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충정각]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길 8번지 골목. 길을 걷다 보면 낯선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서양식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다.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겸한 대안공간 충정각. 도심 속 빌딩 숲 사이로 가려져 골목길을 접어들지 않고서는 외부에서 그 모습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공간. 자세히 살펴보면 붉은색 벽돌 외벽에 9각형의 첨탑이 솟아 있는가 하면 넓은 마당이 감싸 안고 있는 형상이 제법 운치가 있다.

충정각은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양식 건축물이다. 붉은 벽돌과 온 집을 둘러싼 담쟁이덩굴, 마당에 늘어진 커다란 나뭇가지와 같은 전원적인 풍경 말고도 계단 앞 포치(Porch : 출입구 위에 설치해 비바람을 막는 곳)나 팔각형 모양의 입구 별관, 검은 벽돌 린텔(Lintel : 창문 틀을 지탱하는 수평 구조물), 북쪽의 9각형 터렛(Turret : 집의 꼭대기에 지은 작은 탑), 돌로 된 벽난로와 다락방 등이 서양의 오래된 주택을 떠올리게 한다.

충정각의 모습은 독일인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유럽식 건축물로 알려져 있으나, 1912년 당시 지금의 충정각 주소지였던 죽첨정 3정목 360번지는 당시 한성전기주식회사의 전기기사였던 맥렐란의 땅이었기 때문에 충정각은 맥렐란이 조선에 살기위해 지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12년 당시 토지대장을 살펴보면 죽첨정 360번지에 소유자로 되어있고, 당시의 문서는 일본어로 쓰였기 때문에 가타카나로 맥렐란(R.A. McLellan: アルエーマツキレン)의 이름이 정확히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고종을 위시한 황실 권력층이 산업진흥정책의 일환으로 근대화 노선을 추구하면서 전기회사를 설립하는데 바로 한성전기회사가 그것이다.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된 후 전차와 철도 보설 공사를 위해 1890년대에 입국한 미국인들은 높은 급여와 생활수준을 유지했고 맥렐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몰락한 양반들의 토지이나 가옥을 구입해 서양식 주택을 지었다.

서쪽 정면의 현관, 북쪽의 9각형 첨탑 등은 세브란스 의전 등 조선에서 활발한 건축 활동을 했던 캐나다인 건축가 헨리 볼드 고든(Henry Bauld Gordon, 1855~1951)이 주로 사용했던 기법이었기 때문에 그가 맥렐란 저택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로 추정되고 있다. 고든은 구한말 개항기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던 소수의 건축가 중 한 명이었고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9각 첨탑과 같은 양식들이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1901년부터 1904년까지 3년간 머물면서 서울역 근처 옛 세브란스병원과 새문안교회, 종교교회, 경신학교 등 개화기 조선의 서양식 건물(주로 교회와 학교 건물 등)을 설계했던 그는 근대건축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충정각의 건축사적 의미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연안의 주택이 서울에 이입되었다는 점과  2층 이상에 양관(서양식 주택)의 모습 등이 당시 서울에서 이채로운 경관이었을 거라는 것에서 추측해볼 수 있는데 구한말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본래의 그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서울의 몇 안 되는 건축물이다.

또다시 옛 도심은 낡고 쇠락한 채 개발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100여 년 전부터 서울의 격변기를 보아왔던 서양식 주택 충정각은 개발의 뒤안길에서 그 기억마저 점차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도시를 계획하고 다스리는 일은 시간을 다스리는 일이다... 

       <충정각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66616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2019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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