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현재 대중문화계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미스터 트롯’과 그 7인방이다. 그중에서도 진의 임영웅이 가장 뜨겁고 그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제일 많은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이 곡은 블루스 뮤지션 김목경이 작사, 작곡해 먼저 취입했지만 김광석이 널리 알렸고 임영웅이 재조명했다.

김광석의 고향 대구시가 방천시장 옆에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조성하자 그를 잊지 못하는 팬들의 발걸음으로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1964년 1월 22일 태어나 1996년 1월 6일 32살의 한창때 세상을 떠난 이 뮤지션은 왜 많은 이들의 감수성을 들쑤셔놓는 이 시대의 스테디셀러 가수가 됐을까?

생전의 김광석의 포지션을 쉽게 표현하자면 포크계의 들국화였다. TV 연예 관계자들은 그를 외면했지만 TV와는 달리 눈과 귀 외에도 피부와 폐부로 느낄 수 있는 공연장의 음악을 선호하는 진정한 음악 마니아들은 그의 콘서트를 일부러 찾아다닐 정도로 열광했다. 공연 횟수 1000회가 그 증거다.

사망 전에도 이미 그의 진가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다만 TV 종사자나 그런 프로그램으로 가요를 즐기는 대중만 몰랐을 따름이다. 그런 상업적 잣대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그의 값어치가 의문사 이후 구전으로 전해지다 급부상하게 된 계기는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이었다.

▲ 서울IR 제공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 중 하나인 이수혁(이병현) 병장이 북한군 초소를 탈출해 쏟아지는 총탄을 뒤로하고 아군 진영으로 내달리는 장면에 비장하고 웅장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깔렸는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재조명된 것. 이후 ‘입영전야’와 ‘입영열차 안에서’가 차지했던 영역이 바뀌었다.

그 후 김광석이 생전에 발표했던 많은 곡들이 재평가 받기 시작해 스테디셀러가 됐다. 특히 ‘먼지가 되어’(이윤수)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를 양병집이 ‘역’이란 제목으로 번안한 곡) 등은 오리지널 가수들을 제치고 김광석 버전이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임영웅이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아주 잘 불렀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것은 맞다. 하지만 김광석이 앞서 길을 다진 공로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김광석의 노래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 재조명되는 것일까? 왜 이토록 오랫동안 꾸준히 큰 사랑을 받는 것일까?

먼저 목소리. 약간의 탁성과 미성이 섞인 이 유니크한 음성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를 간직하고 있다. 그 톤은 지적인 정서와 더불어 슬프거나 아픈 추억을 건드리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양병집은 유사하고, 이윤수는 매우 매끄러운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김광석이 확 튀는 이유다.

▲ 이하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

물론 김광석은 풍부한 성량과 안정된 호흡을 자랑한다. 타고난 능력과 더불어 수많은 라이브 경험이 만든 실력이 더해져 완성된 것이다. 가요에서 가사의 중요함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사랑타령이 많은 이유다. 김광석에게도 사랑이 눈에 띄지만 철학적이며 인생을 논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더불어 다수의 공감을 자아낼 만큼 생활밀착형이면서도 매우 현학적이다. 2007년 평론가들에게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된 ‘서른 즈음에’ 한 곡만으로도 그의 작품 속의 철학과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그 가사 속의 ‘내 사랑’은 연인,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모든 대상으로 읽히기 십상일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각자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적, 목표, 행복 등을 뜻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꾸 초라해지는 자신과 자신의 인생, 즉 우리 모두의 삶을 자조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1994년 작품이지만 결코 고색창연하지 않고 매우 현사실적으로 피부 깊은 곳에 스며든다.

그의 멜로디는 자극적이지 않고 편곡도 화려하지 않다. 무대는 대부분 밴드 없이 그의 통기타와 하모니카 연주가 고작이었다. 진지한 고뇌에서 우러나온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그걸 어떻게 불러야 진정성 있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잘 아는 그만의 해석이 순수와 수수를 벌크업한 것이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한국식 포크록이다. 한대수, 양병집, 밥 딜런, 닐 영 등을 듣고 자란 그는 자연스레 현실의 아픔을 대변하고 그 어둠 속에서 마음이나마 아름다운 동화를 꿈꿀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음악이라는 환상을 키워갔고 그건 포크나 록이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져갔다.

포크는 자유와 변화를 찾아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프런티어가 영국에서 배운 클래식과 인디언의 전통가요인 블루그래스를 합해 만든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으로 포스터의 ‘오, 수재너’가 대표적이다. 포크록은 강한 비폭력주의와 반전 이데올로기를 담은 록의 본질을 계승하는 음악이다.

1970~80년대의 국내 뮤지션, 특히 포크 뮤지션들은 은연중에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를 비방하고, 반발했다. 오죽하면 정권이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 장발 등을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선전하며 퇴폐로 왜곡했을까? 김광석에게 김민기는 덜 보이지만 순수의 미학은 크다.

그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외모를 꾸미려는 연예인의 기본이나 더 나아가 포장이나 가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면은 순수했고, 외형은 수수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오경필(송강호) 중사는 “그런데 왜 김광석은 그렇게 빨리 갔니?”라고 묻는다. 수많은 팬들이 하고 싶은 질문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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