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건스’, 남는 건 없어도 재미는 쏠쏠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0.03.21l수정2020.03.2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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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동명의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서스펜스 액션 ‘투건스’(발타자르 코르마쿠르 감독)는 덴젤 워싱턴(바비)과 마크 월버그(스티그)라는 흥행의 보증수표를 투톱으로 내건 전형적인 버디무비인데 배우의 이름값이 무색하리만치 2013년 국내 개봉 당시 관객 7806명 동원이라는 허무한 성적표의 참사를 낳았다.

얄팍한 건달 바비와 스티그는 멕시코 최고의 마약상 파피의 조직을 위해 프리랜서로 일하는 파트너다. 바비는 파피에게 위조 여권 다발을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마약을 요구하지만 파피는 약속과 달리 현금을 준다. 이에 바비는 현금을 거부하고 다음에 올 테니 꼭 마약을 마련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바비의 정체는 마약단속국 경찰이고 언더커버 중이었다. 같은 조직의 미모의 경찰 데비(폴라 패튼)와 연애 중이다. 상사 제섭의 명령으로 스티그를 포섭한 뒤 파피의 돈 300만 달러가 예금된 은행을 털고자 하는 것. 은행 강도는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정보보다 훨씬 더 많은 4300만 달러가 있었다.

두 사람은 큰돈을 들고 도망치는 데 성공하지만 돌연 총을 꺼내고, 한발 빠른 스티그가 바비의 어깨를 쏜다. 바비 역시 경찰 배지를 꺼내며 스티그를 쏘려 했지만 선수를 빼앗겼다. 스티그는 돈을 들고 직속상관인 퀸스(제임스 마스던) 해군 중령을 만난다. 그 역시 퀸스의 명령으로 위장 잠입했던 것.

퀸스는 바비를 사살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이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들렀다가 그렇지 않은 것을 알자 스티그를 죽이려 하지만 스티그는 잽싸게 도망친다. 임무에 실패한 바비는 상관 제섭의 집을 찾아가지만 정체불명의 특수 요원인 듯한 인물들이 나타나 제섭을 죽이고 바비는 탈출하는데.

인트로에서 승용차에 앉은 두 사람이 기찻길 건널목에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퀀스가 펼쳐진 후에도 또 기차가 등장한다. 주인공들을 비롯해 우리는 모두 여행자, 즉 나그네라는 의미다. 특히 인트로의 기차 밑을 향한 카메라 각도는 주인공들이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다는 노골적 비유다.

코르마쿠르는 아이슬란드에서 연극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배우이자 감독이다. 디즈니의 자본으로 이 영화를 찍었지만 미국에 대해선 꽤 부정적인 듯하다. 철저한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할리우드의 대규모 스튜디오가 자본주의를 삐딱하게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대사에는 “미국은 제일 놓은 나라야, 본성을 받아들이니까”,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는 식의 찬사가 나오지만 반어법이다. “하나님이 키우는 악마의 자식”이란 대사처럼. “죄 없는 사람 없다”라는 대사는 기독교의 원죄론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다 보면 절대 완벽하게 무죄일 수 없다는 뜻.

4300만 달러의 예상외로 큰돈은 CIA의 비자금이었다. CIA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그들의 수익의 7~20%를 상납 받아왔고, 주인공들이 훔친 돈은 그중의 일부였던 것. 미국의 대통령 직속의 정보기관이 흉악한 범죄조직과 결탁하고, 군대와 경찰은 검은돈에 욕심낸다.

이 얼마나 놀라운 카르텔이고, 기함할 만한 도덕성의 상실인가! 물론 스티그의 범죄는 퀸스의 사적인 명령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스티그의 폭로에도 사실을 은폐하려고만 들 뿐 진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해군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다지만 사실 자신의 이력을 지키려는 개인적 차원이다.

CIA와 악덕 경찰의 비뚤어진 출세욕과 사리사욕은 영화지만 영화 같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외려 멕시코의 갱스터 파피가 CIA의 협박에도 의연한 애국자로 그려진다. 영화가 강조하는 주제는 믿음과 의리다. 두 주인공과 두 악당의 네 명이 한데 엉켜 권총을 겨눈 절체절명의 시퀀스가 잘 보여준다.

헬기를 부수고, 건물을 통째로 날리는 등 두 스타의 개런티 외에도 상당히 많은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왜 국내 흥행에선 실패했을까? “맛있는 도넛을 파는 식당 옆의 은행은 터는 게 아냐”라는 생뚱맞은 대사처럼 우리 정서와 잘 맞지 않는 플롯과 디테일 때문에 롯데시네마가 배급을 안 펼친 듯하다.

현금 다발로 트렁크를 가득 채운 차를 통쾌하게 폭파시키고 유유히 걸어가는 시퀀스는 돈에 환장한 배금주의자들에 대한 통쾌한 조롱이자 믿음을 지킨 의리에 대한 찬가다. 돈 보기를 돌 보듯 하는 주인공들과 멕시코의 가난한 주민들이 돈을 줍는 게 겹쳐진 장면은 자본주의 해체의 강력한 욕구다.

비록 배급사에서 마케팅 비용을 아끼며 손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했을 만큼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킬링타임용으로 크게 흠잡을 데는 없다. 인종차별이 잔존한 할리우드에서 흑인 남자 워싱턴과 백인 여자 패튼의 베드신을 찍는 등의 실험정신도 돋보이고, 반전을 위해 깔린 복선도 나쁘지 않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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