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최근 들어 자녀와의 직접적인 갈등, 또는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간 의견차이로 인한 부부 불화로 상담실에 찾아오는 아버지가 늘고 있다. 대개는 어머니가 문제를 제기하여 아버지를 데려오지만, 아버지 본인이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늘고 있어서 시대적인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라 각 시대별로 대표적인 아버지 상(像)이 변해왔다.

과거의 아버지는 자녀가 안전하게 따라올 수 있도록 아무 말 없이 눈 밭을 앞서서 헤쳐가는 모습이었다면, 얼마 전까지의 아버지는 자녀를 무등 태워서 자신이 보지 못하더라도 자녀는 좋은 것을 보게 해주던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친구 같은’ 아버지의 모습과 동시에 경제적 성공을 통해서 자녀가 더욱 성공할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좋은 아버지의 표본처럼 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자녀의 성적과 성공은 어머니의 몫이라는 일종의 ‘집단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부모들이 자신들의 이런 노력과 기대가 막상 그 자녀들에게는 엄청난 부담과 압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잘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아버지들은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최선을 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실망하고 서운해하거나 더러는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면 지금 시대에 바람직한 아버지 모습은 어떤 것일까?

조사에 따르면 많은 부모들은 ‘생계 책임’과 ‘교육적 환경’을 아버지들의 최우선적 역할로 꼽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제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자녀의 연령에 따른 바람직한 아버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겠다.

우선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강하게 또는 귀하게 키우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녀가 좋아하는 유치한 수준까지 맞춰주는 것이 좋다. 몸 장난이나 게임에서 뭔가를 가르치려 하거나 이기려고 하지 말고 단순히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사춘기 자녀에게는 강요하는 분위기는 피하면서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며 끝까지 들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사춘기라는 특성 상 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피하거나 더러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이를 반항이 아닌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해하여 기다려주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대해야 한다.사실 사춘기야 말로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청년기 이후 자녀는 부모와 동등한 성인으로 대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자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정도로 물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위로하고 격려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중요한 점은 부모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방법이 자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다. “나의 시절과 지금의 현실이 달라서 어려움이 적지 않을 줄 안다마는, 결국에는 잘 해내리라 믿는다”는 말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자녀의 ‘눈 높이’에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는 신체적인 높이가 아니라 생각과 느낌에 대한 말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 성공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새로운 시대에는 함께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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