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조엘 에저튼이 주연과 감독을 맡은 영화 ‘더 기프트’(2015)는 복수에 관한 스릴러인데 왠지 잔인하지 않고 따뜻하다. 꽤 큰 보안업체 간부인 사이먼과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로빈 부부는 사이먼의 진급을 위해 지사를 옮기며 다소 외진 곳으로 이사하고, 쇼핑몰에서 쇼핑 중 고교 후배 고든을 만난다.

사이먼이 출근한 뒤 로빈은 갑자기 집 앞에 나타난 고든을 발견한다. 고든은 부부의 대저택에 매료되고 로빈은 집 구경을 하라고 허락한다. 사이먼의 퇴근 시각 무렵인지라 내친 김에 로빈은 저녁식사를 제안하고, 다음날 부부는 고든이 마당 연못에 금붕어를 채워주고 먹이까지 사준 것을 발견한다.

고든은 자신의 집에 부부를 초대한다. 사이먼은 그의 집이 의외로 으리으리한 데 놀란다. 식전 전화를 받은 고든은 미안하다며 5분 정도만 외출했다 돌아오겠다고 하고, 그렇게 남겨진 부부는 집을 둘러본 뒤 고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알아챈다. 금세 돌아온 고든은 거짓말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자신이 출근한 새 자꾸 집에 나타나 로빈을 만나고, 원하지도 않은 선물을 계속 남기는 데 대해 사이먼은 고든이 로빈에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로빈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사이먼은 로빈에게 차에 있으라고 당부한 뒤 고든에게 다시는 자신의 집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단단히 말한다.

로빈은 유산 후 간절히 임신을 원하지만 쉽지 않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웃 주부 루시와 친해져 시간을 때우고 그녀의 남편 론까지 어울려 친하게 지낸다. 드디어 사이먼은 원하던 영업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고 전 대표 케빈 등을 집에 초대해 파티를 하는데 누군가 거실의 대형 유리창을 깨뜨린다.

사이먼은 고든을 의심하지만 뛰쳐나가 잡은 범인은 경쟁자였던 대니. 사이먼은 고든이 집에 몰래 드나드는 것 같다는 로빈의 호소에 그를 찾아내 폭행한다. 고든의 선물은 어김없이 배달되고 동봉된 편지 안에서 ‘과거’ 운운하는 글귀를 본 로빈은 두 남자의 과거를 파헤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아는데.

앞의 절반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전형을 따르고 뒤의 절반은 반전이 거듭되며 서늘한 느낌을 주는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선 분노가,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선 동정심이 생긴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으로 ‘올드보이’ 같은 충격을 주지만 여운만큼은 따뜻하다. 병원 복도를 걸어가며 고든이 보여주는 반전!

강렬하게 아이를 원하지만 임신이 만만치 않은 부부는 일단 자포자기한 상태로 대형 애완견 보쟁글스로 대리만족한다. 개를 본 고든은 “‘미스터 보쟁글스’는 대부분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의 곡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제리 제프 워커의 곡이라고 설명해 준다. 진실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시퀀스다.

이 영화는 헛소문과 그걸 생산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헛소문을 만드는 동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재미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익이다. 어릴 때야 ‘늑대 소년’처럼 심심풀이 삼아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장난이 아닌 고문이 된다.

그리고 불공평하게도 조작이나 주작을 한 사람은 금세 잊지만 피해자는 평생 멍에가 된다. 스스로도 고통 속에 살지만 그 ‘가짜뉴스’가 만든 이미지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고든은 부부 앞에서 학창 시절의 추억을 펼치면서 사이먼이 말하면 모두 이뤄졌다는 ‘사이먼 가라사대’를 운운한다.

사이먼은 원숭이를 무서워한다. 원숭이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데 그 이유는 사람과 가장 유사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즉 사이먼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가 경쟁자 대니를 제치고 승진할 수 있었던 건 실력이 아니라 그가 지어낸 마타도어 덕분이었다.

별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건 세 주인공의 진실을 파헤치는 심리 게임에 있다. 외모부터 거칠어 보이는 고든의 행적은 퇴학, 군 입대, 불명예제대, 투옥 등으로 점철되고, 깔끔한 정장에 메르세데스를 운전하는 사이먼은 누가 봐도 엘리트지만 사람 내면은 모른다는 교훈이다.

고든은 “나쁜 일 뒤에는 좋은 일이 있다고 믿어. 어쩌면 나쁜 일조차 선물일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또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려고 했지만. 넌 과거를 털어도 과거는 너를 따라다녀”라고 사이먼에게 편지를 쓴다. 심지어 그에게 보낸 선물 중 ‘지옥의 묵시록’ OST CD가 있다. 요한이 되고자 했지만.

그래서 “구하면 얻으리니”라고도 썼다. 하지만 사이먼은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 그는 로빈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세월의 치유를 설파한다. 심지어 “뒤돌아 보지 마”라고까지 주문한다. 하지만 고든이 보낸 편지 속 성경 구절처럼 ‘제가 만든 함정’에 빠진다. 그가 보는 세상은 지옥이기에.

그는 로빈에게 “세상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진흙탕 경쟁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물론 인식론은 각자 다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출세지향주의자이자 물질만능주의자인 사이먼과 감성적인 고든 중 정답은 없다. 다만 정의, 도덕, 선 등을 바라보는 기준과 인간미의 추구가 문제일 뿐.

결국 로빈은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낳고, 사이먼은 고든이 보낸 마지막 선물을 뜯고 그 속에 담긴 선물 1, 2, 3을 차례로 보며 경악한다. 그림과 대사 그대로 해석해도 되고, 열린 결말로 확장하면 더 재미있다. 로빈의 “누구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 다 거짓말 같아”라는 말이 내내 여운을 남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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