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마블에 매번 패배하는 DC가 그나마 자부심을 갖는다면 ‘왓치맨’일 것이고, DC에 아직 애정이 남은 관객이 가장 그리워하는 후속작은 ‘콘스탄틴’(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2005)일 것이다. 어릴 때 자살을 시도한 바 있는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은 지옥행 징벌을 피해 천국에 가기 위해 퇴마사가 됐다.

평소처럼 한 소녀의 몸을 빌려 세상으로 나오려 하는 혼혈 악마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예전과 다른 점을 느낀다. 천사와 악마는 서로의 영역을 구분한 평화조약을 통해 인간계에 침입하는 것을 각각 견제해왔다. 인간계에 들어오는 악마는 그런 순수 혈통이 아니라 이종의 피가 뒤섞인 혼혈종일 뿐.

그런데 순혈 악마가 규율을 어기고 인간계에 침투해 균형을 깨뜨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같은 일을 하는 친구 비먼과 헤네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사를 부탁하지만 두 사람은 악마에게 살해당한다. 여형사 안젤라(레이첼 와이즈)는 쌍둥이 이자벨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단순한 자살이라고 단정 짓기엔 이상한 징후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에 동생의 자살 장면이 담긴 CCTV를 되돌려 보다가 그녀의 입 모양에서 ‘콘스탄틴’을 확인하곤 그를 찾아간다. 콘스탄틴은 순혈 악마의 인간계 침입과 이자벨의 죽음이 연관이 있고, 안젤라가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걸 감지한다.

안젤라는 이자벨과 자신도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었고, 이자벨은 그 이유로 부모에 의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으며, 자신은 그걸 피하기 위해 일부러 안 보이는 척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결국 그들은 루시퍼의 아들 마몬이 ‘운명의 창’을 얻어 인간계를 점령코자 한다는 걸 알아낸다.

콘스탄틴은 인간계에서 퇴마사와 혼혈 악마의 중립국 역할을 하는 파파 미드나이트를 찾아갔다 사악한 혼혈 악마 발사자르를 만난다. 그를 통해 마몬이 운명의 창으로 히스패닉 계열 사람들을 자신의 군사로 만들고 발사자르에게 안젤라를 잡게 한 뒤 희생양으로 이용해 인간계로 나오려 했던 것.

콘스탄틴은 악마를 보는 능력 때문에 그 트라우마로 자살을 했지만 지옥에서 2분 만에 부활했다. 그리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 15살 때부터 하루에 30개비씩 담배를 피운 탓에 폐암 선고를 받은 상황. 자신이 잡아 보낸 악마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옥행이 뻔하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해 퇴마사가 됐다.

하느님의 전령인 가브리엘이 콘스탄틴의 천국행을 가로막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오랜 세월 지켜본 결과 “인간은 고통을 느껴야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비로소 참회하게 된다”고 판단해 그 고문 기술자로서 마몬을 깨워 인간계에 보내겠다는 설정은 기독교계의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런데 그런 유사 상황은 ‘왓치맨’에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치로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이 코앞에 이르자 슈퍼히어로 멤버 오지만디아스는 전 세계의 주요 도시를 폭발해 수천만 명을 희생시킴으로써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지구촌이 똘똘 뭉치도록 만들어 전쟁을 막는다. 인식론의 문제.

미국은 평화의 명분으로 여러 나라에 파병해 전쟁 중이고, 아베는 일본 방위의 명목으로 70년 만에 전쟁 능력을 갖췄다. 죽기 직전의 콘스탄틴이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냐”고 묻자 루시퍼는 “물론, 난 담배 회사 주주거든”이라고 답한다. 이 얼마나 훌륭한 비유고 풍자며 야유인가?

콘스탄틴은 3C 후반~4C 4개로 갈라진 로마제국을 통일한 대제 콘스탄티누스의 영어식 이름이다. 그의 재위 기간 중 가장 큰 업적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동안 다신교였던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종교 판도를 확연히 바꿨고 제국의 중심을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것이다.

만약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종교 판도와 모든 헤게모니는 어땠을까? ‘콘스탄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 지위에 대한 반항이나 믿음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과 희생 그리고 사회의 규율과 국가의 올바른 체제에 근거한 균형이다.

평범한 인간이 된 가브리엘이 천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콘스탄틴에게 총을 건네주며 쏘라고 하지만 그는 대신 주먹으로 한 대 때리며 “인간의 고통을 느껴 보라”고 말한다. 인간으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란 메타포다. 또 허락 없이 엉뚱한 일을 저지른 가브리엘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가 아닐까?

콘스탄틴이 경험하는 지옥과 천국은 현 세계와 다르지 않다. 천국과 지옥은 결코 멀리 있거나 사후에 방문하게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현사실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유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로렌스의 장편상업영화 데뷔작이라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주얼이 화려하고 메시지도 꽤 깊다.

감독은 드러내놓고 균형의 인식론을 화두로 던진다. 안젤라는 믿지 않았지만 이자벨은 자살한 게 맞았다. 기독교는 자살을 꽤 심각한 범죄로 취급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식이란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기독교만 있는 게 아니고 무신론자, 이신론자까지 있다. 행복의 기준도 제각각이다.

마몬이 인간계에 나오려고 하자 콘스탄틴은 사금파리로 손목을 그어 루시퍼를 불러낸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영혼을 그에게 맡기는 대가로 이자벨의 천국행을 요구한다. 결혼과 이혼, 자연사와 존엄사에 대한 인식론이 바뀔 것을 예고한 것. 이타적 희생을 통한 균형과 조화란 주제는 숭경할 만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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