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대학을 휴학 중인 유미(이세영)에게 이복동생 지유(박소이)를 데려가라는 공무원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를 여의자 엄마 윤희는 친구 경선(박지영)이 운영하는 호텔 레이크에서 일을 하는 가운데 새 남자를 만나 뒤늦게 지유를 낳고 5년 전 미쳐서 자살했다. 유미는 지유와 함께 레이크에 간다.

시골 외진 곳에 있는 레이크에 가는 길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는 등 기분도 예감도 좋지 않지만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 상 지유를 키울 수 없기에 경선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경선은 아주 반갑게 맞아주며 예전에 그곳에서 자란 유미의 추억을 되살려준다. 유미는 405호에 들어간다.

어릴 때 자신이 쓰던 방이다. 벽장을 열어보니 그녀가 고이 간직했던 보물 상자가 그대로 있다. 토끼 인형 바니와 꽤 큰 브로치를 꺼내 지유에게 준다. 비수기라 호텔은 한적해 종업원은 예린(박효주)이 유일하다. 그런데 예린은 왠지 유미에게 불친절하고 술에 취하면 뭔가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마을 경찰서 오 반장이란 남자가 경선에게 보약을 선물한다. 마을엔 5년 전 실종됐다는 유미의 동창생 은경을 찾는 전단지와 함께 얼마 전 실종된 탈북 여성을 찾는 전단지도 함께 배포된다.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논 뒤 지유를 재운 유미는 늦은 밤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나다 경선의 전화를 받는데.

호러 ‘호텔 레이크’(윤은경 감독)는 인트로와 지방 국도 시퀀스 등 시작부터 충격적인 장치들이 향후 펼쳐질 공포를 예고한다. 로케이션 장소인 충청도의 호텔부터 묘한 분위기다. 특히 감독은 나선형의 천장 구조를 이용해 누군가 나를 훔쳐보고 있다는 ‘몰래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을 충분히 유도한다.

뭔가를 숨기는 듯한 이중적 태도의 경선부터 신들린 듯한 예린까지 뭔가가 수상쩍다. 심지어 아직 10살도 안 됐을 지유와 주인공 유미까지 의심의 여지가 존재한다. 지유는 호텔의 ‘엄마 방에 사는 아줌마’와 대화를 나눈다. 지유 담당 공무원은 “학대받았고, 상상력 과잉의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경선은 “지유는 네 엄마 하나도 안 닮았어”라고, 유미는 ”이모가 더 엄마 같아“라고 상대방에게 고백한다. 유미가 ”그런 엄마가 없었으면“이라고 엄마를 원망하자 경선은 ”가족밖에 없어“라고 정정해 준다. 사람들은 그걸 알지만 수시로 망각하거나 무시하다가 외롭고 힘들 때야 비로소 깨닫곤 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닭으로 냉동 효과를 연구하지 말고 심리학에 파고들었더라면 조금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이론 중 4대 우상이 이 영화 속에 심오하게 녹아있다. 편견과 아집이다. 어릴 때 유미는 아버지로부터 “네 엄마는 미친년”이란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5년 전 유미는 마지막으로 엄마를 만난 뒤 자신이 탄 버스 뒤를 따라 질주하는 엄마를 외면했다. 그녀가 정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유미에겐 잘해주려 한 엄마다. 지유 담당 공무원도, 유미도 지유를 믿지 않는다. 순수한 아이의 눈이 혼탁한 어른의 눈보다 밝은데.

어릴 때부터 유미는 경선의 외아들 상호와 친한 친구로 지냈고, 그를 제일 부러워했다. 그 역시 결손가정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엄마 윤희와 달리 경선은 부유했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사 요소요소엔 자신이 경선의 딸로 태어나지 않은 걸 원망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슬래셔만 빼고는 오컬트, 판타지, 심리학 등을 버무려 마치 공포영화의 종합선물세트라는 느낌을 준다.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1980)부터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아방가르드 컬트의 걸작 ‘성스러운 피’(‘산타 상그레’)를 절묘하게 섞어 오마주한 듯하다.

인트로부터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임팩트 있게 등장하는 동구의 버스 정류장의 의미가 꽤 깊다. 정류장은 사람들이 차를 타거나 내리는 곳이다. 목적지일 수도, 과정일 수도, 출발지일 수도 있다. 인생의 관문이다. 인트로의 여자도, 윤희도, 은경도 그 호텔에서 혹은 그 마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

왠지 경선이 불편하고 호텔에선 이상한 게 보이기에 지유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하고, 유미는 “우리에게 집이 어딨냐”며 은근히 이곳에 머물 수 있게끔 경선에게 잘 보이라고 압박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자취생인 그녀는 떠나야 했기에. 버스 정류장을 통해. 이기적이고 비겁했던 그녀는 변한다.

지유가 “우리 어디 가?”라고 묻자 유미는 “집에 가야지”라고 답한다. 그녀가 세상에 태어난 건 세상에 버려졌다는 의미다. 아버지는 일찍 그녀 곁을 떠났고, 엄마는 남자 때문에 그녀를 버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더러 이복동생을 맡으라니. 부당하다는 생각에 엄마 친구에게 기대는 것이다.

후반부에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한 고교생이 유미를 돕고자 나선다. 그 눈은 사실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초월적 존재와 초자연적 현상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다. 이 영화 내내 흐르는 관념론적 인식론이다. ‘오른’과 ‘Right’는 ‘옳다’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게 결정적 힌트다.

고교생이 “이건 내가 건드릴 게 아닌 것 같아. 누나도 빨리 도망가”라고 권유하자 유미는 “또 도망가라고?”라며 반발한다.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전체 흐름은 기계론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유미에게 적극적 개척정신을 부여함으로써 라이프니츠적 낙관론으로 바뀐다. 29일 개봉.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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