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오펀; 천사의 비밀’(자움 콜렛 세라 감독, 2009)은 아이디어 하나가 얼마나 훌륭한 시나리오를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 호러 영화다. 피아노 교수 출신 케이트(베라 파미가)와 디자이너 존(피터 사스가드) 부부는 한적한 곳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사춘기인 아들 대니얼, 딸 맥스와 함께 행복한 듯하다.

그들에게는 각자 상처가 있다. 케이트는 셋째 제시카를 유산한 뒤 알코올에 중독돼 맥스가 연못에 빠져 죽을 뻔한 걸 몰랐다. 다행히 존이 구했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일로 그녀는 재활원에 들어갔다 왔다. 10년 전 존은 바람을 피운 적이 있기에 그 죄악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아이 하나 더 낳고 싶지만 두려운 케이트는 존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다 입양을 하기로 결심하고 보육원을 찾는다. 그들은 9살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의미심장한 그림을 잘 그린 에스터(이사벨 펄먼)를 입양한다. 설리반 가족이 러시아인인 그녀를 입양했는데 화재로 일가족이 죽고 그녀만 살았다.

행복해질 줄만 알았던 그들의 삶에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목과 손목에 리본을 하고 구닥다리 드레스를 입고 성경 책을 들고 다니는 에스터를 동네와 학교의 아이들이 비웃고, 대니얼마저도 흉본다. 페인트 볼로 사격 연습을 하던 대니얼이 비둘기를 맞춰 괴로워하는데 에스터가 잔인하게 죽인다.

에스터가 샤워를 하는 사이 그녀의 옷을 정리해 주던 케이트는 서랍 깊은 곳에서 낡은 성경 책과 갈피에 꽂힌 여러 장의 중년 남성의 사진을 본다. 제시카를 놀린 소녀가 미끄럼틀 위에서 추락하는가 하면 케이트의 집을 방문해 에스터의 비밀을 알리고 간 애비게일 수녀가 사라져 경찰이 나선다.

케이트가 에스터에게 피아노를 잠깐 가르쳐줬을 뿐인데 차이콥스키를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케이트는 존을 설득해 자신을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에게 에스터를 데려가지만 의사는 칭찬만 늘어놓는다. 케이트가 술을 입에 댔다고 에스터가 이간질을 하자 존은 그녀를 다시 재활원에 보내려 하는데.

존은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예일대 교수였던 케이트는 개인 교습으로 일을 재개하려 한다. 겉으로는 풍족하다. 하지만 존은 바람을 피웠다는 자책감에, 케이트는 제시카를 잃었다는 핑계로 알코올에 빠져 하마터면 맥스까지 잃을 뻔했다는 트라우마에 구속돼있다. 불륜과 연못은 그들의 금기어다.

대니얼은 소심하고 겁이 많다. 가족 중 가장 영민한 맥스는 불행하게도 귀머거리로 태어나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이 가족은 아메리칸드림 정도는 아닐지라도 비교적 성공한 미국의 중상류층을, 더 나아가 미국을 상징한다. 그들의 집이 호화로운 전원주택인 건 프런티어의 신대륙 개척을 뜻한다.

수많은 고아 중 러시아 출신을 입양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구 소련과 대척점에 서서 끊임없이 경쟁하며 심지어 달 착륙마저도 조작했다는 의심을 산 미국 정부에 대한 조롱인 듯하다. 대니얼은 에스터에게 “트란실바니아 출신”이라고 놀리고, 에스터는 “거긴 러시아가 아니라 루마니아”라고 응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즉 과유불급을 대놓고 웅변한다. 경제력에 사랑스러운 두 자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유산했다는 핑계로 러시아 아이까지 소유하려 하는 데 대한 비난의 직설화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미 지구촌의 헤게모니를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정간섭을 일삼는 데 대한 일갈이다.

굳이 선악의 이분법으로 보자면 ‘좋은 나라’는 케이트고 존은 그 반대편이다. 케이트는 쉽게 에스터의 수상한 점을 포착하지만 존은 어리석게도 못 본다. 케이트는 제시카의 분골을 뿌린 꽃이 자라는 한 제시카는 살아있다는 믿음의 관념론(종교)을 지녔다. 그러나 존은 외피만 볼 줄 아는 유물론자다.

재미있는 건 존이 에스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관념론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보육원을 찾은 그는 건물 앞의 눈사람을 보곤 “고아 눈사람인가, 눈사람 고아인가?”라는 인식론의 지평을 보인다. 그것과 함께 에스터가 목과 손목에 늘 리본을 감고 사는 건 비밀의 실마리다.

또한 에스터는 절대 치과에 가려 하지 않는다. 존을 처음 만났을 때 에스터는 “전 별나요”라며 부정적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나 존은 “나쁜 건 아냐. 다만 안 좋은 걸 바꾸려는 노력이 중요해”라고 말한다. 그는 “의지는 주인, 지성은 안내인”이라던 쇼펜하우어보다 정언명령의 칸트를 믿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식구들을 ‘우골리노의 아사탑’(지옥의 현실성)으로 내몰고, 자신은 ‘익시온의 수레바퀴’(배신에 대한 영원한 형벌)에 묶이는 비극을 초래하진 않았을 것이다.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가 돈을 댔다는 것과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모두 긍정하되 성악설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지만 슬래셔만큼의 잔인한 장면은 없다. 그럼에도 관람한 관객들은 하나같이 무섭다고 입을 모은다. 반복 관람을 고백하는 이도 꽤 많다. 당시 에스터를 연기한 펄먼의 나이가 12살이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아이디어도 뛰어났지만 그녀의 경천동지할 연기력이 방점을 찍었다.

생철학은 이성을 우선시했던 기존 철학의 사조에서 벗어나 본유적인 본능, 욕구, 의지 등에 주목한다. 케이트는 “16일간 죽은 애를 배고 있었다”고 토로한다. ‘죽은 애’는 16일 후의 일이고, 그 16일 ‘동안’은 제시카는 부부의 관념 속에 살아있었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인간이기에’라는 교훈.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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