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광주의 장서(최우제)와 충서(이지후) 형제는 아주 부유했던 선친으로부터 넉넉한 유산을 물려받고 산다. 장서와 달리 충동적인 충서는 사업을 한답시고 재산을 많이 날렸다. 장서는 너른 저택과 대나무 군락지 등에서 스님과 예술가들을 후원하며 넉넉하게 살던 중 충서를 통해 현재(예지원)를 만난다.

현재에게 첫눈에 반한 장서는 금세 사랑에 빠지고 결혼 날짜를 잡는다. 그런데 결혼식 하루 전날 갑자기 현재가 사라진다. 그리고 17년 54일 만에 현재가 방문하겠노라고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가 약속한 하루 전날 현재와 충서의 아들이라는 동주(강은우)가 찾아온다. 충서는 3년 전 돌연 생을 마감했다.

다음날 현재가 찾아온다. 그녀와의 저녁 식사 자리를 위해 장서는 예전에 함께 즐겼던 음식은 물론 결혼 선물로 박태후 화백으로부터 받은 그림, 현재의 선배 황인옥 작가가 선물한 그릇들, 그리고 지금 함께 사는 절친한 친구 다음 스님의 바라춤 등을 준비한다. 장서는 그녀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장서가 그녀와 사랑에 빠질 때 미처 놓친 게 충서와의 관계였다. 장서와 현재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동거생활을 했는데 그녀는 어디 간다 말도 없이 수시로 사라지곤 했다. 어느 날 할 말이 있어 충서의 집에 갔더니 현재의 속옷과 결혼 예물이 있었다. 현재는 사라질 때 돈 될 만한 건 다 털어갔다.

장서는 17년 동안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또한 충서와 현재에 대한 배신감과 진실에 대한 궁금증으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과연 현재는 누굴 사랑한 걸까? 충서와 현재의 관계는 자신보다 먼저 형성된 걸까, 아니면 결혼을 약속한 다음에 이뤄진 불륜인가? 자신과 충서 중 누가 불륜일까?

게다가 결정적으로 현재가 자신에게 하려 했던 엄청난 행위의 진위를 알고 싶다. 과연 그 음모를 충서가 알고 있었던 걸까? ‘로드 무비’와 ‘얼굴 없는 미녀’의 김인식 감독이 모처럼 내놓은 ‘그녀의 비밀정원’이다. 멜로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스릴러의 분위기까지 가진 미스터리 치정극이 더 가깝다.

17년과 동주가 대학생이라는 설정이 엄발난다는 점을 제외하곤 감독의 예술적 감각이 빛나는 독립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감독은 궁극의 예술세계에 오르고픈 욕망을 마치 밀교를 탐험하듯, 사람의 심리의 밑바닥을 훑는 듯하며 드러내놓고 카메라에 담았다. 장서의 거처부터 모든 신이 회화적이다.

동주는 장서에게 지금까지 엄마와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부터 배웠다고 술회한다. 그런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르겠다며 이젠 이곳 광주의 장서의 집에 정착할 테니 이제 장서더러 떠돌아다녀 보라고 한다.

현재가 “옛날 그대로네”라고 하자 장서는 “이 집은 시간이 고여 있다”고 응수한다. 현재는 만물은 떠돌아다니며 변한다고 한 헤라클레이토스고, 장서는 동시대에 만물불변설을 주창하며 그에게 맞선 파르메니데스다. 현재가 장서와 충서를 동시에 만난 건 헤라클레이토스의 대립물의 통일을 뜻한다.

그러나 장서는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인지, 충서가 그녀의 음모에 가담한 건지, 그녀는 진짜 자신에게 살의를 품었던 것인지, 충서의 진심은 무엇인지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들을 풀고 싶다. 대립물을 믿기 싫고, 그래서 통일이란 없고 오로지 세계의 근원인 형이상학만 있다고 믿는 것.

제목은 현재가 간직한 비밀이자 전남 나주 박태후 작가의 자연공원 죽설헌을 뜻하고 실제 그곳에서 촬영됐다. 또한 그의 수묵화와 더불어 황인옥 작가의 아름다운 도기들도 훌륭한 미장센 혹은 조연배우 역할을 한다. 특히 하이라이트의 다음 스님의 바라춤과 배경음악은 짙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감독은 교묘하게 5·18민주화운동을 담았다. 장서는 충서가 망한 걸 두고 돈에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현재는 순수한 동주를 보고 어떤 바보를 닮았다고 흐뭇하게 웃는다. 형제는 똑같이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장서는 민주화운동과 거리를 두고 지킨 반면 충서는 아낌없이 민주화에 쏟은 뒤 의문사 했다.

현재가 자본주의에 충실한 장서 대신 충서를 택한 이유는 그런 열정 때문이었다. 최소한 그녀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은 알았다. 하지만 충서의 운동에 동참할 용기는 없었다. 뱃속에 든 동주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국을 전전했다. 장서는 “아마 삶이 싫었나 봐”라며 충서의 거룩한 정신마저 외면한다.

하지만 현재의 침묵이 계속될수록 충서를 점점 이해하게 된다. 그가 현재를 위해 준비한 선물의 마지막인 다음 스님의 바라춤과 “가장 상처 입은 사람은 충서”라는 고백이다. 바라춤은 의식에 참여한 이들의 내면을 정화하는 뜻을 지녔다. 구성진 관악기의 선율과 춤사위는 진혼제나 씻김굿이 연상된다.

1980년 친구들을 외면한 채 홀로 외국 유학을 떠난 ‘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자 자아비판이다. 충서가 핏물이 가득한 욕조 안에서 숨을 거둔 신은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의 장엄한 분위기를 풍긴다. 다만 다비드는 그리스도적 희망으로 그렸다면 감독은 여전히 시대는 암울하다고 암시한다.

감독은 의도를 철저하게 은폐하기 때문에 굳이 그걸 연관시키지 않고 미스터리 멜로로 즐겨도 나쁘지 않다. 뜬금없이 이런저런 미끼들을 툭툭 던지며 남도 예술의 향연을 차려주기 때문에 그런 비주얼을 즐기며 차근차근 추리를 해가는 재미가 있다. 단, 예상이 가능한 반전은 옥에 티.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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