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안녕, 미누’는 1992년부터 18년 가까이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다 강제 출국된 네팔의 미누를 주인공으로 한 ‘바나나쏭의 기적’(2018)의 지혜원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88올림픽 이후 이주 노동자들이 들어왔지만 1993년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모두 미등록 신분이었다.

제도적 취약 때문에 관광비자로 입국한 미누는 의정부 일대의 식당을 거쳐 서울 창신동 봉제 공장에서 꽤 실력 있는 재단사로 일했다. 각종 대회에 출전해 노래 실력까지 뽐내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2003년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 이주 노동자의 대대적인 단속과 추방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다국적 록밴드 스탑크랙다운을 결성해 정규 2집까지 발매하고, 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요구하는 공연과 집회를 이어갔다.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에 곡을 붙여 노래했고, 이주 노동자의 애환을 그린 ‘월급날’도 만들었는데 고 신해철이 프로듀싱을 해주기도.

그러나 그는 2009년 표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강제 출국을 당하고 리드 보컬리스트가 없는 탓에 밴드는 해체된다. 고국에 돌아간 미누는 그렇게 자신을 매정하게 내친 한국을 그러나 그리워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한국행 이주 노동자들에게 한국과 한국말을 가르친다.

또 그는 이주 노동자들이 귀환했을 때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걸 돕는 사회적 기업 트립티를 설립해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옥수수 잎으로 만든 민속인형 제작을 지원해 수출의 역군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귀환한 이주 노동자들로 이뤄진 ‘엉크루 네팔’의 부회장이 돼 한국과 네팔의 민간 외교도 맡는다.

2017년 한국에서 각국의 민속인형 박람회가 열리게 되자 관계자는 네팔 대표로 미누를 초청하고, 미누는 무난하게 비자를 받아낸다. 그러나 한국의 공항에 내리자마자 출입국관리소에 억류된 지 7시간 만에 강제로 출국된다. 법은 5년 뒤 입국이 가능했지만 ‘표적’인 미누는 10년 후라야 적용됐던 것.

이듬해 DMZ다큐멘터리영화제가 초청하고, 정부가 2박 3일간의 체류를 허용함으로써 미누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달 뒤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46년 인생 중 18년을 한국에서 살았고, 38살 이후 8년을 한국을 향한 짝사랑으로 애간장을 태웠던 청년.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식당에서 목포 출신의 아줌마로부터 ‘목포의 눈물’을 배웠다.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정서로 구성지게 가요를 부르는 그는 강제 출국돼 고국으로 돌아갔음에도 네팔어를 낯설어 했다. 그가 무의식중에 내뱉는 말은 ‘깜짝아’고 무시로 휴대전화로 한국 방송을 시청했다.

“아프지 마. 만약 아프면 나한테 말해”라고 따뜻하게 대해줬던 아줌마가 그에겐 낯선 한국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고 술회한다. 그가 제일 잊지 못하는 한국은 밤새 미싱 도는 소리가 들렸던 창신동 달동네다. 사람 사는 소리와 땀 냄새가 그리운 것이다.

그를 콕 찍어 쫓아낸 주인공은 이명박 정부였다. 그는 이주 노동자이자 로커였으며 정부가 보기엔 매우 불편한 문화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였다. 1997년 이후 노동자는 자본가의 가족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국내 노동자도 그럴진대 이주 노동자에 대해서야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미누의 동료는 “다른 나라들은 미등록이더라도 오래 체류하면 정상을 참작해 주는데 한국은 왜 반대예요? 밀린 월급을 달라고 ‘월급날’을 만들어 불렀는데 그게 반정부입니까?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게 정부의 정책에 맞는 겁니까?”라고 한국어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다.

관념론자인 미누의 강렬한 존재론적 실존주의가 두드러진다. 엄연히 네팔 사람이고, 한국에선 불법체류자인 그는 그러나 당당하게 한국생활 18년을 근거로 자신이 어느 정도 한국 사람임을 주장한다. 그는 DNA나 피를 따지는 유물론에는 관심 없고, 일방통행식인 그른 정책에 굴복할 생각도 없다.

그는 노동자로서 자본주의 체제 하의 노동력 착취를 깨뜨리고 싶다. 또 이주 노동자로서 다문화와 따로 노는 한국 정책의 표리부동을 고발하고 싶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손가락 잘린 빨간 목장갑이다. 지 감독이 그를 만나러 네팔로 날아가 새 장갑을 건네자 눈물을 흘리며 액자에 보관했던 그다.

그는 이주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동물 취급하는 자본가와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문제로 인식하는 정부에 맞서 사람이자 노동자로서 평등하게 대우받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 기초적인 실존주의를 비현실적이고 미개한 정책이나 법규가 짓밟고, 편견이 폭행하는 걸 고발하는 광채 나는 수작이다.

그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어쩌면 우리보다 가난한 네팔 사람보다 우리가 더 미개할 수도 있다. 고국에서 그가 누나와 전통의식을 치를 때 “신은 알록달록한 색깔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세상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있고, 그들의 문화는 더욱더 형형색색이다. 그런 다름의 미학의 수용이 곧 평화다.

미누는 다큐 제의를 받았을 때 “나를 불쌍하게 그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스탑크랙다운 멤버들과 네팔에서 재회의 콘서트를 끝낸 미누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그의 장갑은 한국에서 손가락을 잃은 이주 노동자를 뜻한다. 그가 예쁘고 불쌍해서, 미안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2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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