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고도로 진화한 A.I. 아키텍트가 자아의식과 약간의 감정까지 갖추게 되면서 인류를 점령한 2199년.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살아남은 인류 일부는 기계의 추적을 피해 머나먼 지하 세계에 은신처 시온을 건설한다. 기계는 햇빛 에너지가 차단되자 인간의 육체를 이용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한다.

인공 배양으로 창조한 유아를 인큐베이터에서 성장시켜 에너지로 사용한 뒤 폐기할 때 인큐베이터의 연료로 재활용함으로써 계속 사육하는 것. 그리고 인큐베이터 안의 사람들의 정신을 매트릭스라는 1999년의 가상의 세계 안에서 편하게 사는 걸로 착각하게끔 해 마인드가 안정되도록 설계했다.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인 앤더슨은 밤에는 네오라는 해커로 활약한다. 시온 사람 중 리더인 모피어스와 그의 오른팔인 트리니티는 절대적 능력을 지닌 구원자가 나타나 인류를 기계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는 예언을 믿고 그를 찾던 중 네오가 바로 그 선택 받은 자(The One)임을 깨닫고 데려온다.

매트릭스의 삶에 만족하는 파란 약 대신 현실을 깨닫게 되는 빨간 약을 선택한 네오는 센티넬(추적자)들의 위협과 초능력이 강한 스미스 등 요원들의 추격에 시달리는 시온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난한 전쟁에 뛰어든다. 느부갓네살호 선장 모피어스의 도움을 받는 한편 트리니티와 사랑에 빠진다.

‘매트릭스’(워쇼스키 자매 감독) 트릴로지는 마음으로 차안의 구속에서 벗어나 피안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의 유심론과 영혼과 육체를 분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노골적이다. 또한 ‘장자’의 호접몽론부터 사람의 인식 세계인 현상계와 인식을 넘는 물자체를 양립시킨 칸트의 이원론까지 두드러진다.

감독들은 장 보드리야르가 “우리는 존재의 실체는 파악하기 어렵고 단지 존재가 시뮬라시옹된 시뮬라크르만 보고 판단한다”고 쓴 책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이미 BC 4세기에 플라톤은 ‘침대’로 실재론을 설파한 바 있다. 네오는 대놓고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를 꺼낸다.

네오는 스미스와의 결투에서 허망하게 죽지만 트리니티의 키스로 부활한다. 사랑은 죽음마저도 초월할 수 있다는 예수의 가르침이다. 트리니티는 성모 마리아이면서 막달라 마리아이고, 그래서 삼위일체이다. 네오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이거나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친 부처다. 네오는 곧 ‘One’이니까.

스미스는 네오와의 결투에서 네오의 소스 일부를 흡수하면서 타 프로그램을 자신으로 만드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아키텍트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된다. 루시퍼가 된 그는 매트릭스 내의 모든 존재, 심지어 아키텍트마저 자신으로 복제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한다. 종말론이다.

시온은 구약의 종말 때 재림해 세상을 구하는 메시아가 약속한 땅이다. 사람들이 예언자로 모시는 오라클(신탁)은 인간의 심리를 분석해 아키텍트에게 보고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적당히 도와 매트릭스를 불안정하게 만들게끔 설계돼 있다. 또 아키텍트와 함께 매트릭스를 창조하는 그 세계의 이시스이다.

그러나 이제 노후화해 아키텍트는 그녀의 후계자로 고아 소녀 사티를 내세운다. 오라클은 사티에게 ‘쿠키’ 굽는 법을 가르치고(DB 전수) 사티는 매트릭스의 태양을 만드는 능력을 갖게 된다. 오라클을 보호하는 세라프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천사대전’에 하느님의 의지인 최상위 천사라고 적었다.

모피어스는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이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그의 전 연인 니오베는 레토 여신에게 도발했다 자식을 잃은 왕비이다. 느부갓네살은 BC 6세기 유대인을 바빌론으로 포수한 왕이다. 키 메이커를 숨긴 메로빙지언은 갈리아의 메로빙거 왕조이고,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지옥 왕 하데스의 아내이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로 창조된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 같은 변수가 생기면서 최악의 에덴 동산으로 변하고(프로그램 오류), 시스템이 불안정해지자 아키텍트는 오류를 수정한 뒤 5번이나 ‘리로디드’했는데 그때마다 남자 7명과 여자 16명만 남긴 채 모두 죽였다. 창세기 7장 16절 노아의 방주이다.

5번의 네오들은 모두 마지막 선택의 순간 시온을 택했지만 이번의 네오는 트리니티와의 사랑을 택한다. 네오가 인류를 버리고 트리니티에게 기운 건 사랑이 없다면 인류의 희망도 없다는 의미이다. 결국 네오는 스미스에게 희생당함으로써 십자가 모양으로 죽는다. 예수의 희생으로 인류가 구원을 받았듯.

이론상으로 네오가 아키텍트 혹은 스미스를 이길 순 없다. 그래서 네오가 찾은 최후의 방법론은 아키텍트의 질서이다. 스미스가 아키텍트의 통제에서 벗어나 그까지 노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키텍트에게 그걸 알려 준 뒤 자신이 희생할 테니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하라고 제안해 성공한다. 메시아의 재림.

이 과정에서 트리니티는 죽고 네오는 눈을 잃는다. 네오가 양 세계를 초월한 니체의 위버멘시(극복인)가 된 건 시력을 잃은 뒤 유심론의 마음의 눈으로 보는 초능력이 생겼기 때문. 아키텍트는 오라클에게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겠다”면서도 “하지만 이 평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인류는 BC 1만 5000년부터 여신 트리비아를 통해 가이아(코스모스, 결정론), 에로스(사랑), 카오스(이변)의 우주의 삼위일체를 믿었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삼위일체론, 이원론, 성경을 토대로 구축됐다. 디지털화와 기계 문명은 이것이나 ‘터미네이터’처럼 인류를 점령할 것인가, 사랑이 그걸 이겨 낼 것인가?

▲ 유진모 칼럼니스트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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