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베를린국제영화제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최근 유력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두 명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도망친 여자’의 홍상수(60)와 제45회 세자르영화상의 ‘장교와 스파이’의 로만 폴란스키(86)다.

홍 감독의 영화는 국내에서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민희와의 불륜이 알려짐으로써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서는 추세가 지속되는 상황.

2015년 개봉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김민희가 홍 감독 영화에 처음 출연하면서부터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다가 이듬해 ‘아가씨’ 개봉 즈음 수면 위로 부상해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고,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식적으로 당사자들에 의해 확인됐다. 홍 감독은 2016년 11월 이혼소송을 시작했고, 간통죄는 2015년 2월 26일 폐지됐다.

폴란스키는 1977년 미국 LA 잭 니컬슨의 집에서 13살 소녀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돼 검찰에 유죄를 인정했지만 플리바게닝(범죄인정 조건부 감형협상)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도피해 현재까지 미국 근처에 얼씬도 안 하고 있다.

미국은 그를 기소하기 위해 여러 차례 소환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018년 그를 영구 제명했다. 그는 또 스위스에서도 또 다른 성폭행 혐의로 고소됐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는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는 영화의 고향이자 예술영화의 본산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칸국제영화제는 전 세계의 영화를 대상으로 하지만 프랑스 영화인들의 모임인 영화예술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세자르상은 주로 자국 영화에 주목한다. 영화예술아카데미는 현재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폴란스키는 아주 파렴치하고 혐오스러운 범죄자라 더 이상 거론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홍 감독은 불륜이다. 법적으로는 처벌할 혐의가 없으되 통상적인 윤리적 잣대를 들이댔을 때 떳떳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홍 감독의 수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찬반으로 엇갈리고 있다. 어느 나라와 민족이든 결혼이라는 제도가 굳어진 사회적 통념상 혼인생활 중 다른 파트너와 사랑에 빠지는 게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건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간통죄 폐지 등에서 보듯 세월이 흐를수록, 문화적, 경제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과거 우리에게 아내의 질투는 칠거지악 중 하나로 분류될 만큼 죄악이었고, 남자의 돈과 권력은 곧 첩을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의 척도였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억눌렸던 아내의 권리는 남편과 동등해졌고 결혼생활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변했다. 최근 한 매체의 여론조사에서 20살의 절반 안팎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드러났듯 나날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추세다. 이는 경제적인 이유를 비롯해 여러 가지 원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진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젊은이들은 ‘데이트 폭력’과 이혼율 세계 1위의 보도를 접하고,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연인이나 부부의 사랑이 매우 유동적이라 영원하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회의주의가 확산되는 추세인 건 명명백백하다.

간통죄 폐지로 인해 윤리와 도덕이 무너진 건 맞다. 홍 감독을 옹호할 생각 역시 추호도 없다. 다만 인식론의 변화와 폴란스키의 사안과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는 게 포인트다. 두 감독 모두 여자에게 상처를 입힌 건 맞지만 엄청난 범죄와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불륜으로 나뉜다.

적지 않은 국민들, 특히 여자들은 분노하거나 참담할 것이다. 전술한 20대 설문조사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결혼에 부정적이었다는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시선을 달리하면 그 절망적인 심정을 조금은 위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민희도 여자다. 공개적, 비공개적으로 그는 서너 명의 미남 배우들과 교제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홍 감독이 종착역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변의 싸늘한 시선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결정한 선택이다.

그들의 사랑은 축복받지 못했지만 배우로서, 감독으로서는 축하를 받았다. 그들을 축하하고 싶지 않고, 더욱더 미워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들의 영화를 안 보는 게 현재로선 최선책이다.

현대인의 질투의 동인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짙다. 철학자들은 모든 분야의 지혜를 탐구하지만 연인의 사랑에 대해서는 유독 무관심한 편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질투는 뜨겁고 평정은 차갑다. 삼라만상이 ‘그때는 그때라서 맞았고, 지금은 지금이라 맞다’로 흘러가는 데 대해 인간은 불가항력적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테마토크 대표이사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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