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헌츠맨: 윈터스 워’(2016)는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에서 모티프를 얻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각 효과상 후보에 올랐던 세딕 니콜라스 트로얀이 메가폰을 잡은 스핀오프 버전이다. 전작에서 에릭이 스노우 화이트를 도와 레베나를 거울 속에 봉인하기 전 시점이다.

전작이 스노우 화이트라는 친숙한 캐릭터에 이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탱탱한 젊음과 사악한 캐릭터지만 이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의 우아한 원숙미의 대결로 압축됐다면 이 작품은 헌츠맨들의 탄생 배경과 이단아 에릭(크리스 헴스워스)의 활약에 집중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귀결된다.

집안의 내력대로 마법의 능력을 전수받은 레베나에게는 아직 능력이 드러나지 않은 프레야(에밀리 블런트)라는 여동생이 있다. 레베나는 프레야가 자신을 도와 영토를 넓히는 데 주력해 주길 바라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엔 어리석게도 프레야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고 딸을 낳는다.

평소대로 거울에게 물어 봐 자신의 미모를 확인하던 레베나는 프레야의 딸이 자라면 자신을 능가할 것을 알게 되고 모종의 계략을 꾸민다. 프레야는 정혼자와 함께 도망치기로 약속하지만 정혼자는 불을 질러 아이를 살해한다. 프레야의 주체할 수 없는 격노는 내면에 있던 마법의 능력을 깨운다.

온 세상을 얼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마법 능력을 갖춘 프레야는 북쪽에 정착해 얼음왕국을 세우고 스스로 아이스 퀸이 된다. 자식을 잃은 그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군대라도 육성하겠다”며 약탈한 마을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헌츠맨이라는 막강한 군대를 꾸린 뒤 정복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

그녀는 스스로 그토록 거부했던 레베나의 이데올로기를 이어받아 헌츠맨들에게 사랑을 금지시킨 뒤 절대적인 충성을 규율로 내세운다. 나약하기만 했던 고아 에릭은 어느덧 최고의 헌츠맨으로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백발백중의 궁수로 자라난 사라(제시카 차스테인)와 사랑에 빠져 몰래 결혼한다.

이를 알게 된 프레야는 레베나가 자신의 사랑에 분노했듯 배신감에 휩싸여 둘 사이를 갈라놓은 뒤 사라가 죽은 것으로 위장한다. 이에 에릭은 왕국을 떠나고 사라는 에릭에 대해 오해를 하게 된다. 그렇게 7년 뒤. 에릭은 스노우 화이트를 도와 레베나와 일전을 벌인 후 그녀를 거울 속에 봉인한다.

사라는 프레야의 최측근으로서 그녀를 보좌하며 얼음왕국의 승승장구를 돕고, 프레야는 거울을 취해 최고의 힘을 얻어 세계를 정복할 야욕을 드러내며 그 임무를 사라에게 맡긴다. 에릭은 일곱 난쟁이 중 두 명의 난쟁이와 함께 거울을 찾기 위해 기나긴 여정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사라를 만난다.

에릭은 사라가 죽은 줄 알았고, 사라는 에릭이 비겁하게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줄 오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거울을 찾아 모험을 겪는 과정에서 서서히 오해를 풀게 되고 괴물 고블린에게 몰살될 위기에서 에릭이 일행을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하자 드디어 사라는 예전의 감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거울을 쟁취한 그들 앞에 프레야와 그녀의 군대가 나타나자 사라는 프레야 옆에 선 뒤 명령대로 에릭에게 화살을 쏘는데. 플롯은 조금 복잡하다. 이블 퀸 대 에릭, 이블 퀸 대 아이스 퀸, 에릭 대 사라, 헌츠맨 대 헌츠맨 등 피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켰지만 이유와 결론은 의외로 혼란스럽지 않다.

욕망과 대의명분이란 동화의 주제를 앞세워 흔하디흔한 사랑이란 결론으로 플롯을 완성하는 것. 이 영화의 미덕은 호화로운 비주얼의 향연이다. 판타지 블록버스터란 장르적 특성상 지극히 당연한 장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기승전결을 미리 예상하지 않은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블록버스트를 계속해서 선택하는 이유는 눈이 즐거운 CG와 미술 때문이다. ‘헌츠맨’ 역시 동화 세계의 아름다운 낭만을 표현하기 위해 등에 풀이 자란 뱀을 만들고 사람의 형상을 한 자그마한 요정을 창조하는 등 디테일에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여왕들의 아카데미 시상식장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드레스부터 에릭의 가죽 전투복까지 패션도 화려하다. 물론 얼음왕국을 건설한 아이스 퀸과 사악한 이블 퀸 자매의 대결은 ‘겨울왕국’을 연상케 하고, 사라는 ‘헝거 게임’이 겹쳐지며, 헴스워스에서 ‘토르’가 떠오르는 관객이 적지 않긴 할 듯하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어차피 판타지 블록버스터란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손에 흥건한 땀을 느끼며 환상의 액션 세계를 탐험하는 롤러코스터 탑승 효과를 짜릿하게 즐기다가 권선징악과 사랑의 완성의 뿌듯한 포만감을 느끼면서 극장 문을 나서는 게 목적이 아닌가? 거기에 충실한 작품이다.

게다가 사랑을 모르는, 혹은 사랑에 분노한 두 여왕의 각자의 군대에 대한 사랑을 금지한 무조건적 충성 강요와 그로 인해 맞는 비극적 결말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교훈적이라 12살 이상의 청소년들에게도 권장할 만하다. 전형적이긴 하지만 확실한 테제인 건 맞다.

아집과 편견이 앞선 맹목적인 고집의 리더십은 스스로 패망을 부른다는 결론이 통쾌하다. 4명의 주연배우들의 연기력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4명의 난쟁이 조연들의 감초 역할 역시 감칠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준다. 국내 개봉 땐 다소 과소평가된 듯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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