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륙의 다도해, 청풍호

[미디어파인=허승규의 여행의 조각]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멍드는 도시생활. 어찌보면 도시생활의 이면은 무겁고 불편하지만, 작고 적당한 “잠깐의 태도”로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고, 잠깐도 쉬지 못하는 세상에서 잠깐이라는 시간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 잠깐의 태도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시골 농가의 한 끼 밥상 같은 것들로 많은 의미와 즐거움을 더해주었습니다(사실 제 나름의 기준으로 만든 안동과 대전에 이은 중부내륙 10개 힐링트립코스 중 3번째 제천은 답답한 이슈와 도심을 떠났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편안한 답사였습니다)

또한 이번 답사는 운전하고 상황 대처하느라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여행하지 못하는 혹은 바쁜 일상에서의 잠깐의 쉼이 필요한 3050 여행러를 위한 나름의 코스 기획이었습니다.

청풍호를 품고 있는 제천은 지리적으로 충주(서), 단양(남), 영월(동), 원주(북)와 인접해 있습니다. 제천의 흥미로운 축제로는 제천 수산 슬로시티 힐링축제(국제슬로시티 인증), 제천 솔티맥주 홉수확축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 한방엑스포 등이 있었고, 의림지 역사박물관, 청풍문화재단지 수몰역사관, 한국차문화박물관, 국제발효박물관, 지적박물관 등 이색적인 박물관이 있었습니다(이외에도 제천에는 박달재자연휴양림 등 많은 로컬 여행지가 있으니, 계절에 맞춘 동선 설계로 두 서너번 다녀오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이번 코스는 ①의림지(역사문화)~②교동민화마을(도심재생)~ ③뱅크크릭 부루잉(로컬 콘텐츠)~④청풍호 유람선(청풍명월)~⑤청풍문화재단지(고건축)~⑥청풍호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액티비티)~⑦수산(슬로시티)으로 정했습니다.

▲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의 농경문화의 시초가 된 의림지

①의림지 – 소요시간 1시간 내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단아한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이 눈길 닿는 곳마다 전해지는 곳입니다. 솔방울 까마득 달린 소나무 숲, 잔물결 이는 의림지는 서울의 석촌호수 같은 호수공원 느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오리배도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오후 4시쯤 도착하여 엷은 오렌지 빛으로 해가 사그라지는 일몰 방문도 추천합니다(수 년전 와 봤던 의림지 야경은 제법 예쁘고 맑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의림지는 삼국시대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로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의 농경문화의 시초가 된 저수지 중 하나입니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가야금을 안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서 만든 곳이니 당시에도 풍광 빼어난 관광 명소였을 것 같습니다.

의림지에는 제천시 캐릭터인 박달신선과 금봉선녀 조형물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중엽 경상도 청년 박달이와 충청도 처녀 금봉이는 현세에서는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이들의 사랑이 하늘에 닿아 박달도령은 신선이 되고, 금봉낭자는 선녀가 되었고, 사랑의 화신인 이들이 제천 박달재에 내려와 제천시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건강을 이루게 해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사랑의 하트 인증샷 필수!)

또한 제천 10경의 십장생 캐릭터 중 하나인 방울이는 의림지를 대표하는 물의 요정으로 푸른 물 위를 콩콩 뛰어다니며 세상의 때를 깨끗하게 정화시켜준다는 요정이라고 합니다. 의림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제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는 느낌은 방울이의 힘이지 싶습니다(요정 포즈 인증샷!) 그리고 의림지 앞에 월미도 파크 같은 옛날 느낌의 바이킹과 몇 개의 놀이기구가 있는 의림지 파크랜드가 있습니다.

▲ 전국 3대 민화마을 중 하나인 제천 교동민화마을

②교동민화마을 – 소요시간 1시간30분 내외
까무러치도록 빠른 속도의 세상이고 새 것만을 고집하다보니, 오래되고 낡은 것이 쉽게 사라집니다. 그러나 오래된 것에는 곰삭혀 놓은 시간의 아름다움(고태미)과 멋(파티나)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귀하고 정겨울 수 있습니다. 켜켜이 쌓여 있는 시간의 더께를 들춰내 추억과 사연을 만나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묵묵히 반세기를 버티고 오랜 세월을 한껏 머금은 출입문과 창문이 인상적인 제천역 앞 대한통운 제천영업소(제천시락국), 제천 도시재생사업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제천 엽연초 취급수납소(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273호), 전국 3대 민화마을로 쫄깃쫄깃 인절미맛 반죽빵에 팥과 슈크림이 들어간 맛난 용빵과 제천향교를 품고 있는 교동민화마을, 제천 역전한마음시장~중앙시장~내토시장~동문시장길..

수 백여년의 역사와 기억이 담긴 저 골목이 그냥 남겨졌으면 좋겠습니다. 레트로(복고)란 좋았던 시절에 대한 회고와 추억이라는 감성을 파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트로는 현실이 힘들고 미래가 불안할 때 인기를 얻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더 아름다운 제천에 어울리는 동네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제천 도심재생 1번지, 제천역
▲ 제천 수제맥주, 솔티맥주

③뱅크크릭 브루잉, 솔티맥주 – 소요시간 1시간 내외
기다리는 사람없는 조그만 시골의 간이버스 정류장은 저 같은 도시 대중교통 이용자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ㅠㅠ.

전원적인 시골 풍경의 정겨움을 느끼며 양조장에 도착했습니다. 소나무 언덕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솔티맥주는 사장님이 벨기에 양조장을 찾아다니면서 배워서 창업한 벨기에식 수제맥주입니다. 벨기에 맥주 제조 장인이 만드는 전통 주조방식 그대로 재현한 국내 최초의 벨기에식(한번 발효한 맥주를 병에 넣어 다시 발효하는 과정을 거침) 과일향 풍부한 에일맥주라고 합니다. 음~ 대략 호가든을 떠올리면 됩니다^^.

