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S.W.A.T. 특수기동대’(클락 존슨 감독, 2003)는 풋풋하던 27살, 32살의 콜린 패럴과 제레미 레너의 매력과 스릴러적 재미를 느끼기 충분한 액션 영화다. LA 스왓의 파트너 짐과 갬블은 은행강도 사건에 투입되는데 갬블이 실수로 인질에게 총을 쏘는 바람에 풀로 반장에게 불려가 문책을 당한다.

풀로가 총기실로 발령을 내자 분노한 갬블은 그에게 대들고 그걸 말리는 과정에서 갬블은 짐이 생존하기 위해 풀로에게 자신을 고자질했다고 오해해 싸운 뒤 퇴직한다. 6개월 후. 전설적인 베테랑 혼도(새뮤얼 잭슨)가 LA로 와 최초의 여자 대원 산체스와 더불어 짐을 끌어들여 5명의 팀을 구성한다.

풀로는 산체스와 짐을 거부하지만 혼도가 고집을 부리자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이들 5명의 정예 멤버는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지옥의 트레이닝을 거친 후 풀로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대 최고의 짧은 시간에 임무를 완성한다. 악명 높은 마약상 알렉스가 미국에서 삼촌을 살해한다.

알렉스는 유럽과 중동 지역의 마약시장을 장악해 수십 억 달러의 재산을 쌓았지만 미등이 깨진 삼촌의 고급 승용차를 몰다 교통경찰의 눈에 띄는 바람에 정체가 드러난다. 경찰은 알렉스의 이송에 혼도 팀을 투입하고 알렉스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탈출시켜 주면 1억 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LA에는 알렉스의 돈을 노린 전국의 수많은 갱스터 조직이 몰려든다. 스왓은 헬기를 투입하지만 눈앞에서 테러 조직의 중화기에 추락하는 걸 목격한다. 경찰은 다시 대규모의 차량 행렬로 위세를 과시하며 알렉스를 이송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차량과 화력을 앞세운 갱스터 조직의 공격을 받는데.

할리우드에서 펼쳐지는 전쟁 같은 상황의 액션은 눈을 즐겁게 해주기 충분하다. 알렉스가 약 1200억 원의 돈을 내걸고 자신을 경찰에서 빼돌려 달라고 전 세계에 선언한 상황이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이다. 알렉스에게 그 돈은 전 재산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하지만 일반인에겐 다르다.

알렉스는 자신을 호송하는 경찰에게 “연봉이 7000만 원 정도 돼냐”고 묻고 경찰은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답한다. 유명 드라마를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은 다분히 경찰특공대 찬가 색채를 띤다. 보통 액션 영화에서 스왓은 형사나 요원 등의 주인공이 활약을 펼친 이후에 뒤치다꺼리나 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빌런에게 번번이 당하며 민폐까지 끼쳤다. 하지만 이 작품은 스왓 대 전직 스왓의 대결을 통해 ‘스왓을 했기 때문에 그토록 뛰어난 범죄자가 될 수 있었다’고 스왓의 우수성을 웅변하는 듯하다. 더불어 그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강력범죄 현장에서 투혼을 불태운다고 위로한다.

또 대놓고 기득권을 조롱한다. 풀로는 오직 자신의 입신영달만을 추구하는 매우 이기적인 공무원의 전형을 보인다. 짐이 자신을 왜 뽑았냐고 묻자 혼도는 “풀로를 엿 먹이려고”라고 답한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표적 실력자인 두 사람이 정형화된 형식주의자 풀로와 상극인 설정의 의도는 명확하다.

짐의 총기실 동료 거스는 “난 결혼 후 모르몬교로 개종했잖아”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 모르몬교는 한때 세속적으로 타락했던 보수적 가톨릭이나, 그들에게 반발해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나 그 종파와 다른 독립된 기독교다. 정직, 진실, 순결, 근면 등 도덕성 실천이 중요해 공신력이 높다.

또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 포용할 줄 알며 그들과의 협력과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불신지옥’이란 위협도, 강요적 포교도 없다. 팀원 중 티제이는 상파뉴를 즐기고 연인은 “스왓이 상파뉴?”라며 놀란다. 스왓과 종교를 통해 자본주의의 불합리를 꼬집는다. 일하는 만큼의 보상이 안 되는 사회.

목숨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인 스왓이 마약상보다 훨씬 가난한 자본주의의 현실. 알렉스는 변호사에게 “돈이면 누구든 매수할 수 있지 않냐”며 빨리 석방시켜 달라고 주문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변호사가 착한 인물로 나오는 게 매우 희귀한 건 그들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갬블이 빌런이 되는 설정은 범죄 영화에서 흔한 클리셰라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 티제이가 상파뉴를 즐기는 것도 뭘 암시하는지 뻔하다. 그럼에도 가슴 서늘하게 와닿는 건 자본주의에 크게 반발했던 갬블이 어느덧 그 체제에 길들여져 범죄에 무감각해진다는 설정이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성이 대놓고 ‘도박’이 아닌가! 초반 짐의 연인이 짐을 싸고 짐에게 “당신은 변했어”라며 이별을 통보한다. 짐은 “누구나 변해”라고 합리화한다. 사람들이 비난하자 “난 파트너를 팔아넘기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땐 배신한 게 맞다. 갬블과 짐은 자본주의를 빗댄 동전의 양면이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시위를 벌이는 ‘폴란드인 사태’를 삽입하고, 알렉스를 프랑스인으로 설정한 저의는 유럽에 대한 미국인의 복잡한 선입견이 기저다. 폴란드는 독일과 구소련 사이에서 가장 크게 몸살을 앓은 나라 중 하나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대표적인 장소다.

알렉스는 “미국인은 탐욕스럽다”면서도 재력을 자랑하고, 미국 처녀들은 그에게 결혼해 달라고 열광하는데 모두 TV로 생중계된다. 옐로 저널리즘에 대한 풍자. 짐은 실재론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이자 객관적 현실론자다. 갬블은 쇼펜하우어 같은 염세론자고, 혼도는 플라톤을 믿는 주관적 미래지향론자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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