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청춘칼럼=정다운의 영화 들여다보기] 자신의 미모에 빠져 하염없이 들여다보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 청년의 이야기. 우리에게 강한 자기애와 관련된 이야기로 익히 알려져 있는 나르시스 신화다. 나르시스라는 청년은 강물에 비친 자신의 미모에 사로잡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얼굴만 들여다보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는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어쩐지 신화 속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본 적이 있는 이야기인 것만 같다.

기억을 되짚다 보니 얼마 전 종영한 한 드라마에서 여배우가 내뱉은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는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남편을 향해 “당신은 자기애성 인격 장애에요!”라고 소리쳤다. 검색해보니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무한한 성공욕에 가득 차 타인의 관심과 존경을 끌려고 하며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비단 드라마 속 주인공만 그런 것이 아니다.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을 사랑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려는 이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나르시스 신화의 현대판이다.

▲ 영화 '미쓰와이프' 스틸 사진

오늘 소개할 영화 <미쓰 와이프> 속 주인공 ‘연우’ 역시 현대판 나르시스 중 한명이다. 앞서 말한 자기애성 인격 장애의 증상과 매우 흡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는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뒤 ‘엄마처럼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 결과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더 큰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강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의 심정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고 비도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녀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은 성공과 부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영화의 중후반 내용은 이랬던 그녀가 점점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며 가족의 소중함을 알아간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실 이 부분이 좀 아쉬웠는데 특히 후반부터는 감동코드가 지나쳐 관객이 울 수밖에 없는 장치적인 요소를 억지로 삽입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장르와 전개상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장면들로 인해 몰입이 떨어진 것이 아쉽다.

▲ 영화 '미쓰와이프' 스틸 사진

그러나 영화가 주는 교훈적인 내용들은 주목할 만하다. 앞서 언급했던 자기애가 지나쳐 새로운 질병을 앓게 된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성공은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지만 성공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것에 대해 옳고 그름은 없지만 자신이 정한 성공에 도달하는 수단이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을 속이며 얻은 성공은 빛나지 않는다.

나르시스는 평생 자신만 사랑하다 죽어서 한 떨기 꽃이 되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 수선화이다. 그래서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 자존심, 고결함이다. 그러나 이 단어들의 이면에는 내면의 외로움이라는 말이 내재되어 있다. 지나친 자기애는 결국 내면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남긴다. 이를 채우는 건 결국 사람이다. 나르시스처럼 자신만 들여다보다 물에 빠지는 대신 물에 빠지지 않게 옆에서 붙잡아줄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성공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