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조선 제공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한 뒤로 앞서 달리는 JTBC와 그에 비해 속도가 더딘 TV조선이 비교가 됐던 건 사실이지만 ‘내일은 미스터트롯’ 하나로 모든 상황은 달라졌다. 지상파라는 플랫폼이 의미 없기는 하지만 지상파조차도 시청률 10%만 올리면 화색을 하는 시대에 ‘미스터트롯’은 35%를 찍었다. TV조선에겐 꽃길이 환하게 열렸다.

선배인 ‘미스트롯’의 인기에 비춰 ‘미스터트롯’ 역시 성공 가능성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지만 이 정도로 ‘미스트롯’을 훨씬 뛰어넘을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뭘까?

방송의 마지막 결선 때의 국민 투표에서 살짝 진행상의 미숙함을 보인 데 대한 다수의 시청자들의 ‘임영웅도 진이지만 김성주도 진’이란 반응에서 보듯 이제 원숙미를 보여주는 김성주의 진행 능력과 프로의 드라마타이즈를 완성해 주는 감정 표현 솜씨는 절정이다. 그가 이 프로에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경연자들의 간절함이었다. 다수의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외모도 배경도 평범한 그들이 절실함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는 빛을 쏘아올린 것이다. 그들 중 ‘금수저’는 없었다. 다수는 데뷔를 했지만 웬만한 중소기업 신입사원을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는 그만큼 절실한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일부 생소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수의 시청자가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같은 물을 마셔도 소는 우유를 생산하고, 뱀은 독을 만들 듯 그들의 감정과 정서를 통해 밖으로 토해져 나오는 노래들은 원곡자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성공은 차치하고라도 생계와 현실 타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애절함에서 우러나온 절규였다.

경연자들을 심사하는 위치인 마스터(유명 가수 및 작곡가)들은 연신 경이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예능이니까 그런 과장된 표현은 그동안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눈에 익은 풍경이긴 하다. 그렇다면 왜 ‘K팝스타’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했다 하면 전문 심사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재야에 숨은 고수들이 많을까?

이는 업계의 시스템상의 문제다. 스타덤에 진입하는 가수라면 대부분 거대 기획사 혹은 그렇게 크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전문 조직성이 입증된 중소 기획사를 통해 성장한다. 제 혼자 스스로 크는 가수는 없다. 비전문 매니저와 함께 성장하는 가수도 없다.

20세기엔 전문 매니저의 기획 능력과 방송국 음악이나 예능 담당 PD와 작가, 그리고 언론사와의 친분관계 등을 통해 성패가 좌우됐다. 21세기에는 방송국 가요 프로그램에 의한 성공의 기능이 크게 저하되긴 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이제는 인터넷과 SNS 등 온라인이 예전의 지상파 방송의 기능 이상을 해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 힘으로나 아마추어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는 성공이 어렵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능력이 되는 기획사에 적을 두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무리 괜찮은 기획사를 만나더라도 운이 안 좋다면 성공은 멀다.

‘미스터트롯’은 그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준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마스터 등을 비롯해 음악 감독 역할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경연자들을 잘 조련시킨 결과다. 임영웅이 예전에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 영상을 보면 현재의 가창력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비전문가라도 손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의 음악 감독은 프로의 제목과는 다르게 21세기의 트롯이 아닌 20세기의 ‘가요’를 만들었다. 이미자와 배호 시절의 가요는 현철,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 등으로 시작된 20세기 말과 그들의 맥을 잇는 현재의 트롯과는 좀 달랐다.

그 디테일을 단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한의 정서’가 살아있었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라고 희롱하는 게 아니라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목을 놓아 울던 우리 민족 특유의 눈물의 정서가 담겨있다. 게다가 편곡은 과거가 더 화려했다는 걸 전문가들은 잘 안다.

‘미스터트롯’은 바로 그 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정통 ‘가요’로 회귀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탑3를 비롯해 상위권에 오른 경연자들의 창법을 보면 절대 과하지 않다. 발음은 정확하고 가창은 과장되지 않게 정통을 지킨다. 한마디로 교과서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그들의 사연이다. 임영웅은 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 때 담벼락에 꽂힌 유리 파편에 얼굴을 다쳤지만 노래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진단에 수술을 포기해 눈에 띄는 흉터를 가졌다. 아마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방송에 소개된 그의 자취방은 처참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방송 출연 전까지 거리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13살의 천재 정동원은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듯하다. 유독 할아버지를 언급하며 눈물을 보였다.

모든 출연자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 한두 개쯤은 안고 있었다. 아마 방송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자 한다면 방송 시간이 부족하지 그들의 사연이 부족하진 않을 듯했다.

마무리는 시청자다. 방청석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2000만 명에 가까운 시청자 대다수는 이 프로를 보며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저마다의 가슴속 사연을 담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를 진정성으로 표현해내는데 어찌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얘기가 남의 얘기 같지 않았을 것이다.

‘미스터트롯’에선 장르는 다르긴 하지만 개성과 실력에 비해 상업적 마인드가 부족해 성공가도에 진입하기 힘들었던 ‘K팝스타’의 안예은과 이진아가 보였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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