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28일 첫 방송된 KBS2 새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양희승 극본, 이재상 연출, 매주 토, 일 오후 7시 55분) 1, 2회가 시청률 19.4%와 23.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각각 기록하며 주말극의 전통적인 최강자 KBS의 위용을 과시했다.

송영달(천호진), 장옥분(차화연) 부부와 그들의 장남 준선(오대환), 둘째 딸 가희(오윤아), 셋째 나희(이민정)와 윤규진(이상엽) 부부, 넷째 다희(이초희) 등을 둘러싸고 이혼을 바라보는 세대 간의 시각 차이 등의 인식론을 펼치는 내용이다.

준선과 가희는 이혼을 했고, 나희는 이혼 직전이며, 다희는 우여곡절 끝에 올린 결혼식이 끝나고 뒤풀이에서 남편이 외도하는 걸 목도하고 파혼한 상황. 영달과 옥분은 이혼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준선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가 하면 가희는 유행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노부부는 결혼을 앞둔 자식이 서운하고,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거는 것을 망설일 만큼 이제 나약해졌다. 자식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아직 ‘결혼 중’인 나희와 규진이다. 그러나 겉으론 완벽해 보이는 그들은 남의 시선에서만 벗어나면 심하게 삐거덕거리는 본질을 드러낸다. 특히 나희는 아들에게 집착하는 시어머니 최윤정(김보연)과 전형적인 고부갈등을 겪으며 결혼생활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우리나라가 이미 OECD 회원국 중 이혼율 1위를 기록한 지 오래됐기에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또한 요즘 분위기가 건국 이래 국론이 가장 첨예하게 분열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역시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세대차이라는 말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죽 이어져온 통시적 유행어다. 당연히 세대 간에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라는 말을 듣고 자라 노인이 되면 저도 모르게 똑같은 말을 내뱉고, 다음 세대가 그걸 되풀이하는 반복이 수천 년 간 지속돼왔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같은 생각을 갖는 건 동서고금을 통틀어, 더불어 향후 미래를 예상해도 힘든 일일 것이다. 다만 과학과 문화의 발달이 어느 정도의 간극의 극복을 유도할 수는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소위 ‘N포세대’라고 해서 젊은이들이 많은 걸 포기하는 게 유행을 떠나 하나의 문화처럼 정착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포기한 것 중 눈에 띄는 게 연애, 결혼, 출산이다. 그러니 이혼율 1위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 듯 보일 정도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불과 1세대 전만 하더라도 이혼은 ‘주홍글씨’였다. 미풍양속에 어긋났고, 부도덕하며, 대인관계에서 정도를 걷지 못한 이미지를 줬다. 조선시대에 남자는 상투를 틀어야 어른 대접을 받았고, 현대엔 안정된 직장을 구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게 효도고 인간의 도리라고 믿는 풍조가 만연됐다. 그래서 이혼을 ‘밥 먹듯’ 하는 구미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 시대를 거치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식론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물질만능주의 등의 배금주의 사상이 더욱 짙어진 건 부정적이긴 하지만 기존의 관습을 깨뜨리고 개인의 행복에 집중하는 의식이 팽배해짐으로써 좋고 나쁘고를 떠나 시각이 확 바뀐 것이다.

이혼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각 개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관념론이 번지고 자리 잡게 됐다. 영달과 옥분은 그저 습관처럼 관습에 따라 결혼을 했고, 산아 제한 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 ‘형편’이 닿는 대로 4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리고 그들을 잘 키워 훌륭한 배필을 만나게 한 뒤 손자, 손녀를 안아보며 사는 걸 지상 최대의 목표로 알았다.

그런데 내가 낳았지만 내 생각과 달라도 엄청나게 달랐다. 내 권리가 짓밟히고, 내 인격이 무시당해도 그저 팔자려니 생각하고 자식만 바라보며 참고 살았던 옥분.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꾹 참고, 힘들고 지칠 때도 아플 때도 많았지만 자식 얼굴을 떠올리며 의지로 이겨내며 살아온 영달. 그때는 그랬다. 대한민국 서민들의 삶이란 게 그랬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부모는 늙고 무능해져도 자식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으며, 자식은 20살만 넘으면 독립을 모색한다.

우리 민족은 최근까지 유독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걸 미덕으로 알았지만 서구 사회는 일찌감치 18살을 기준으로 독립이 철칙처럼 여겨졌다. 물론 서구 문화는 독립 후 가족관계가 멀어지고 단절되는 케이스도 많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혼자 생존을 감당할 만한 시기가 되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는 세상의 모든 동물들과 유사해 원시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공시적 세대에는 저마다의 유행이란 게 있다. 그때그때의 사회상에 맞는 생활 패턴이 수시로 변하거나 복고적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4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사람들의 체감은 3분의 1 정도는 된다. 그뿐만 아니라 더 늘어날 것은 명약관화하다.

드라마의 제목과 내용은 이혼을 그저 ‘어디에 한 번 다녀왔을 뿐’, 혹은 ‘남들 다 하는 게 어떤 건지 한 번 경험한 뒤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제 자리로 돌아왔을 뿐’이라는 요즘의 인식론이 스토리의 저변에 팽배한 게 엿보인다.

이미 이혼율 1위를 찍은 지 꽤 됐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진부할 수도 있다. 영달, 옥분, 윤정의 시각은 매우 고루하다. 하지만 주말드라마라는 점에서 파격과 진보를 바라보긴 힘들다는 정체성이 그걸 상쇄시키고, 자식들의 지극히 현대적인 개념이 중화시킨다.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이혼도 행복을 위한 선택지 중 하나’란 논지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점에서 작가나 연출자는 영리하다. 이혼 장려나 결혼 포기를 주창하지 않는 한 건전하면서도 재미있고, 웃기면서도 감동적인 주말드라마가 될 개연성은 매우 크게 열려있다.

결혼해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면 이혼해서 행복할 권리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이젠 결혼에 대한 가치관과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무척 중요하다. 작가와 연출자가 행복추구권에 대한 논리적 정립과 연애와 결혼에 관한 시대적 테제의 표제화에서 영리함을 보인다면 ‘참 좋은 시절’ 정도의 성취감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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