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라디오 DJ 아버지와 요절한 가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매기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현재 10년째 예전 히트곡을 우려먹고 사는 슈퍼스타 그레이스의 개인 비서로 일하고 있다. 프로듀서를 꿈꾸는 그녀는 매일 밤 음악 공부를 하며 실력을 키우고, 사사건건 매니저 잭과 의견충돌로 엄발난다.

그녀는 우연히 마켓 옆에서 작은 공연을 하는 싱어송라이터 데이빗을 알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주말 파티에 오라고 초대한다. 그저 가수 지망생인 줄만 알았던 그의 집은 으리으리했다. 그가 숨은 보석 같은 존재란 걸 직감한 매기는 자신이 프로듀서라며 앨범을 제작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잭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그레이스를 라스베이거스에 세우려 하는가 하면 EDM을 취입시키려고 하지만 매기는 그녀에게 정체성을 지킬 것을 주문해 신뢰를 얻으면서도 잭의 눈 밖에 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스는 라이브 앨범의 프로듀싱을 매기에게 맡기며 점점 그녀의 실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매기와 데이빗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새 밴드와의 호흡도 착착 맞추면서 순조롭게 녹음을 진행한다. 그레이스의 앨범 발표 파티 날 매기는 원래 예정된 오프닝 가수 대신 데이빗을 세우려는 음모를 꾸미고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며 설득한다. 하지만 데이빗은 돌연 화를 내면서 돌아서는데.

인도 피가 흐르는 캐나다 출신 여자 감독 니샤 가나트라의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는 얼핏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의 구조가 연상되지만 전혀 다른 정서의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음악 영화다. 1960~70년대를 풍미한 대스타 다이애나 로스의 딸 트레시 엘리스 로스가 그레이스로 열연했다.

18살에 3류 피아노 연주 클럽 무대에 오르던 때 잭을 만나 온갖 고생 끝에 슈퍼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중년에 접어들자 어떻게든 그 자리를 유지해보고자 안간힘을 쓰는 신경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캐릭터를 멋들어지게 소화해냈다.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다코타 존슨이 매기 역을 맡았다.

매기와 데이빗의 멜로, 성공 욕구를 불태우는 매기와 생존에 몸부림치는 그레이스의 이중구조 형식으로 진행되다 후반에 꽤 재미있는 반전을 보여주면서 흐뭇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트레이시 엘리스 로스의 ‘Bad girl’, 아레사 프랭클린의 ‘Share your love me’ 등의 OST는 귀를 호강하게 만든다.

로스와 데이빗 역의 켈빈 해리슨 주니어의 목소리와 가창력이 워낙 뛰어난 데다 세계적인 프로듀서 다크차일드가 사운드트랙 감독을 맡았기에 듣는 즐거움만큼은 보증수표다. 잭 역을 맡은 유명 래퍼 아이스 큐브의 열연을 보는 재미는 덤. 카탈리나섬 해변 등 비주얼은 LA 홍보물을 연상케 한다.

거의 모든 음악 영화나 성장 영화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꿈을 가장 큰 테제로 내세운다. 말이 ‘3번째 매니저’지 매기의 정확한 직업은 그레이스의 개인비서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몸종이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 만족하는 게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의 크리에이티브를 조정하는 프로듀서를 꿈꾼다.

또 다른 스타의 매기와 비슷한 개인비서가 있는데 그는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런 구조는 젊은이들에게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꿈이 성사되느냐, 사상누각이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희망이라는 목표가 있는 것 자체가 살아야 할 이유고 의미가 된다는 존재론적 희망봉이다.

그레이스가 10년째 과거의 히트곡을 우려먹고 있는 건 이른바 ‘배에 기름이 끼어서’ 창작력이 퇴화됐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때 배는 주려도 감성과 직관은 살아 숨쉬기에 번득이는 가사와 멜로디를 썼지만 이제 절실함이 사라지고 사치가 보장되니 심장도 뇌도 활동을 중지한 채 향락에 안주한다.

그런 그녀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은 “40대 여가수 중 1위에 오른 이는 5명인데 그중 흑인은 단 1명”이란 대사다. 자. 존. 심. 잭은 그런 그녀를 시저스팰리스호텔 쇼 무대에 세우려 하고, 매기는 결사반대하며, 그레이스는 마음이 흔들린다. 이는 ‘순응할 것이냐, 적응할 것이냐’의 유사한 듯한 차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큰 철학적, 종교적 이론은 일원론과 이원론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는 일신론이고 범신론적 다신의 힌두교도 결국 한 신의 여러 가지 형상이란 이론에 근접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함정은 있다. 똑같이 일자론(일원론)을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는 싸웠다.

전자는 모든 건 변한다고, 후자는 변하는 건 없다고 각각 주장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대립항으로 이뤄진 이항대립 이론이 맞는 듯하다. 변하는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사람은 외모도, 입맛도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입맛도, 성격도 있기 마련. 그레이스가 고민하는 순응과 적응의 차이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클리셰도 있지만 후성규칙, 즉 유전이라는 동양적 사고로 푼 게 친숙하다. 그래서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이다. 또한 없어진 뒤에야 매기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게 된 그레이스에게서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네 속담이 묻어난다.

사람의 소중함이다. 명품 등을 활용한 유머도 풍부하다. 이브 생로랑이나 지아니 베르사체를 좋아하기는 톱스타나 일반인이나 똑같다. 다만 스타는 쉽게 자주 사는 데 반해 일반인은 하나 사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게 다를 뿐. 주인공들에게선 다윈의 자연선택론이 솔솔 풍겨 나온다. 1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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