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스틸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20일 개봉된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이하 ‘집아죽’, 리 토시오 감독)와 내달 5일 개봉되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 감독)는 제목에서 보듯 여자가 주인공이다. 남자라고 편한 건 아니겠지만 아직도 여자라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편견에 시달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에 두 영화는 소중하다.

‘집아죽’. 39살 샐러리맨 준(야스다 켄)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아픔을 딛고 치에(에이쿠라 나나)와 재혼한 지 3년이 지났다. 준은 치에와 결혼할 때 3년 후 결혼생활을 이어갈지 아니면 정리할지 재고해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첫 결혼이 실패한 이유와 전 아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치에는 결혼 3주년 기념일부터 매일 준의 퇴근 시각에 맞춰 죽은 척을 한다. 어떤 날은 칼에 찔리고, 어떤 날은 악어의 입 속에 머리를 넣고 죽어있다. 준은 처음에 장단을 맞춰주지만 이내 두려워진다. 치에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쉽게 꺼내지 못하고 이렇게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치에는 5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초밥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신이치의 손에 자랐다. 신이치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가게를 운영해야 먹고살았고, 치에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치에는 어느 날 늦은 밤 신이치가 구석에서 홀로 우는 것을 우연히 목도한 뒤 달라진다.

▲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스틸

그녀는 아버지가 퇴근할 무렵이면 어딘가에 숨는다. 그렇게 숨바꼭질로 아버지를 놀라게 만들기도, 그래서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죽은 척은 그 숨바꼭질의 연장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은 더 아프다. 그래서 남편을 즐겁게 해주려 매일 죽는 것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찬실(강말금)은 치에에 비교하면 비참하다. 영화 피디로 일한답시고 40살이 넘기까지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모아놓은 돈 한 푼 없다. 그런데 그동안 함께 일해 온 감독이 급사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돼 먼저 살던 방을 빼고 세가 싼 산동네 복실(윤여정) 할머니 집으로 옮긴다.

다행히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배우 소피(윤승아)가 자기 집의 가사도우미를 제안해 당장 먹고살 문제는 해결된다. 소피는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배우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부산한 스타일이다. 찬실은 소피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젊은 가정교사 영(배유람)과 친해지고 그에게 끌린다. 그 역시 싫지 않은 눈치인데 알고 보니 진짜 누나로만 생각했던 것이라 절망한다.

찬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다. 요즘 여성들은 썩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더라도 연애, 결혼, 출산 등과 그리 가깝지 못하다. 절실함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건 그만큼 남자가, 사회가 여성에게 친절하지 못해서다. 겉으론 남녀평등이 보장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구석이 많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

영에게 보기 좋게 차이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한 찬실은 그러나 영화를 하며 알게 된 소피를 비롯한 동생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복도 많지’라는 표현은 반어법인 동시에 직설법이다. 지지리 복도 없는 것 같지만 절망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친구 덕에 마음만은 풍요롭다는 뜻이다.

그런 찬실이 현재라면 복실은 과거(기재)고 소피는 미래(도래)다. 이 3명이 같은 시대에 한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시간성(기재하면서 현재화하는 도래라는 통일적 현상)이다. 본래적 존재, 현존재, 도래적 존재다. 찬실의 곁에는 장국영(김영민)이라는 귀신이 따라다닌다.

과거는 이미 지난 게 아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게 아니라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시간성에 대한 개념이다. 치에는 고통이나 슬픔을 절대 드러내지 않고 항상 밝고 긍정적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찬실은 자기 직업에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신에게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이렇듯 전혀 다른 두 여자는 각자 남편과 아버지, 엄마 같은 복실과 친구들이라는 ‘복’에게 잘해주려 노력하고 희생한다. 치에는 지금까지 아버지와 남편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보인 적이 없고 그들을 위무하려 노력해왔다. 제 앞가림도 잘 못하는 찬실은 밤길에 친구들에게 랜턴을 비춰주는 친절을 베푼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

인간 집단은 부계사회로 바뀐 뒤로 모든 게 남자 위주였다. 여자용 의복의 여밈을 차별화해 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도 수많은 관습, 문화, 인식 등에서 남자에게 편향된 게 잔존해있다. 서양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고 우리 보도에서는 항상 남편 이름이 앞장선다.

치에와 찬실은 그런 순서에 집착하거나 반항하려 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런 데 신경을 끈 채 남녀를 떠나 자립하는 것과 ‘주변 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까’만 생각한다. ‘집아죽’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찬실이는~’은 여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집아죽’은 참으로 귀엽고도 아름답다. 치에와 에이쿠라는 정말 잘 어울린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각 시퀀스는 충분히 통통 튄다. 또한 기승전결에 고저 차이가 분명하고, 희로애락이 고루 배치돼있다. 치에의 ‘당신이 찾으면 난 언제나 그곳에 있어’라는 대사는 세상 모든 연인과 부부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찬실이는~’은 초반엔 찬실이가 마주한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답답하고 우울하다. 그러나 러닝타임이 중반을 넘어가면 강말금이 매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전체의 플롯을 힘차게 이끌어가 재미를 선사한다. 두 작품은 여자의 얘기지만 사람의 사는 문제를 고뇌한다는 점에서 결코 국지적이지 않은 웰메이드 영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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