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류충렬의 파르마콘] ‘코리안 타임’ 사라진 것인가? ‘코리안 타임’,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드물게 들리는 말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코리안 타임’이란 말을 생활 곳곳에서 무시로 주고받으며 살아왔다. 코리안 타임은 약속시간에 상습적으로 늦고 제때 시간을 지키지 않는 한국인을 비꼬는 말이다. 지금은 다소 나아졌지만 오랜 기간 한국인은 약속시간에 제때 나타나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고,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 자체를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다. 이를 빗대어 외국인들은 코리안 타임이라 꼬집었다. 한때 우리사회는 ‘코리안 타임’이란 말을 쓰지도 사용하지도 말자, 약속시간을 지키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다. 코리안 타임 현상은 아마 과거 오랜 기간을 시계라는 문명도구 없이 살아왔고, 하루를 12칸으로 구분하면서 2시간을 하나의 시간대로 살아온 시간개념의 관행에서 비롯된 현상이었을 것이다.

‘코리안 타임’, 그럼 지금은 사라진 것일까? 예를 들어보자. 예약제 식당의 경우 예약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사전에 취소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예약을 지키지 않는 현상은 어떠한가? 예약시간을 1시간 늦게 나타나 자리를 내놓으라는 손님들로 예약제 운영을 포기했다는 식당주인의 하소연을 자주 접하지 않는가? 대중 공연장은 어떠한가? 예약시간보다 늦게 나타나 출입문에서 실랑이 하는 현상은 없는가? 코리안 타임이란 말 자체는 듣기 어려워졌지만 변종의 코리안 타임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필자는 영화를 즐긴다. 필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 영화관일 것이다. 전체 인구가 5천만에 불과한 나라에서 관객 천만을 돌파한 영화를 예들기 어렵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에서 영화관은 단순 영화취미를 갖는 사람이 찾는 공간이 아니라 청소년을 비롯하여 국민이 찾는 대표적인 문화공간이라고 하여도 틀리지 않게 된다. 대중 문화공간인 영화관에서의 코리안 타임은 어떠한가? 영화가 상영된 이후 늦게 나타나 자신의 좌석을 찾는 관객을 위해 다리를 틀어 길을 내어 주어야 하는 현상은 어느 정도일까? 어둠 속에서 음식을 들고 좌석을 찾아 방황하는 관객으로 영화감상에 방해받는 현상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변종된 코리안 타임의 현상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일지 모른다.

영화관에서의 코리안 타임 현상, 과연 늦게 나타난 관객만의 잘못일까? 현재 오페라, 연극 등의 주요 예술 공연장에서는 영화관과 같은 코리안 타임 현상은 사리진지 제법이다. 왜 영화관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이 다른 고급(?) 예술공연장에는 사라진 것일까? 영화관과 같이 공연중 늦은 입장현상이 다른 예술공연장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액의 공연장에서부터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나는 관객의 입장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한동안은 늦게 나타난 관객과 입장 문제로 시비가 있었으나, 이제는 관객도 공연장측도 공연시작 이후에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 가장 대중적인 영화관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관객도 문제가 있겠지만 영화관 측에 더 문제가 있다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일까? 이유를 살펴보자. 무엇보다 영화관 측에서 상영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CF 상영을 거쳐 8분에서 10분정도 늦게 시작하는 것이 상습화되어 있다. 자주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은 이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는 의례히 늦게 시작한다는 학습효과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늦게 좌석에 나타나야 오히려 상영시간을 맞추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늦게 상영하므로 늦게 나타나야 하는데 조금 지나치게 늦어져 다른 관객을 불쾌하게 만드는 현상을 가져오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럼 영화관은 왜 약속시간 보다 늦게 시작할까? CF 상영을 통한 극장 수입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약속된 시간에 영화를 상영하고 대신 CF상영을 그 앞으로 당기면 왜 안 되는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한국의 대다수 국민이 자주 찾는 가장 대표적인 문화공간에서 코리안 타임을 느끼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특히 자라는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공간에서 의례히 늦게 나타나야 오히려 제 시간이라는 학습효과를 줄까 두렵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영화관, 대중이 가장 많이 찾는 문화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코리안 타임’의 대표적인 현상이 아닐까? 앞장서서 약속문화를 선도해야할 대기업에서 잘못된 ‘코리안 타임’ 현상을 오히려 더해 가는 상황이 아쉽다. 약속문화를 대중적인 공간에서부터 선도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 류충렬 박사

[류충렬 박사]
학력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
경력 2013.04~2014.01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 단장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
국무총리실 사회규제관리관
한국행정연구원 초청연구위원
국립공주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
현) (사) 에이스탭연구소 이사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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