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결혼 12년차 부부가 최근 들어 자주 싸우게 되고, 싸움 후에는 소위 ‘냉전’ 상태가 길어진다며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격이 맞지 않는데 이대로 살아야 할 지 조언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남편은 자기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다면서 답답해 했습니다. 회계사로 일하는 남편은 매사에 확실한 것을 좋아하여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편이었습니다. 즉 자신은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그 이유가 납득이 되면 금방 화해를 할 수 있는데,부인은 말 수가 적어서 좋거나 싫은 표현이 불분명해서 답답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점을 확인하려는 것이 번번이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고, 부인이 이제는 남편인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며 하소연 했습니다.

부인은 프리랜서로 번역 일을 하는데,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남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자신에게는 직업 특성 상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싸우지 않으려고 남편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며 살아왔는데, 남편이 그런 자신의 노력과 고통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뭐든지 트집만 잡으려하고 갈수록 비난이 거칠어져서 더 이상 참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상세한 면접과 성격유형 검사의 결과에서 남편은 ‘외향-사고형’, 부인은 ‘내향-감정형’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외향-사고형’의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의견이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리하여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좋다는 의견은 물론 싫다는 것도 분명하게 말해주면, 그런 점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행동을 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서 진행하는 것을 편안해 합니다. 만약 잘못된 결과가 나오면 그 이유에 따라서 새로운 시도를 하여 결국 성취하는 것에서 보람을 얻습니다.

반면에 ‘내향-감정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런 만큼 타인의 느낌이나 생각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양보하며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지만,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점에 대해서는 어떤 불이익이 와도 타협을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이 숨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는 신임과 보호를 받고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이들은 예상 외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부부의 성격 유형은 정반대로 보이는데, 그러면 이들은 애초부터 잘못된 조합인걸까요?

사람의 성격이란 정말 이상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 있는 것을 편안해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 유형의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상황도 자주 나타나곤 합니다. 즉 연애 시절에 남편은 부인을 통하여 평온함과 안정감을, 또 부인은 남편에게서 유쾌하면서도 실제적인 능력을 발견하고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이 상대를 통하여 보완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결혼 이후에는 자신에게 익숙한 모습을 상대에게 요구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대를 비난하느라 현재와 같은 불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흔히들 성격이 맞지 않으면 같이 살기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릅니다. 즉 성격은 좋거나 나쁘거나 또는 맞거나 안 맞거나 해서가 아니라 서로 맞춰가려는 유연성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상대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자신과 상대의 어떤 기대와 욕구가 좌절되고 있는지를 각자 돌아보는 태도가 바람직합니다. 저는 남편에게는 부인을 신뢰하며 격려할 것을, 또 부인에게는 남편의 능력과 수고에 감사하고 행복함을 표현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부부는 이런 훈련과 노력의 결과로 불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특성과 장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과는 다른 상대의 특성을 인정하고, 필요한 점은 배워서 함께 원만해져 가는 것이 어쩌면 결혼의 심오한 목표라고 할 것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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