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어느 모임에서 한의사인 필자가 있으니까 꺼낸 A씨의 얘기다. 대대로 이어져오는 가정의술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A씨는 어릴 때 음식을 먹고 체했다 싶으면 그의 아버지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A씨의 등을 문지르거나 가볍게 두드린 후 팔을 쓸어내려 손가락으로 피를 몰리게 한 다음 바늘로 톡 찔렀다.

피가 검지 지문 위에 이슬방울처럼 맺히는데 검게 보일수록 “그 놈, 크게 체했네.”라고 하셨다고 한다. 신기한 건 바늘로 따고 나면 거의 대부분 트림을 꺼억 하게 되고 속이 시원해지며 얼굴이 펴졌다. 소독하신다며 머리카락에 바늘을 쓱쓱 닦는 것도 일관된 손가락 따는 절차 가운데 하나였다.

그냥 기억으로만 갖고 있던 가정의술을 A씨 자신이 딸에게 해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 어느 날 바늘을 가져와 따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나긴 했지만 긴장도 됐다. 어쨌든 검은 피가 나왔고 딸은 시원하다고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造化)인지...? 나도 아버지가 됐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다른 점은 따는 위치였다고 한다. A씨는 검지 지문 쪽 이었다면 딸은 엄지를 내밀고 손톱 뒤쪽을 따달라는 게 차이였다. 딸이 바늘로 따는 것을 어디서 알았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시원하면 됐지 뭐”라고 생각할 뿐 묻지도 않고 있는데 어느 날은 만년필 모양의 침을 사와서 따달라고 해서 A씨는 약 10년째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며 괜찮은 건지 물어오셨다.

일리 있는 가정의술이라고 답해 드렸다. 막힌 하수구를 뚫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체했다는 것은 한의학에서 기혈 흐름의 정체를 의미하는데 침으로 따는 행위를 통해 막힌 기혈을 소통시켜 주는 것이다. 손가락을 따는 것은 기혈이 솟아나서 흐르는 정혈(井穴)이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 많아서이다. 응급상황으로 혈맥이 막혀 졸도하거나 쓰러지는 경우에도 피 흐름을 원활하게 침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단, 민간에서 혹시 오염된 바늘이나 도구를 사용하면 감염의 위험이 있을수 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은 쉬워 보이지만 침 치료가 이론으로 정립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침 치료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유래설 가운데 경험론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도 음식을 먹고 체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연히도 가시에 손가락을 찔렸는데 끄윽 트림을 하면서 속이 시원해졌다. 처음에 그 사람은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경험을 공유하면서 침 치료로 발전했을 것이란 이론이다. 경험이 수 천 년 간 쌓이면서 이론이 됐다는 것이다. 인체를 음양과 오행에 맞춰 설명하려는 음양오행설도 침 치료 발전에 이론적 뒷받침이 됐다고 한다.

결국 침 치료는 경험과 공유를 통해 만들어진 인류유산으로 볼 수 있다. 수많은 경험치가 쌓아올린 금자탑이다. 의학상식이 거의 없는 A씨가 손가락 지문 뿐 만 아니라 손톱 뒤쪽을 따도 체한 게 내려간다는 것을 아는데 한 세대가 흐른 것처럼 아주 옛날에는 경험공유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침 치료도 오랜 임상의 결과다.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 바늘이 한의원외에 또 있을까.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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