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던칸 존스 감독의 ‘소스 코드’(2011)는 양자역학으로 탄생한 소스 코드라는 특수한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SF 스릴러 영화로서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연관이 깊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진짜인가, 꿈에서 본 세상이 진정 내가 사는 우주일까, ‘장자’의 호접몽을 거론한다.

아프가니스탄에 헬기 조종사로 파병됐던 콜터 대위가 눈을 뜨니 시카고행 열차. 맞은편에 앉은 낯선 미모의 교사 크리스티나가 친한 척한다. 화장실의 거울에서 자신의 얼굴이 다른 사람인 걸 확인한 후 주머니 속 지갑에서 교사 션의 신분증을 발견한다. 그리고 열차 폭발로 다른 공간에서 깬다.

밀폐된 캡슐 속의 그에게 여군 굿윈 대위가 말을 건넨다. 콜터는 이틀 전 귀국했다고 알고 있는데 굿윈은 여기 온 지 2달 됐다고 한다. 책임자로 보이는 리틀리지 박사는 소스 코드 프로그램을 운운하며 시카고에 대한 핵폭발 테러를 막기 위해서 콜터가 열차 내 숨은 범인을 알아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열차 폭발은 이미 일어났고, 션과 크리스티나는 사망했다. 하지만 션의 뇌의 기억이 8분간 잔재한 상태. 그와 육체적 조건이 가장 유사한 콜터의 뇌가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8분 안에 범인을 색출함으로써 곧 있을 시카고 테러를 막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두 사람은 뭔가를 숨기는 듯한데.

콜터의 실제 세계는 소스 코드를 진행할 수 있는 캡슐 안이고, 션의 잔상의 세계인 시카고 인근 열차 안으로 ‘파견’된다. 이는 AI가 만든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해커로 살다 모피어스에 의해 기계가 인간을 사육하고 죽이는 진짜 세계를 깨달은 후 두 세계를 왕복하는 네오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결말은 ‘공각기동대’와 유사한 면이 많다. 아니쉬 카푸어의 ‘클라우드 케이트’ 앞에 선 두 주인공은 조형물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여긴 우리에게 맞는 장소”라고 말한다. 내가 만지는 나의 육체가 진짜인지, 투영된 모습이 진정한 자아인지 알 수 없다는 ‘호접몽’ 이론이다.

영화는 겉으로는 200만 시카고 시민을 구하기 위해 소크 코드를 운영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걸로 세상을 바꿈으로써 떼돈을 벌려는 과욕의 리틀리지 박사, 200만 명은 물론 기차 안의 수백 승객과 특히 크리스티나를 구하려는 콜터, 그리고 콜터에게 연민을 느끼는 굿윈의 세 구조로 운영된다.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다양한 철학이 얽히고설키는데 특정한 종교적 교리가 특히 강하게 부각된다. 영-혼-육으로 구성됐다는 인간이란 존재자에게 영, 혼, 육을 묻고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따진다. 삶과 죽음의 의미와 경계도 질문한다. 자칫 허무주의가 될 수 있는 철학 문제를 숙명론으로 이끈다.

SF 스릴러 액션이라고 규정됐지만 액션은 거의 없다. 범인이 누구인지, 콜터가 놓인 환경의 진실이 뭣인지 추리해가는 과정은 스릴 있고, 그 근간을 구성하는 SF적 장치는 꽤 탄탄하다. 물리학적 이론은 논외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없는 우주 어딘가에 평행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상상력은 썩 괜찮다.

콜터는 매우 혼란스럽다. 자신이 캡슐에 갇힌 것도, 갑자기 기차 안에서 의식이 깨어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캡슐 안에서 엄청난 추위를 겪거나 호흡곤란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만 그곳을 탈출할 수가 없다. 그는 반복해서 열차 안으로 가 테러범을 색출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콜터는 운명을 믿고 “다 괜찮아질 거야”를 입에 달고 산다. 크리스티나 역시 같은 말을 하지만 우연을 믿는다. 라이프니츠는 예정조화라며 낙관론적 결정론을 믿었다. 결정론과 기계론은 세상은 신이 이미 만들어놨기 때문에 인간이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라이프니츠는 그게 좋은 쪽이라고 봤다.

숙명론은 그 이론과 유사하지만 바뀔 수 있는데 그것조차 운명이라고 본다. 우연을 믿는 크리스티나다. 리틀리지는 소스 코드로 새 세상을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는 신을 거역하는 이교도를 넘어 자신이 신이 되고자 하는 신성모독을 저지른다. 그가 지팡이를 짚는 건 그런 불완전함을 뜻한다.

그는 콜터에게 “너는 우리가 맞추면 돌아가는 시곗바늘"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부유함만을 추구하는 자본가를 상징한다. “세상은 생지옥이라 폐허 위에 다시 지어야 하고 그러려면 폐허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테러범의 논리와 다를 바 없는 궤변적 허언증이다.

그에 비하면 굿윈은 현실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인류의 승리를 추구한다. 그녀는 “과거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미래를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콜터는 거기서 더 나아가 과거마저도 바꿀 수 있다고 믿음을 바꾼다. 어차피 소스 코드 자체가 이론에서 출발했으니 평행세계의 이론을 따르는 것.

만약 이론대로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면 그는 온갖 부조리와 비리가 판을 치고 법과 도덕과 질서에서 어긋난 사람들이 권력과 돈을 쥐고 흔드는 현 세상에서 도피해 조금 더 행복한 세계에서 살아갈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매트릭스’가 보인다.

션의 직업을 역사 교사로 설정한 건 역사가 철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열차 안에 등장하는 삼류 코미디언은 진짜 스탠드업 코미디의 스타 러셀 피터스로서 그는 인종차별적 개그로 유명하다. 그를 통해 인종차별에 대해 우회적으로 힐난하는 것. 조금 머리는 아프지만 재미와 완성도는 보증수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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