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렛 미 인'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할리우드가 리메이크했고, 국내에선 2008년과 2015년에 걸쳐 2번 개봉됐던 ‘렛 미 인’(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마니아들에겐 걸작으로 꼽힌다. 12살 소년 오스칼은 친구들에게 ‘돼지’라는 악의적 별명으로 불리고 집단 따돌림을 받으며 엄마와 산다. 이혼한 동성애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다.

어느 눈 내리던 밤 오스칼은 옆집에 아버지와 함께 이사 온 창백한 얼굴의 동갑내기 소녀 이엘리를 만난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던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되고 다시 연인으로 발전한다. 오스칼의 집 문 앞에 선 이엘리는 그에게 ‘들어와’라고 말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왠지 오스칼은 살짝 웃음 짓는다.

이엘리는 참다못해 허락 없이 오스칼의 집에 들어갔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죽을 뻔했다 간신히 살아난다. 그녀는 상대방의 허락을 얻은 뒤 집에 들어가야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뱀파이어다. 외형적으론 아름다운 사랑 얘기인 듯하지만 뱀파이어 신화를 빌려 인생은 외롭고, 인간은 소외됐다고 외친다.

이엘리가 허락을 구하는 건 예의를 상실한 현대인에 대한 경고다.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비는 양립하기 힘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구조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준거틀과 동력, 세상을 움직이는 구동력이 돈과 권력인 데 대한 비판. 나약했던 오스칼이 강해지는 성장기로 자본주의의 허점을 비판한다.

▲ '신세계'

이정재, 황정민 주연의 ‘신세계’(박훈정 감독)는 숱한 화제를 생산하며 신드롬을 낳았는데 그중에서도 황정민의 ‘드루와, 드루와’란 유행어가 가장 강할 것이다. 폭력조직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골드문 그룹의 새 회장 자리를 노리는 정청(황정민)은 라이벌 이중구(박성웅)의 수하들의 급습을 받는다.

홀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적들에게 포위당한 그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담대하게 손가락을 까딱이며 덤비라는 뜻으로 ‘드루와, 드루와’(들어와, 들어와)를 외친다. 그런 백척간두의 입장에서 호기롭게 만용을 부리는 건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부터 ‘친구’의 준석(유오성)의 정서와 맞닿아있다.

도철은 재벌 3세 태오(유아인)의 살인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편을 드는 다른 관할의 형사에게 분노해 그를 폭행하며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체면)가 없냐”고 일갈한다. 준석은 죽마고우였지만 상대 조직의 중간 보스가 된 동수(장동건)의 살인교사 혐의로 재판정에 섰을 때 혐의를 인정한다.

면회 온 친구가 부인하면 사형은 피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냐고 묻자 준석은 “건달이니까”라고 답한다. 정청은 자신이 절대 이길 수 없고, 그래서 죽을 가능성을 봤다. 그럼에도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지 비겁하진 않겠다’는 자존감을 앞세운다. 도철과 준석 역시 비겁한 삶의 연장보다 명분이 중요했다.

▲ '베테랑'

‘렛 미 인’은 오스칼의 생존 적응기를 통해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남을 짓밟을 수 있다는 논리가 통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한다. 이엘리의 ‘돈이면 뭐든 된다’는 합리화는 바로 태오의 인생관이다. 하지만 도철이 고군분투 끝에 태오를 붙잡듯 아직 세상에 희망은 남았다고 예술가는 노래한다.

미국 독립영화의 스타일리스트 짐 자무쉬 감독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그 근거의 종착지로 예술을 웅변한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아담(톰 히들스턴)과 모로코 탕헤르에 사는 이브(틸다 스윈튼)는 결혼식을 3번이나 한 부부다. 아담은 500년, 이브는 3000년이나 산 뱀파이어다.

인기 높은 인디 뮤지션인 아담은 사람을 좀비라 부르며 “좀비들 때문에 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는 허무주의적 사고방식 아래 칩거해 살다 더 이상 생존해야 할 이유를 못 느끼고 자살을 꿈꾼다. 반면에 이브는 첨단 스마트폰을 사용할 정도로 시대적 변화에 잘 적응해 어떻게든 연명하려 노력한다.

이렇듯 양극의 이념을 지닌 두 뱀파이어는 그러나 공통적으로 순수가 사라진 이 시대를 살기 힘들다. 직접 흡혈은 안 하지만 음지의 거래를 통해 사람의 피를 공급받아 그걸로 연명하는데 그 피가 점점 더 혼탁해지기 때문이다. 피는 생명력이다. 피가 더러워진 건 영혼이 오염됐다는 강한 메타포.

▲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이 영화는 예전엔 풍요로웠지만 이젠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점점 황폐해지는 지구의 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을 비유하며 인류가 마지막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건 예술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예술가를 뱀파이어로, 사람을 좀비로 각각 설정한 근거는 예술은 영원하다는 확신에 있다.

사람의 형상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A.I.와 인간의 경계를 묻고 사람의 정체성을 운운할 정도로 이제 새로운 인식론의 정립과 이론의 정합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제대로 훌륭한 예술을 즐길 때 비로소 좀비가 아닌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은유는 다분히 니체스럽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작가들이 보편과 타당의 반대편에 선 뱀파이어와 깡패라는 부정적 캐릭터를 통해 칸트식으로 이성을 비판하는 건 현대사회의 질서가 어질러졌고, 현대인의 정서가 메말랐으며, 세상이 정의 대신 불의와 자본이 법이 됐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향한 통절함이다.

‘하물며 뱀파이어조차도 주인의 허락 없인 남의 집에 함부로 못 들어가는데’라고, ‘무식한 깡패마저도 의리와 양심을 지키는데’라고, ‘뱀파이어도 진정한 예술의 값어치를 아는데’라고 돈과 권력을 향해 울부짖는다. 이엘리가 허락을 구하는 건 진리로 올라가는 지성의 계단의 입문이자 덕이고 선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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