사장님의 양조장 투어는 당화조/발효조 등을 둘러보며 맥주의 재료인 보리와 홉, 제조과정까지 설명하는데 특히 맥주의 주원료인 홉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매년 홉수확축제도 개최되며, 양조장투어, 홉따기와 리스만들기, 수제맥주만들기, 홉재배 컨설팅, 홉 농사법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중이었습니다. 시음은 초콜릿 맛과 커피향의 솔티 브라운오렌지 과일향의 솔티 브론드까지만ㅎㅎ..

▲ 내륙의 다도해, 청풍호

④청풍호 유람선 – 소요시간 1시간 내외
청풍호(충주에서는 충주호. 단양에서는 단양호. 제천에서는 청풍호라고 부름)는 충주시~제천시~단양군이 이어진 내륙의 바다, 내륙의 다도해로 불리는 강입니다. 소양호 다음으로 담수량이 많다고 합니다.

유람선의 전체 코스는 충주나루~월악나루(충주)~청풍나루(제천)~장회나루(단양)이며, 주로 청풍나루~장회나루 구간(왕복 25km로 쾌속선으로 1시간 15천원. 단양팔경(옥순봉/구담봉), 금수산, 청풍명월 관광)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파랗다 못해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 조차 없을만큼 맑고 깨끗하고 화창한 날에 자연이 주는 여유와 경치를 만끽해 볼 수 있는 청풍호 뱃놀이 길입니다. 
(아~~ 시간,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네요^^. 참고로 유람선 탑승은 신분증 필수입니다)

▲ 건축문화유산이 보존된 청풍문화재단지

⑤청풍문화재단지 – 소요시간 30분 내외
충주탬 건설로 수몰된 마을 문화재를 원형 그대로 이전하여 복원했다고 합니다. 황석리 고가(ㅡ자형 집. 조선후기 목조기와집으로 구조형식과 건축공법이 특이), 도화리 고가(ㄷ자형 집. 간결한 민도리집 계통의 겹처마 우진각지붕이 특이), 후산리 고가(ㄱ자형 집. 내부 배치가 특이한 중부지방의 보편적인 민가 형태) 등 조선후기 다양한 건축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현란한 색깔, 요란한 형태로 주변을 압도할 듯 서 있는 건축물은 공해입니다. 건축물의 주인공은 사람이라고 웅변하는 이 단정한 한옥들은 여백의 아름다움, 비대칭이 주는 편안함, 단순함이 주는 안정감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좋은 건축물이라는 생각입니다.

▲ 한방약선과 족욕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건강을 챙겨주는 청풍 케이블카의 약방다실

⑥케이블카와 모노레일 – 소요시간 1시간30분 내외
청풍호 물태리역에서 출발, 비봉산역 정상에 도착하여 비봉산전망대에 오르면 구비구비 청풍호 조망가능하며, 아기자기한 포토존, 테라스, 전망대 카페가 있습니다.
나즈막한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푸른 하늘과 청풍호의 눈빛교감, 우거진 산림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성취의 즐거움을 음미해봅니다.

이 시간을 두고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낭만과 행복을 잃어버린 채 늙어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모든 여행을 다 기억하고 살 수는 없고, 기억하려 해도 전혀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간절해지면, 기억은 늘 어떤 대답을 머릿속에서 슬며시 꺼내놓습니다. 무거운 하루를 버터내고 있을 어느 날의 나에게 내 머릿속 지우개는 봄날 비봉산전망대의 햇살을 툭 던져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망대 카페 GRIT 918의 치명적인 빵 향을 언급해 봅니다(카페로 들어서는 순간, 종류별로 하나하나 빵을 담고 있는 인지부조화의 자신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이성을 바짝 차리시길..ㅎㅎ)

▲ 슬로시티 수산의 측백숲길

⑦수산 측백숲길/자드락길 – 소요시간 1시간30분 내외
길은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살고, 사람은 길이 주는 생각을 먹고 걷습니다. 일상과 이상 사이에서 가끔 버거워하는 3050 가장들에게 별생각없이 자드락길을 걸어보라고 권면합니다. 가끔은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머리가 맑아지고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상태가 됩니다.

열 발자국 걸어가면 아홉 번을 뒤돌아 보게 되는 그런 길이 슬로시티 수산 측백숲길과 자드락길(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이었습니다. 슬로시티 수산느림여행의 대표코스이자 우리나라 최대 측백나무길인 측백숲길은 숲을 보호하기 위해 단체여행객은 1일 최대 80명을 넘지 않도록 제한도 하고 있는 힐링숲길이라고 합니다.

▲ 리솜 포레스트

바쁜 도심 일상에서 벗어나 별생각없이 다른 공간의 거리를 걷습니다. 물과 산을 벗 삼아 잠깐을 쉬어가는 여행, 아름다운 풍광과 시골 농가의 건강이 듬뿍 담긴 한 끼 밥상은 여행이라기보다 낯선 곳에서의 “잠깐의 체류”를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바람에 산들거리던 가로수들과 깨끗한 공기, 피로를 깨워주기에 충분했던 진한 봉지커피 한 잔과 친절했던 이장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비록 스쳐가는 작은 이벤트이고 오브제였지만, 멋진 여행을 기억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여행은 돌아온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답해줘야 합니다. 그런 여행지는 두고 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저에게는 이번 제천 답사가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 내륙의 바다, 청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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