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의 소국 ‘튀니지(Tunisia)’ [김권제 칼럼]

김권제 칼럼니스트l승인2020.02.24l수정2020.02.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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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튀니지(프랑스어: Tunisie, 영어:Tunisia) 또는 튀니지 공화국은 북아프리카 최북단의 아틀라스 산맥을 따라 자리잡은 국가이다. 시칠리아 섬 남서쪽과 샤르데냐의 남쪽에 있고, 서쪽과 남서쪽에 알제리, 남동쪽에 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동쪽과 북쪽 지중해와 접한 해안선은 1,300km이다. 수도는 튀니스이고 남북 최대 길이가 756km, 동서 최대 너비가 351km로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고, 세계 92번째로 큰 국가이다.

국토의 약 40%는 사하라 사막이고 나머지는 그 인근의 비옥한 토지이다. 튀니지는 주변 국가에 비해 작은 편이나 기후적, 지리적 다양성이 많다. 아틀라스 산맥이 북동으로 가로지르는 산지는 총 면적의 1/3로 노던텔(북쪽)과 하이텔(남쪽) 산맥이 솟아 있는데, 최고봉 1,544m 샤니비 산이 알제리와 국경에 있다. 평원은 텔 지대와 동쪽 지중해를 따라 형성된 사힐(Sahil)이 있는데 올리브가 유명하다. 내륙으로 가프사(Gafsa) 구릉 지대에 수심이 얕은 염호 중 가장 큰 것은 자리드 호이다. 남쪽 지대는 모래와 암석의 반건조 사막이다. 피압 지하수가 풍부한 남부 곳곳에 잘 경작된 오아시스가 발달해 있다. 460km의 마자르다 강은 최대의 강이며 유일한 영구천으로, 수력발전과 관개에 이용된다.

북부지방은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은 온화하고 비가 자주 와서 습하며 여름은 덥고 건조하다. 지중해 연안의 튀니스는 평균 최고기온이 8월 33℃이고 1월 14℃ 이다. 기온은 바다의 영향으로 해안이 내륙보다 기온차가 작다. 남부는 사막기후로 사하라 지방에서 불어오는 열풍으로 북부에 비해 기온이 훨씬 더 높고 기온차도 심하다. 강우량은 북부가 연간 1,000∼1,500㎜인 반면 남부는 100∼200㎜에 불과해서 관개없이는 경작이 불가능하다. 습한 산비탈에서는 푸른 코르크나무와 오크나무 숲이 발달해 있다. 건조한 남부는 약간의 관목이 있으며 사막지역에는 오아시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이 나라 야생동물은 가젤, 멧돼지, 전갈, 뱀 등이 있다.

역사를 보면, B.C 12세기부터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 해안가에 교역소와 기항지를 건설했다. B.C 814년 고대 카르타고가 건설되었고, B.C 6세기경 카르타고 왕국이 현재의 튀니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과 시칠리아의 패권을 놓고 B.C 264년 1차 포에니 전쟁,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한니발 바르카 장군이 몰고갔다. 하지만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본국이 공략되고 3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해서 B.C 146년 멸망했다. 현재 튀니지와 리비아는 로마 지배하의 아프리카 속주가 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 곳은 ‘bread basket’이라 불린 곡창 지대였고, 로마의 지배는 이슬람의 침입 때까지 지속되었다. 로마 속령으로 로마화가 진행되어 기독교가 전래되었다. 제국 분열 후, 서로마 제국의 관할이었지만, 게르만계 반달족이 439년 침입하여 반달 왕국을 세웠다. 반달 왕국은 해상 무역으로 번영했으나 534년에 비잔티움 제국에 정복됐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 아랍인이 동방에서 침입하여 토종 베르베르인 가히나 여왕과 동로마 제국 연합군을 격파하고, 아프리카를 이슬람 세계에 편입시켰다. 튀니지는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를 섬기는 형태로 카이르완의 아글라브 왕조가 성립되었고, 이 왕조의 쇠퇴 후 반압바스의 이스마일파 파티마 왕조가 흥하여, 아글라브 왕조를 멸망시켰다.

