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판타지에서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일찍이 알아본 안드레 외브레달 감독의 ‘모탈: 레전드 오브 토르’는 관객들이 잘 아는 ‘어벤져스’의 토르를 소재로 하지만 마블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SF 스릴러다. 노르웨이 시골의 청소년 올레가 한 이방인에게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살인자는 노르웨이계 미국인 에릭. 경찰 책임자 헨릭은 심리 상담사 크리스틴에게 그의 심문을 맡긴다. 에릭이 겁을 먹자 갑자기 번개가 쳐 경찰서가 풍비박산 난다. 에릭의 신병을 인수하러 미국 대사관에서 보낸 사람들이 온다. 그러나 그들이 탄 헬기는 에릭의 공포로 엔진이 멈춰 호수에 추락한다.

에릭은 초능력으로 탈출하며 유일한 생존자 해서웨이를 구해준 뒤 크리스틴을 찾아간다. 경찰의 수배령이 내린 에릭을 숨겨주는 한편 초능력을 발휘하는 그의 정체의 비밀을 풀고자 결심한 크리스틴은 3년 전 원인불명의 화재로 에릭의 친척 전원이 죽었지만 에릭만 생존한 오르달 농장으로 향한다.

에릭의 통제 불가능한 힘에 놀란 해서웨이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부른다. 외아들 올레를 잃은 비에른은 에릭을 죽이기 위해 권총을 챙기고 유신론자인 헨릭은 경찰이 소재를 파악한 크리스틴을 돕기 위해 그곳에 간다. 우여곡절 끝에 농장에 도착한 에릭은 한 지점에서 꼼짝 못하고 쓰러지는데.

마블의 토르는 지구 여자와 로맨스를 갖거나 맥주를 과음해 배가 나온다. 사카아르 행성에선 헐크와 재회해 검투를 벌인 후 서로 이겼다고 유치한 신경전도 펼친다. 하지만 노르웨이 출신의 외브레달은 매우 진지하게 접근한다. 라그나로크로 모든 신들이 죽자 토르의 두 아들은 노르웨이에 정착한다.

농장을 지은 뒤 특수한 설치를 하고는 신의 부활을 기다린다. 에릭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본능에 이끌려 노르웨이에 왔다. 그리고 농장에 도착하는 순간 뭔가에 이끌려 의지와는 상관없는 엄청난 초능력을 발현함으로써 화재를 야기했다. 그의 정체를 따르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치가 썩 좋다.

영화들은 초능력자를 많이 다룬다.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종교와 매우 밀접하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신 혹은 특수한 존재나 신비적인 현상을 믿는 사람은 많다. 종교인들이 기분 나쁠지 몰라도 종교보다 앞선 게 신화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하느님과 예수보다 트리비아와 가이아가 먼저 있었다.

이 작품은 기득권 종교를 살짝 비웃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문명을 시작할 무렵 가졌던 우주관에 대한 신비주의와 북유럽의 문화를 찬양한다. 에릭의 비밀의 열쇠를 쥔 지하 동굴엔 룬 문자가 가득 적힌 룬스톤이 둘러져 있다. 또한 한쪽 벽엔 우주의 나무인 이그드라실이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고대 북유럽의 문자인 룬을 “죽은 신들의 모든 지식”이라고 한 대사는 북유럽 문화에 대한 강력한 자긍심이다. 자본으로 영화 시장을 장악한 할리우드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이다. 토르를 희화화하지 말라는 경고다. 에릭의 초능력이 널리 알려지자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환호를 보낸다.

그들은 “나도 만져줘요”라고 외치는 집단 히스테리 현상을 보인다. 신의 현현에 축복을 받고 싶은 것이다. “예수의 재림?”이냐는 질문에 에릭은 “예수라면 사람 안 죽인다”고 시니컬하게 답한다. 에릭이 토르의 후손일 경우 지금까지 자기만의 신을 믿어온 신실한 종교인에게 큰 혼란이 올 것이다.

기득권 종교의 신은 그저 믿음만을 강요하며 언젠가 세상의 종말이 올 경우 나타나 신앙심이 뛰어나고 회개한 사람은 천국으로 이끌겠다는 신탁만 했을 뿐 지금까지 뭔가 보여준 게 없다. 그러나 에릭은 눈앞에서 날씨, 대기, 물 등을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심장이 멎어 죽은 소년도 살려낼 정도.

인트로의 에릭이 산속 흙탕물에 손을 담그는 시퀀스는 신성한 신이 어지러운 인간계에 육화했다는 환유다. 의사가 “어떻게 이런 몸으로 살아있을 수 있을까?”라고 놀랄 만큼 전신 화상을 입은 건 본래적 존재인 신의 강한 기운을 인간의 육체가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면이 얼마나 강하면.

크리스틴은 에릭에게 “좋은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고 달랜다. 올레는 아무 이유 없이 단지 외모가 허름하고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에릭을 괴롭히다 그의 초능력에 죽음을 맞았다. 신이라고 해도 함부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되지만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도 잘못됐다는 반발이다.

미국이 대사관을 통해 에릭을 확보하고자 하는 건 미국의 전 세계에 대한 군사적 간섭을 대놓고 비웃는 시퀀스. 엄청난 과학 혹은 신비주의의 열쇠인 에릭을 어떻게든 미국에 소속시키는 게 당연한데 해서웨이는 제거하려 한다. 설마 그 엄청난 자원을 죽이는 데 일개 장교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미국의 이기주의를 대놓고 비판한다. 한쪽 다리를 절던 에릭이 마지막에 몸에서 거즈를 떼고 붕대를 푸는 건 니체의 위버멘시(초인)다. 그가 민가에 침입해 의약품을 훔칠 때 막대사탕까지 한 움큼 챙기는 시퀀스는 크리스틴과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신도 인간처럼 달콤함의 유혹에 취약하다는 유머.

고대를 지배한 그리스 신화를 물리치고 새 종교가 헤게모니를 쥐었지만 니체는 그 신을 죽이고 가치전도를 포교했다. 외브레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니체의 노선을 따르는 듯하다. 과연 신은 선일까? 신이 있기는 한 걸까? 시종일관 서늘하게 전개되던 작품의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다. 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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