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워터스’, 진실과 정의 묻는 진지한 법정 스릴러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0.02.20l수정2020.02.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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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98년 대기업의 변호를 담당하는 대형 로펌 태프트에서 대표 변호사의 파트너 변호사로 막 올라선 롭(마크 러팔로)은 동료 변호사 사라(앤 해서웨이)와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어느 날 늙수그레한 농부 태넌트가 사무실로 들이닥쳐 세계 최대 화학기업 듀폰의 독성 폐기물 유출을 알린다.

그러나 롭이 푸대접을 하자 태넌트는 그의 할머니 알마랑 잘 안다고 소리친다. 롭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안 받자 직접 집으로 찾아가 자신이 어릴 때 태넌트의 농장에서 즐겁게 뛰어놀곤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의 농장을 찾아간다. 롭은 태넌트가 미치지 않았고 진실을 호소함을 확인한다.

태넌트의 젖소 190마리는 떼죽음을 당했고, 남은 2마리 중 1마리는 미쳐 날뛰다 그의 눈앞에서 태넌트에게 사살됐다. 태넌트의 불행은 그의 동생이 듀폰의 공장에서 일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현재 그들 부부는 암에 걸렸고 많은 듀폰의 직원들은 암 등에 시달리거나 죽었고, 여직원은 기형아를 낳았다.

대표 변호사 톰(팀 로빈스)의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는 롭은 한 마을사람들을 중증 질병으로 몰고 간 듀폰을 고소한다. 그리고 그들이 테프론이라는 브랜드의 프라이팬부터 거의 모든 제품에 인체에 치명적인 PFOA 혹은 C8이라 불리는 독성 폐기물질을 버젓이 코팅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데.

신문 기사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대기업 듀폰의 인류 독살을 숨긴 연 매출 25조 원의 폭리에 대한 폭로는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의 ‘다크 워터스’(토드 헤인즈 감독)를 통해 러팔로의 혼신의 연기 솜씨로 궁극의 충격을 준다. 그토록 자유를 위해 싸워온 미국의 아메리칸드림이 전율스러울 따름이다.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 폐기물은 이미 인류의 99%에 축적됐지만 듀폰은 그 사실과 폐해를 은폐한 채 돈을 긁어모으기에 혈안이다. 일찍이 그 범죄사실을 파악한 태넌트는 환경보호국, 법무부, FBI 등에 고소, 고발했지만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부가 듀폰에 매수됐다는 그의 분노가 공감을 준다.

그가 굳이 롭을 찾아온 건 대형 로펌이기 때문이 아니다. 상황을 더욱 잘 알 만한 동네 변호사들에게 의뢰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잘 아는 그들이 듀폰을 겁내서 수임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롭은 농장으로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을 본다. 그런데 뭔가 비정상적이다.

C8은 이미 마을 전체를 기형으로 만들고 암에 걸리게 한 것이다. 화학 전문가나 공무원은 듀폰과 결탁했거나 직무유기를 저지른다. 급여나 뇌물을 받거나 이권에 결부됐다. 그것도 아니면 화학 공부를 하는 게 귀찮아 듀폰의 주장이나 기존의 허술한 법만 그대로 따를 뿐 진화를 거부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더 심하다. 롭의 대선배 필은 듀폰 측 변호를 맡았고, 시골 변호사들은 대기업과 싸우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톰은 처음엔 롭의 투쟁을 허락하지만 승산 없는 지난한 싸움을 수년간 진행하는 데 지쳐간다. 로펌의 최대 목적은 수익인데 그렇지 못한 롭은 무려 4번이나 급여가 깎인다.

소송이 쉽지 않자 롭은 7만여 명의 마을 사람들을 대표할 조와 달린 부부를 증인으로 내세운다. 달린은 듀폰에 여공으로 근무한 뒤 기형아를 출산한 자신의 경험과 동료들의 경험을 증거로 세워 롭을 돕는다. 그러나 듀폰의 태넌트와 조 부부를 향한 감시와 위협은 목숨의 위험을 느낄 수준이 된다.

롭은 지하 주차장에서 승용차에 오르자마자 잠금장치부터 작동시킨 뒤 시동을 걸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고 시동 후 폭발이 없으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공황장애다. 그러나 결국 TIA라는 신경성 질병으로 쓰러진다. 소송은 10년도 넘게 진행되고 롭은 듀폰 탓에 기형아로 태어났던 버키를 만난다.

롭이 소송을 시작할 때 수집한 증거 중 하나인 버키는 듀폰의 C8 탓에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였는데 어느덧 성장해 결혼까지 했다. 이 시퀀스는 정말 서늘하다. 듀폰은 천인공노할 범죄와 구역질나는 가식으로 축재를 했고, 정의로운 자들은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었지만 변한 건 없다.

마을 사람들은 대놓고 롭 가족을 윽박지르고, 조와 달린 부부를 경원시한다. 듀폰의 찰스 회장은 청문회에서 능글능글하게 빠져나가려 하고 대중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무엇이든 닦는다는 ‘기적의 세제’가 사실은 어떤 생명이든 갉아먹는 게 충격적 진실이건만.

듀폰의 ‘만약 내가 미로를 풀 수 없더라도 미로를 만든 건 나’라는 주장은 자본주의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드러내는 공포의 표제다. 듀폰은 제2차 세계대전 중 C8을 만들어 탱크의 겉면을 코팅해 강도를 높였다. 이제 그걸 가정 조리용기에 바른다. 사람의 생명은 단축돼도 제품의 생명은 질겨지니까.

롭과 몇몇의 피해자가 듀폰의 범죄를 밝히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버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장했다. 그는 운명론자이든가, 결정론자일 것이다. 아니 주변 사람들이, 사회가, 국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듀폰이 버키를 변형시킨 게 아니라 신(운명)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게끔 세뇌된 것.

담배 회사와의 투쟁을 그린 ‘인사이더’(1999)가 연상되는 깔끔한 법정 스릴러로서 내내 소름 끼친다. 그 와중에 롭이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이라고 고백하고, 톰은 그가 시골 출신이란 걸 숨겨주겠다고 약속한 뒤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흐르는 유머까지 갖췄다. 3월 1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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