파티마 왕조 쇠퇴 후 카이르완은 지리드 왕조가 번창했다. 그 후 모로코에서 성장한 알모아데 왕조의 지배를 받은 후, 1229년에 튀니지에 하프스 왕조가 들어섰다. 이 왕조는 서쪽 알제리에서 동쪽 트리폴리까지 영토를 통치했다. 그러나 왕조는 점차 퇴색하고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페인의 속국이 된 후, 1574년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당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초기에는 파샤라는 군사령관이 파견되어 왔지만, 제국이 약화되면서 튀니지의 베이는 오스만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통치를 실시했고, 1705년 튀니지에는 후세인 왕조가 들어섰다. 후세인 왕조는 프랑스 지배중에 252년에 걸쳐 지배했다. 1837년 즉위한 아흐메드 베이 시대에 시작된 서유럽 정책과 튀니지는 근대화가 서구화 정책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부국강병정책을 시행했다.

하이루딩 파샤 등의 활약으로 1861년 헌법이 제정되고 사독 베이는 이슬람 세계 및 아프리카 최초의 입헌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보수파의 저항으로 1864년 헌법은 정지되고 근대화, 서구화 정책은 좌절되었다. 1869년 서구화 정책의 부담으로 재정이 파탄났다.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며 튀니지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의 각축장이 되었다. 한동안 3개국 사이의 상충하는 이해관계가 튀니지의 자치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프랑스의 종주권이 인정되며 프랑스가 튀니지를 침공해 1881년 바르도 조약을 맺으며 영국은 키프로스를 차지하고 튀니지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1883년 마르사 협정으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따라서 베이는 명분상의 군주였고, 실질적 통치는 프랑스인 총독이 하고 요직도 프랑스인이 차지했다.

1907년 독립 투쟁을 하는 청년 튀니지당이 등장해 ‘헌정당’으로 발전했다. 튀니지인의 시민권 승인 및 정치참여 요구, 헌법 제정 등 운동을 전개한 ‘신헌정당’의 하비브 부르기바가 튀니지의 완전 독립을 요구했다. 1920년 데스투르당은 튀니지인의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했다. 1930년대 하비브 부르기바를 지도자로 하는 신(新)데스투르당이 등장해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해산했던 이 정당은 전후에 복귀해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튀니지의 민족 운동이 증가하자 프랑스 정부는 1956년 3월 20일 베이 무하마드 8세 알 아민을 국왕으로 하는 조건으로 독립을 승인했다. 튀니지 왕국의 초대 총리로 부르기바가 선출되며 독립을 했다. 그러나 1957년 왕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튀니지 공화국이 탄생했다. 총리에서 대통령이 된 부르기바는 1959년 헌법을 제정하고 급격한 협동조합화와 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하다 1970년대 자유주의 노선으로 변경했다. 1974년 개헌으로 부르기바가 종신 대통령에 피선됐다. 1980년대초 정부는 정당활동의 자율성 보장을 착수했고, 노동조합활동으로 구속됐던 노동조합원들이 특별사면됐으며, 튀니지 공산당이 합법화되었다.

마침내 1981년 사상 최초의 다수당 경선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되었는데 기존 국민전선이 압승을 했다. 그러나 장기 집권에 총파업과 식량 위기 등 사회 불안이 높아지며 1987년에는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벤 알리 총리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부르기바 정권은 하야했다. 1990년대에는 알제리 이슬람주의 조직에 의한 테러가 내전으로 발전해서 이슬람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1994년과 1999년 대선에서 알리 당선 뒤, 그는 새 헌법을 제정해 2002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새로 개정된 선거법은 75살까지 누구나 재당선될 경우 대통령직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일종의 대통령 종신제다. 2004년 대선에서 벤 알리가 다시 94.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1년 광범위한 정권퇴진 운동으로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해 23년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벤 알리의 퇴진 이후, 마르주키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살라피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6월 12알까지 폭동이 일었다. 2014년 1월 비상상태를 해제했다.

튀니지는 공기업과 사기업 공존의 혼합경제다. 관광으로 발달해서 아프리카 국가 중 양호한 경제 상황을 가지고 있다. 경제개발은 주로 서방국가들과 국제기구의 보조로 이루어졌다. 1인당 GNP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비해 낮다. 국토의 27.8%가 농경지이고 36.3%가 목초지, 5.4%가 삼림지대로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좋은 환경이다. 농업은 GNP의 1/5 미만으로 노동인구의 약 1/4이 종사한다.

