지만 영국 입장에선 반역자다. 조국을 등지고 신대륙에 정착해 식민지를 개척했지만 끝내 모국을 무시한 채 새 나라를 건국했고, 영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을 쥐락펴락하는 세계의 리더가 된 미국이 아니꼽다.

그렇다고 영국인을 마냥 점잖고 정의롭게 그리는 건 아니다. 왕족을 포함한 귀족들은 미키라는 마피아와 결탁해 품위유지비를 벌고, 동네 양아치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 조폭 미화 의혹은 해석의 문제다. 미키는 ‘흙수저’로 태어나 옥스퍼드에 들어갔지만 졸업해도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걸 충분히 안다.

그는 “정글의 왕이 되려면 왕처럼 구는 게 아니라 왕이 돼야 한다. 또한 타인들이 의심을 하지 않게끔 행동해야 한다”고 수시로 뇌까린다. 의리와 정이 무너진 현대사회다. 낭만을 거론하는 건 나약한 내면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정글의 질서에 충실하게 사는 미키는 현대의 생존방식을 뜻한다.

매튜의 보디가드를 ‘모사드 꽃게’라고 부르거나 용과 사자의 대결 우화를 통해 삼합회를 비웃는 등의 유머가 매 시퀀스마다 넘친다. 감독은 플레처의 입을 통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다 쏟아내는 가운데 제 의도와 다른 영화들을 찍은 걸 자아비판한다. ‘맨 프롬 엉클’의 포스터 등이다. 2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