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슈퍼 배드’(2010)에서 슈퍼 빌런 그루를 추종했던 귀여운 미니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니언즈’(카일 발다, 피에르 코팽 감독, 2015)는 미니언의 역사와 그루와의 인연을 밝히는 스핀오프 작품이다. 현생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미니언 종족은 지구 최고의 악당을 섬기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를 보스로 모셨지만 실수로 활화산에 빠뜨린 뒤 석기시대에 출현한 인류를 떠받들기 시작한 이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중세 유럽의 드라큘라, 프랑스의 나폴레옹까지 대장으로 삼았지만 미니언에 비해 인간의 삶은 짧았다. 결국 그들은 얼음왕국 동굴에서 그들만의 문명을 만든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의 이유는 최고의 악당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라 그런 삶은 무의미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동족을 보다 못한 케빈은 새 보스를 찾기 위해 세상을 모험하겠다고 선언하고 밥과 스튜어트를 데리고 동굴을 빠져나와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 도착해 악당대회 개회 소식을 접한다.

그들은 대회가 열리는 올랜도로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으로 넬슨 가족의 차에 탑승한다. 그런데 휴게소에 도착한 넬슨 가족은 복면을 하고 은행을 턴다. 경찰에 쫓기던 위기 때 케빈이 경찰차를 따돌림으로써 올랜도에 도착한다. 악당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최고의 여자 악당 스칼렛의 부하 채용이다.

대회에 참가한 내로라하는 악당들이 스칼렛의 부하가 되겠다고 이전투구를 하지만 얼떨결에 세 주인공이 발탁돼 그녀의 은신처가 있는 영국의 모처로 동행한다. 스칼렛이 처음 내린 임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관을 훔치는 것. 영국의 여왕이 돼 자신을 무시한 이들에게 복수하는 게 그녀의 숙원.

인트로에서 인류 이전에 미니언이 있었다는 진화론이 바닷속에서부터 육지로 이어진다. 티라노사우루스를 보스로 모셨던 미니언들이 인류를 발견하자마자 새 보스로 모신 후 나폴레옹까지 이어진다는 설정은 순자의 성악설이다. 지구에 사람만큼 사악한 존재는 없다는 이 웅변은 많은 걸 시사한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현재의 기술로도 건설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이 영화는 그 수수께끼를 미니언에게 넘긴다. 즉 지구의 주인은 인류가 아니라는 논지. 뉴욕에 도착한 세 주인공이 백화점 안을 헤매다 거울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시퀀스는 현대인의 거울자아 심리에 대한 통쾌한 조롱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건 요소요소에 현대인에 대한 조소가 담겨있고, 특히 각 시퀀스의 유머를 통해 영국과 미국에 대해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던진다는 점이다. 세 주인공이 미국에 도착해 처음 ‘득템’한 게 멜빵 청바지다. 그 아이템은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청교도의 성실한 노동과 개척정신을 뜻한다.

하지만 지하에서 악당대회가 열리는 1968년의 미국은 닉슨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기 직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전으로 헤게모니를 쥔 미국이 베트남 내전에 개입해 열을 올리던 시기다. 닉슨은 당선 후 선언한 닉슨 독트린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을 주변 나라들로 확산시켰다.

미니언들의 지난한 여행길엔 미국의 세계 최초의 달 착륙이 조작이라는 소문을 기정사실화하는 시퀀스가 삽입됐다. 기타광인 스튜어트가 지미 헨드릭스가 생전에 애용하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보고 감격하는 시퀀스와 비틀스의 ‘애비로드’ 앨범 재킷을 재현한 유머도 더하는 센스까지 보여준다.

거기엔 비틀스의 ‘Love me do’가 삽입됐다. 이 영화가 아이를 위한 만화영화가 아니라 어른까지 포용하려는 동화인 증거는 이처럼 차고 넘친다. 인트로부터 터틀스의 ‘Happy together’가 흘러나오더니 킹크스의 ‘You really got me’, 박스탑스의 ‘The letter’까지 1960년대의 히트곡이 즐비하다.

주인공들이 올랜도에 도착했을 때 나온 “법대로 살면 재미없죠”라는 대사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건 미니언 종족의 존재의 이유가 최고의 악당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 있다는 설정과 맞닿는다. 미니언들에게선 먼저 선과 악이 공존한 볼테르가 보인다. 악당을 섬기려고 애쓰지만 사실 그들은 착하다.

볼테르는 ‘흥겨운 음악은 울적한 사람에게는 위안이 되지만 분노한 사람에겐 신경질을 부채질한다’고 했다. 미니언을 악당을 숭앙하는 존재로 설정한 건 인간이 선과 악의 경계를 제멋대로 정한다는 우언법이다. 경찰에 쫓기던 밥이 얼떨결에 바위에 단단히 박힌 엑스칼리버를 뽑아 새로운 왕이 된다.

그에게 선양한 엘리자베스는 펍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술꾼들과 희롱한다. 스칼렛의 추종자 중 스모 선수가 단연 두드러진다. “내가 아는 일본어라고는 사요나라뿐”이란 대사도 있다. 영국과 일본은 상징적으로 왕(여왕)을 모시는 몇 안 남은 나라다. 일본은 대놓고 풍자하고 영국은 양가성을 적용한다.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여왕도 사람이고 여자다. 스칼렛은 ‘여자는 은행을 털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악당이 됐다고 한다. 가난하고 무기력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업신여겼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여왕이 되고 싶다. 이 사회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과 무모한 걸 강요한다는 메타포다.

스칼렛은 타고난 악당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과 편견이 만든 기형아다. 사랑과 정으로 감싸주면 따뜻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왕관을 탈취해 달아나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어린 그루에게 빼앗기고 미니언은 여왕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작은 왕관을 그녀에게 준다. 결국 플라톤과 성선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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