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유명 배우를 꿈꾸던 지니는 드러머와 결혼해 아들 리치를 낳은 뒤 바람을 피운 탓에 남편이 떠나가자 절망에 빠졌다가 초로의 험티에게 구조된 후 재혼해 코니아일랜드의 펍에서 웨이트리스로 살고 있다. 어느 날 험티가 사별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26살의 딸 캐롤라이나가 그들에게 끼어든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피아 프랭크와 결혼했지만 FBI에게 프랭크 조직의 정보를 제공한 탓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주하던 끝에 인연을 끊고 살던 아버지에게 의탁하러 온 것. 자기 뜻을 거역한 데 실망해 의절했던 험티는 야간대학에 다니겠다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행복을 느낀다.

리치는 초등학교를 번번이 빼먹고 극장에서 사는가 하면 툭하면 방화를 해 지니의 속을 썩인다. 험티는 한때 알코올중독으로 지니에게 폭행을 휘둘렀지만 이젠 술을 끊고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고 있다. 39살의 지니는 연하의 해수욕장 안전요원 미키와 불륜에 빠져있다.

지난한 현실을 부정하는 지니는 편두통에 시달리는 가운데 극작가를 꿈꾸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미키의 세계에 함몰돼 대리만족을 느낀다. 회전목마를 관리하는 험티에게 프랭크의 부하들이 찾아오지만 기지를 발휘해 그들의 발걸음을 되돌린다. 미키는 우연히 만난 캐롤라이나에게 첫눈에 반하는데.

영화 ‘원더 휠’은 양녀 성추행 의혹으로 도덕성에 살짝 흠집이 생긴 우디 앨런 감독의 손꼽을 만한 작품으로 거론될 정도로 심오하다. 큰 키워드는 ‘졸업’과 연극이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최우수감독상 수상작 ‘졸업’의 플롯에 연극의 조명, 무대, 점프컷, 독백 등을 차용했다.

이 영화는 대놓고 복수의 세 자매 에리니에스 여신들과 운명의 세 자매 모이라이 여신들, 그리고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를 표제로 내건다. 네 주인공은 저마다 운명을 개척해보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변하는 건 없다. 회전목마는 자전을, 원더휠(대회전 기구)은 공전을 하지만 결국은 제자리다.

배경인 1950년대의 미국은 뉴딜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풍요한 사회’로 불렸다. 최상위 5%의 고소득자가 전체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분의 1 미만으로 적어질 만큼 경제적 번영이 중산층과 빈민층에게 고르게 미쳤다. 코니아일랜드는 그런 여유와 풍요를 반영하는 표상이 된다.

하지만 그건 외피일 뿐. 프랭크의 아내이던 캐롤라이나는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정도로 풍요를 누렸으나 정신적으로는 행복하지 못했다. 무일푼으로 도망쳐 유원지 내 가건물에서 험티 등과 살며 낮에는 펍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야간학교에 다니며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정신은 여유롭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마피아로 살 것인가, 하루 종일 발에 땀나며 노동을 하고 싸구려 음식을 먹지만 가족과의 마음 편한 저녁식사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서민으로 살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이 영화가 집중하는 지점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한두 번씩 선택을 잘못했기에 그래서 고치려 노력한다.

크레딧으로는 지니가 주인공이지만 관조적 입장으로 내레이션을 담당한 미키가 주인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는 운명을 믿지 않는 낭만주의적 관념론자라는 점에서 칸트와 니체가 어른거린다. 그는 “난 책으로 지식을 얻고, 당신은 경험으로 얻는다”라고 지니에게 말한다. 지니는 경험론자가 맞다.

그녀는 첫 남편을 사랑했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전남편은 수치심을 못 이기고 스스로 생을 끝낸 듯하다. 지니는 외도를 후회하면서도 지금 또 그 짓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험티와의 비루한 삶을 정리하고 미키의 극본으로 연기를 속개함으로써 사랑과 꿈을 모두 완성할 판타지의 세계를 꿈꾼다.

험티 등의 숙소는 코니아일랜드 안에서 프릭쇼를 하던 곳이다. 프릭쇼는 ‘위대한 쇼맨’의 주인공 바넘이 주도했던 기형자 쇼다. 그 가족이 정상은 아니라는 은유. 지니와 캐롤라이나가 일하는 펍이 클램(대합) 하우스다. 지니는 대놓고 홍키통크(사창가의 싸구려 술집, 소박한 재즈)가 싫다고 외친다.

캐롤라이나는 “아빠가 골라준 남자들은 따분해서 싫었다”고 험티를 거스른 이유를 해명한다. 사람은 누구나 그녀처럼 젊은 날의 질풍노도를 한 번쯤은 경험한다. 지니는 이제 막 40살 생일을 맞았음에도 20살 때의 캐롤라이나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그래서 라디오랑 영화배우만 좋아할 따름이다.

험티는 지니와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여자를 모른다. ‘낚시 가자’, ‘야구 보러 가자’, ‘볼링 하러 가자’라고 달래지만 지니는 특히 낚시에 진절머리를 친다. 험티는 친구들과 낚시를 하며 자신은 지니의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라고 토로한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물고기는 플라운더다.

도다리라는 뜻도 있지만 허우적거리다, 몸부림치다의 뜻도 있다. 미키는 근무 시간에 프로이트의 제자 어니스트 존스의 ‘햄릿과 오이디푸스’를 읽고, 캐롤라이나에게 빌려주기까지 한다. 햄릿을 프로이트적 시각에서 분석한 책을 대놓고 부각하는 건 주관론과 객관론 사이에서 방황하는 미키의 심리다.

그는 “캐롤라이나는 사랑스러운 백일몽, 장단점을 다 갖춘 지니는 현실”이라는 논거를 던진다. 지니는 “전남편은 사랑이 뭔지, 험티는 뭐가 사랑이 아닌지 가르쳐줬다”고 회고한다. 유원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의미한다. 리치는 미키의 안전요원석 앞에 방화한다. 모두 피할 수 없는 아난케(운명)라고.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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