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인베이젼 2020’(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은 ‘어트랙션’(2017)의 3년 후를 그린다. 전편. 모스크바에 거대한 외계 우주선이 추락해 사상자가 발생한다. 율리아는 죽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우주선에 접근했다 위험에 빠지지만 외계인 하컨의 도움을 받고 그들이 침략하러 온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율리아의 연인 툐마를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외계 존재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가 커져 군대를 조직해 전쟁을 벌인다. 율리아와 하컨은 전쟁을 막으려 노력하지만 결국 툐마 등 율리아의 지인들이 희생되고 하커 등은 지구를 떠난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후.

율리아는 국방부 발렌틴 장군의 딸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존재이기에 24시간 정부 요원들의 경호를 받는다. 국방부와 항공우주군은 하커와 사랑에 빠졌던 율리아를 통해 그들의 첨단 과학을 배워 고성능 무기를 개발할 요량으로 그녀를 실험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그녀는 트라우마 때문에 괴롭다.

그녀는 장군에게 단 하루 만이라도 경호원 없는 자유를 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지만 장군은 율리아가 본 적 없는 젊은 장교 이반에게 임무를 맡긴다. 바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그녀는 이반의 존재를 눈치채고 부른다. 이반이 이제 집에 가자며 잡아끌 무렵 갑자기 하컨이 나타나 그와 대결하는데.

전편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지만 이번엔 좀 다를 것이다. 아직도 연출과 편집에서 다소 매끄럽지 못하지만 일단 비주얼이 시원시원하고 액션도 즐길 만하다. 질질 끌지 않고 각 시퀀스를 간결하게 매조지는 쇼트나 점프도 깔끔한 편. 뭣보다 철학과 과학의 조화와 확장이 장대하다.

만약 지구에 오는 외계인이 있다면 확실히 우리보다 뛰어난 과학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컨 종족의 우월함은 물에서 모든 에너지와 질료와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단 불순물이 섞이면 안 된다. 하컨과 사랑에 빠진 율리아는 서서히 하컨化하는 중이다. 노골적으로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다.

하컨은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는 탈레스를 참조해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육체의 70%가 지구의 80%가 물이다. 물론 곧바로 엠페도클레스가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론을 떠들었고, 이 시대에 뤽 베송은 ‘제5원소’를 주창했지만 유기체에게 우선시되는 건 물과 공기일 것이다.

총상을 입은 율리아를 살릴 수 있는 건 의술보다도 가장 순수한 물이라는 설정은 드러내놓고 환경 파괴를 조롱한다. 정부가 율리아를 소중한 척하는 건 사실 보호하는 게 아니라 감시하고 사육하는 것이다. 욕심 때문이다. 모든 인류가 욕심 때문에 지구를 병들게 하고 각 동식물의 멸종을 초래한다.

그런 비난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라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이어져 주제의 골격을 이루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대한 풍자의 옷을 입는다. 율리아와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는 하컨 세계의 인공지능 라다. 하컨을 돕다 통신이 끊긴 평화적 인공지능 솔을 제치고 전쟁을 일으킨다.

솔과 라는 같은 러시아(구소련) 출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걸작 SF ‘솔라리스’(1972)에 대한 헌사일 수도, 태양신 아멘 라에서 빌린 것일 수도 있다. 라는 초능력이 발현되고, 지구에 자신들의 문명을 전수할 위험성이 높은 율리아를 제거하라고 하컨에게 명령하지만 그는 그녀를 지키려 애쓴다.

그래서 라는 지구에 총공격을 감행하고, ‘길가메시 서사시’의 우트나피슈팀의 방주와 홍수 전설처럼 지구는 물에 잠긴다. ‘터미네이터’나 ‘A.I.’처럼 인공지능은 신이 되려 한다. 인공지능에 대해 두려운 건 감정이나 자각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한계를 넘는 발전을 할 것이기에.

인간의 뇌가 사유적, 지각적, 감정적, 감성적이라면 인공지능은 소여적, 직관적, 직각적, 직증적이다. ‘직관은 기적이 아냐’라는 대사다. 그런데 하컨의 인공지능은 지구의 인공지능의 범주를 벗어나 엄청나게 지평을 넓혔다. ‘A.I.’는 섬뜩하게도 인공지능이 인류를 이긴다고 그린다. 과연 그렇게 될까?

물론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물이 매우 확연한 힌트다. 감독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라가 지구의 디지털 미디어를 점령하고 조작하는 무서운 설정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라는 가짜뉴스로써 손쉽게 율리아를 테러범으로 만들고, 네트워크를 교란해 지구인을 패닉에 빠뜨린다.

상업영화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외계인은 ‘에이리언’ 아니면 ‘화성침공’이었다. 심지어 우리나라도 ‘지구를 지켜라’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 통쾌하게 시각을 뒤틀어 외계인은 착하다고 웅변한다. 하컨은 지구에 정착한 지 123일이나 되는데 직장도, 집도, 텃밭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진정한 사람이 됐군”이란 말을 듣는다. 그는 율리아를 위해 희생을 자처한다. 율리아가 하컨化할수록 하컨은 지구인化하는 것. 물로 유기체와 무기체의 기운을 얻고 보충, 수리하는 그는 그러나 술에 약해 쓰러진다. 이 역시 순수함의 강조다.

메를로 퐁티는 ‘지각하는 것은 내가 세계 속에 몸을 담그고 있음의 증거’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세계-내-존재”라고 했다. “인격은 공감능력”이란 대사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공감하게 된다면 인격체로 인정해야 할까? 시원한 비주얼과 확장된 상상력이 돋보이는 액션 SF다. 내달 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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