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디즈니-픽사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댄 스캔론 감독)은 낭만보다 경제가, 철학보다 과학이 우선시되는 이 시대에 필요한 동화다. 마법이 사라진 세상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와 사는 엘프족 형제 발리(크리스 프랫)와 이안(톰 홀랜드). 형 발리는 의욕만 충만하지 어수선하다.

이안은 철이 들었지만 소심하다. 그의 16살 생일을 맞아 엄마가 형제가 모두 16살이 넘었을 때 펴보라고 했다는 아빠의 선물을 준다. 그건 마법 지팡이다. 발리가 마법의 주문을 외울 때는 아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안이 외우자 아버지를 단 하루 소환할 수 있게 되는데 반쪽만 소생시킨다.

24시간 내에 아버지의 상반신까지 부활시켜 추억을 쌓고자 갈망하는 형제는 지팡이의 능력을 회복시킬 피닉스 젬을 찾아 만티코어의 주점으로 간다. 한때 세상을 흔들었던 만티코어는 극도로 선해졌는데 이안이 자극을 주자 포악한 옛 성미가 되살아나 주점에 불을 내고 형제는 지도를 갖고 튄다.

형제가 사라진 걸 발견한 엄마는 켄타우로스 경찰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한 뒤 직접 형제의 행적을 따라나섰다 방화범으로 경찰에 붙잡힌 만티코어를 빼돌려 차에 태운다. 만티코어는 엄마에게 피닉스 젬을 사용하면 저주가 내리는데 그걸 막기 위해선 전당포에 맡긴 자신의 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형제는 지도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티격태격 다투면서 사이가 벌어지고, 이안의 마법 능력은 점점 상승해간다. 발리는 딱 한 번만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며 험한 길을 선택한 끝에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고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동굴을 발견한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거긴 의외의 장소인데.

형제가 사는 마을은 각종 신화와 전설 속의 존재가 공존하지만 인류의 세상과 별다를 바 없다. 예전엔 마법이 있었지만 배우기 어렵고 불편한 점이 있는지라 쉬운 마법을 찾아내 생활에 적용하니 그건 바로 과학이었다. 결국 그들의 세계에선 모험과 마법이 사라지고 유니콘은 쓰레기통이나 뒤진다.

‘마법은 (형편이) 어려운 자들의 친구’라는 내레이션은 마법과 전설이 주는 낭만을 환유한다. 외모, 성격, 지성 등이 정반대인 형제는 이항대립이다. 과학의 발달과 경제적 윤택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현실주의자로 변모시킴으로써 물질만능주의라는 획일주의에 빠뜨려 다른 걸 인정 안 한다는 교훈.

발리는 폭주족이지만 이안은 운전이 무섭다. 생일 파티에 친구를 초대하지 못할 정도로 소심하다. 발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지만 이안은 그렇지 못해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아버지의 육성을 들으며 ‘아빠 닮기’를 구상한다. 그건 바로 ‘새로운 나’를 콘셉트로 한 메모, 즉 버킷 리스트로 적힌다.

아빠라는 존재는 절반씩 모자란 형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성장의 완성을 상징한다. 그건 단 하루 혹은 몇 분일지 모를 아빠와의 재회를 통해 성사된다. 이안은 학교 가기가 두렵지만, 발리는 아예 휴학 중이다. 탄력성이 없는 생존의 논리(경제)에 갇혀 개성과 취향이 수감된 현대인의 비극이다.

마법은 사라졌지만 대신 온라인 게임이 살아있다. 사자의 몸에 전갈의 꼬리와 용의 날개를 단 만티코어가 음식이나 나른다니! 그래서 발리는 온라인 게임 사용자의 임무라는 퀘스트를 믿는다. 아빠가 숨겨진 마법사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안이 아빠를 만나려는 건 그런 추억을 갖기 위함이다.

전체적으로 ‘정신은 자연의 산물’이라는 셸링의 낭만주의적 인식론과 ‘신체는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와 ‘지각의 독자성과 한계’를 주장한 메를로 퐁티가 엿보인다. 목적지를 향해 가던 형제 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가로막혀 있다. 발리가 잡은 밧줄로 안전장치를 한 이안이 마법을 이용해 건너간다.

그러나 중간쯤에 밧줄이 풀리고 이를 못 본 이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허공을 밟고 무사히 건너가 도개교를 내려주는 데 성공한다. 해골로 맛나게 샘물을 마신 뒤 깨우쳤다는 원효대사의 인식론이다. 이안은 형을, 발리는 동생을 각각 믿었기에 무사히 모든 위험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메를로 퐁티는 신체를 곧 지각으로, 또한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로 봤다. 아빠의 하반신은 불완전해 음악을 들을 수 없지만 음파의 진동을 발로 감지하고 춤을 춘다. 낙담한 이안이 아빠의 하반신과 노을을 보는 건 그가 원했던 아빠와의 추억 쌓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만으로 추억이라는 것.

이안은 저주와 싸우느라 아빠와의 찰나의 추억 쌓기의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되지만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그걸 즐긴다. 어차피 우리의 지각은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하다못해 건물의 외벽이나 한 면만 볼 뿐 들어가지 않는 한 내부를 볼 수는 없다. 이안은 대리만족만으로 족하다.

그가 “아빠가 뭐라고 하셨어?”라고 묻는 건 그런 지각의 한계조차도 실존주의적 존재론이라는 함의적인 의미다. 형제가 뻥 뚫린 고속도로 대신 위험한 비포장 산길을 선택한 건 지나치게 편의만 좇는 스마트 시대에 대한 비아냥거림이다. 마냥 편하고 행복할 순 없는 게 인생이니 모험을 즐기라는.

“열심히 놀았다”는 마지막 대사가 ‘인사이드 아웃’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관념론과 ‘코코’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인식론을 선사한다. 비과학적이라 전설을 만들고 믿는 게 아니다. 거기서 지혜와 교훈과 안식을 얻기 때문이다. 비주얼, 음악, 캐릭터 모두 흠잡을 데 없다. 17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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