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킬러 스쿼드’(마틴 오웬 감독, 2019)는 제목이나 게리 올드만, 제시카 알바라는 출연진을 보고 굉장한 액션 영화라고 착각해 선택하면 무조건 실망한다. 95분의 러닝타임 중 뒷부분의 하이라이트를 제외하곤 지루할 정도로 대화만 이어진다. 하지만 구성과 반전만큼은 뛰어나 색다른 재미를 준다.

LA에서 상담사로 일하는 ‘그 남자’는 사실 킬러들의 모임의 수장이다. 런던을 방문한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 카일 상원의원 암살을 제이드에게 지시하지만 옛 동료를 만나는 바람에 실패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런던으로 날아가 그녀를 토사구팽 하는데 왠지 뉴스는 카일이 암살당했다고 전한다.

조는 그의 지시를 받고 교회 지하 비밀 장소에서 킬러들의 회합 자리를 만든다. 레안드로, 캘빈, 벤, 크리스털, 마커스 등의 베테랑을 비롯해 초짜인 듯한 생소한 앨리스까지 모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첫 살인 경험을 털어놓으며 앨리스에게 정체를 밝히라고 닦달하지만 겁에 질린 듯 입을 열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천장 위 환풍구를 통해 훔쳐보는 시선이 있다. 킬러들이 잠시 쉬러 밖으로 나간 사이 조는 그 존재를 알아채고 잡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인근 건물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킬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갑자기 총상을 입은 카일 의원이 들이닥쳐 조와 아는 체한다.

카일과 조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말다툼을 하고, 킬러들끼리 총을 들이대는 와중에 천장에 숨어있던 소녀 모건이 잡힌다. 그러자 앨리스가 모건의 목을 조르는데. 아마 각본가, 감독, 편집 감독 등의 의견이 잘 맞지 않았던 듯 각 시퀀스가 탄탄한 플롯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추리의 재미는 좋다.

킬러들은 자신들의 일을 예술로, 모임을 ‘졸업 없는 인생 학교’로 표현한다. 그들이 모이는 장소가 교회고 암호는 물고기자리다. 즉 그들의 모임은 곧 종교적 회합이다. 천문 해석가 린다 굿맨은 물고기자리를 12 별자리 중 가장 불가해하고 신비한,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이원론의 세계로 해석했다.

그건 “꼭 파리 대왕 같군”이란 대사와 연결된다. ‘파리 대왕’은 이원론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거나 평화로울지라도 바깥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내용을 애써 피하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모두 일찍 살인을 경험했고, 그 일을 즐기는 악인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착할까?

벤은 소년 때 사냥 중 친구를 총살했고 성장해 중동에 파병돼 살인기계로 활약했지만 제대 후 몸이 근질거려 킬러가 됐다. 나이 지긋한 의사인 캘빈은 젊었을 때 아내와 교통사고를 당한 뒤 갇힌 차 안에서 아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한 뒤 살인 본능을 발견하고 환자 34명의 죽음을 보며 즐겼다.

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때문에 죽일 수는 없지만 살리지 않는 방법으로 살인을 즐긴다. 몸통을 살리기 위해 팔다리를 자를 수 있다는 논리로. 그러자 조는 파안대소하며 “이제야 시어머니를 보낼 병원을 찾았네”라고 환호한다. 레안드로는 그 앞에서 마지막 콩을 산 아줌마를 죽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가장 신뢰해 대모가 돼준 밍 삼합회장을 독살했다. 드디어 앨리스가 13살 때 아버지를 죽였다고 입을 연다. “내면의 탐색으로 인간의 본성을 인정해”라는 대사다. 킬러들에겐 저마다의 살인의 동기와 이유가 있다. 제각각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내면에 똬리를 튼 악마적 본성이 근원이다.

액션 없는 ‘구강 액션’이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 카일이 돌연 등장하는 시퀀스에 이르게 되면서 호기심이 급물살을 타고 흥미의 바다로 흘러간다. 킬러들은 조가 리더인 줄만 알지 가장 위의 보스가 누구인지 모른다. 카일은 조가 CIA라고 폭로하고, 이에 질세라 조도 카일이 같은 처지라고 역공한다.

이때부터 왜 조직이 카일을 죽이려 했는지, CIA가 불법적으로 정치 등에 개입하는 지점은 어디까지인지, ‘그’를 비롯해 회합에 모인 킬러들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하나, 둘씩 풀려나간다. ‘파리 대왕’의 이원론 중 두드러지는 건 정치체제다. 카일과 CIA는 그 대척점의 정체다.

카일과 조의 갈등이 절정에 이를 무렵 앨리스와 모건의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면서 미스터리는 정점으로 치닫는다. 초반에 킬러들은 회합을 “서로 생각을 나누는 편안하고 긍정적인 모임”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 “해결은 안 돼도 도움은 준다”고 발전적으로 평가했다. 사회의 모든 모임을 뜻한다.

다수의 종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데 특히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생애 숱한 모임과 조직에 속하길 원하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생존하기 위해선 선택을 해야 한다. 조는 “자존심, 가식, 승부욕을 버려”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조직의 논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살벌한 충고다.

카일은 “총알이 빗나가는 거였잖아”라고 조를 책망한다. 그는 자신의 용감함과 중동 테러조직의 위험성을 동시에 부각함으로써 표를 얻을 요량이었지만 CIA는 다른 노선으로 선회한 듯하다. 서민들이 아등바등 몸부림쳐 봐야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기계론이 무참하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만끽하다 보면 대미에 이르는데 여기선 쿠엔틴 타란티노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잔혹 액션이 펼쳐진다. 드디어 ‘그’의 정체가 밝혀지고 왜 그런 소동이 벌어졌는지 수뇌부의 의도까지 드러난다. 수미상관은 해피엔딩 같지만 허무주의 색채가 매우 짙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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