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켄 브루언의 동명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블리츠’(엘리어트 레스터 감독, 2011)는 제이슨 스타뎀 특유의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법의 한계를 여기저기서 체험해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지향하는 이념에 통쾌할 것이다. 더불어 약간의 지적인 재미까지 경험할 수 있다.

런던의 형사 브랜트(제이슨 스타뎀)는 정의감이 지나쳐 근무 수칙을 무시한 채 범죄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언론의 비난을 받는다. 여경 폴스가 승진 시험에서 떨어진 후 직계 선배인 브랜트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브랜트는 친한 선배 로버츠의 아내 장례식에 참석한 뒤 휴직하는 그와 함께 한잔한다.

여경 베이츠가 특별한 이유 없이 살해당하고, 곧이어 누군가 로버츠의 아파트에서 그를 살해한 뒤 불을 지른다. 폴스는 거리의 청소년 존을 돌봐주는 한편 그에게서 정보도 얻고 있다. 어느 날 그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하고, 폴스는 브랜트에게 도움을 청해 담당 경찰 스톡스를 소개받는다.

스톡스와 한잔하고 귀가하던 폴스는 문 앞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지만 그녀를 기다리던 존이 구해주고 목숨을 잃는다. 이 연쇄살인의 범인은 잡범 배리(에이단 길렌). 그는 언론에 경찰을 차례로 살해하겠다며 자신의 별명을 블리츠(기습공격, 총공세)라고 명명하는 대담한 행보로 경찰을 긴장시킨다.

브랜트는 새로 온 팀장 내쉬와 함께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배리가 매우 유력함을 느끼고 그를 찾아가지만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다. 배리는 모든 증거를 공용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재규어에 숨겨놓고 있었다. 우연히 이를 발견한 래드너는 던롭 기자에게 큰돈을 요구하며 이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래드너는 화장실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내쉬는 배리의 사진을 언론에 배포한 뒤 공개수사로 전환한다. 결국 제보를 받고 출동한 브랜트가 천신만고 끝에 배리를 체포하지만 이미 모든 증거를 처분해놓은 상황. 심지어 주차장의 CCTV조차 고장났기 때문에 이틀 만에 그를 풀어 주게 되는데.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도 없는데 일찌감치 진범의 정체를 드러내놓음으로써 스릴러적 장치마저도 포기한다. 대신 현대인의 다양한 고독과 고뇌를 여러 주인공들에게 골고루 부여한 뒤 그런 공허함을 비극적 누아르로 풀어간다. 브랜트의 ‘상대를 잘못 골랐으면 무기라도 잘 골랐어야지’라는 말처럼.

브랜트에 의하면 인생은 선택이고, 그 기로에서 중요한 건 본능이다. 그는 자신을 취조하는 내사과 직원에게 “내가 배운 건 폭력뿐”이라며 되레 협박할 정도로 거침없다. 할 줄 아는 건 주먹질인데 경찰을 못 하게 하면 깡패밖에 더 되겠냐는 논리다. 그래서 “처음엔 다 떨어져”라고 폴스를 위로한다.

내쉬가 취임하자 모든 경찰이 게이라고 뒤에서 흉을 보지만 브랜트는 대놓고 “게이지만 상관없고 경찰로서 존경한다”고 먼저 다가선다. 자신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어떤 취향이든, 어떤 이념이든 개의치 않겠다는 동료애가 돋보인다. 내쉬는 선입견 혹은 편견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은유한다.

브랜트가 알코올중독이듯 내쉬 역시 사람들의 놀림 탓에 편집병, 공황장애, 자폐증 등의 정신병을 앓은 전력이 있었다. 칩거한 채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그는 법망을 피한 아동 성범죄자를 실컷 두들겨 팬 뒤 퇴직당할 것을 각오하고 출근했지만 경미한 처벌만 받자 드디어 피해 의식에서 해방된다.

브랜트가 긍정적인 양극단의 인물이라면 폴스는 같은 성격의 부정적인 캐릭터다. 스톡스가 저녁에 한잔하자고 제안하자 당연히 데이트 신청으로 받아들이곤 달뜬 기분으로 나서지만 딱 술만 마시고 헤어지는 데 크게 실망해 분노한다. 마약 판매자를 잡는 게 아니라 그를 쫓아내고 마약만 ‘잡아’온다.

브랜트와 스톡스가 나타나 마약 파티를 벌이는 폴스를 구해준다. 그녀는 “예전에 잠복근무할 땐 마약쟁이인 척했는데 이젠 경찰인 척하는 마약쟁이”라고 자조한다. 또 “경찰이 경찰을 못 지키면 어떡해”라고 세상의 부조리에 한탄한다. 사랑받고 싶은 여자이자, 당당한 경찰이고 싶은 초보 직장인이다.

배리도 양날의 검 같은 인물이다. 그는 온갖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뛰어난 처세술과 영리한 여론조작으로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람 혹은 기업을 의미하는 동시에 체제에서 소외된 낙오자를 은유한다. 자신의 숙소를 흉보는 브랜트에게 “미니멀리즘”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시퀀스는 통쾌하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브랜트와 내쉬에게선 만물은 일자라며 이항대립의 통일론을 설파하고 전쟁을 찬양한 헤라클레이토스와 귀족주의적 가치전도와 권력적 낭만주의를 추구한 냉소적인 니체의 그림자가 강하게 아른거린다. ‘가방끈이 짧다’는 브랜트와 게이를 초극한 내쉬는 곧 니체의 위버멘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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