외국인 소유 토지는 1964년 국유화됐다. 불규칙한 강우로 수확량이 해마다 변하고 관개는 불충분하다. 북부에서 밀과 강우량이 적은 중부와 남부 지방에서 보리가 재배된다. 튀니스 부근에서 포도, 본곶(串)에서 과일과 채소가 재배되며 남부의 연해지방에서는 올리브가 생산된다. 환금작물로는 올리브, 사탕무, 감귤류, 야채 등이 있다. 가축으로는 양을 많이 기르고 염소, 소, 가금류도 사육된다. 수산업이 활발하다. 독립 후 공업화정책으로 제철, 정유, 시멘트, 건재, 화학, 식품 등의 공업이 일어났다. 제조업은 GNP의 1/8가량으로 노동인구의 1/5이 종사한다.

공업은 외국 자본 및 차관에 크게 의존해 왔고 튀니스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 제조시설이 5명 이내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정부 장려의 전통적인 장인 활동이 여전히 튀니지의 중요한 소득원이다. 가공상품, 조강, 화학제품, 직물, 피혁제품 등의 제조업이 발달했다. 전력은 전적으로 국산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에 의지하나 마자르다 강에서 약간의 수력발전도 있다. 지하 자원은 아프리카 최대의 인산염 광산이 있고 기타 철광, 수은, 납, 아연, 망간, 석유 등이 있다.

튀니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5번째 큰 석유매장지며 4번째 큰 천연 가스 산지다. 주요 수출품은 석유, 유제품, 직물, 인산염제품, 올리브유, 야채, 과일통조림, 인광석 등인데, 인광석은 모로코와 더불어 세계 2대 수출국이며 석유는 1968년 이후 튀니지 제1수출품이다. 수입품은 식량, 원료제품, 화학제품, 의약품 등이다. 관광산업, 해외원조,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은 주요 외화 획득원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상쇄하는데 기여한다.

공화국인 튀니지의 입법권은 단원제 국회에 있고 5년 임기 138명의 의원은 직접 선출된다. 행정권은 5년 임기 직접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있으며 대통령은 무제한 연임이 가능하다. 내각의 수뇌는 국무총리다. 데스투르 사회당이 독립 이래 다수당이자 유일한 합법정당 위치를 유지했다. 야당들은 선거에 참여를 못하거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독립 사법부는 파기원을 정점으로 하며, 파기원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자해득률은 남자가 약 60%, 여자도 40% 정도이다. 공립교육은 무상이나 의무제는 아니다. 6년제 초등학교, 7년제 중등학교, 3년제의 실업학교, 고등교육기관들이 있다.

튀니지는 아랍계와 베르베르 혼혈인(튀니지인)이 다수이며 다음으로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순이다. 2018년 인구는 1,16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이 15세 미만이다. 베르베르인은 전체의 2%가 안되고,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스라엘로 이주해갔다. 대부분 사람들은 해안 근처 도시에서 살고 남반부 전역은 인구가 희박하다.

공식어는 (튀니지) 아랍어이고 제2국어이자 700만명이 모어로 쓰는 프랑스어도 널리 쓰이는데, 프랑스어 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영어와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은 관광지에서 주로 사용된다.

튀니지는 공식적으로 수니파 이슬람 국가이다.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이며, 소수의 기독교(로마 카톨릭, 성공회, 개혁교회)와 유대교도 등이 있다. 교회의 대부분 신자는 외국인이다. 튀니지는 선교활동이 제한되어 기독교 문서를 판매하거나 배포하지 못한다.

도로와 철도망은 국내의 모든 도시들을 조밀하게 연결한다. 프랑스 식민시대 건설된 철도는 북부에 있고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튀니스 카르타쥐 국제공항은 파리, 로마, 카이로 등과 연결된다. 긴 해안선을 따라 주요 항구인 비제르테, 가베스, 스팍스 등이 있다.

튀니지는 아름다운 해변과 일광욕하기 좋은 햇빛, 그리고 페니키아, 로마, 카르타고, 베르베르, 반달, 아랍의 문화유적 등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대표적 아랍과 이슬람 문화 건축물로 카이라완 대성원과 자이투나 대성원을 꼽을 수 있다. 남부 사막에서는 푸른 오아시스, 광활한 소금호수, 사막의 야경 등이 매혹적이다. 제브라 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태교 성전 ‘Ghriba’가 있다.

북아프리카의 소국 ‘튀니지(Tunisia)’는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Tunisia’는 도시 이름인 ‘Tunis’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Tunis’와 ‘-ia(라틴어 접미사)’가 결합한 말로 ‘Tunis’는 베르베르어 ‘tns(to lay down, 야영지)’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거나 고대 도시 Tynes의 카르타고 여신 Tanit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김권제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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