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우리 민족은 내부적으로 많은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조선 말기의 동학운동부터 해방 직후의 제주 4·3사건까지.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의 부마민주항쟁과 전두환 정권 때의 광주민주화운동까지.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이조훈 감독)을 보려면 손수건을 준비할 것.

1980년의 5월 감독은 초등학교 2년이었다고 한다. 그의 눈엔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도, 그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군인들도 이해가 안 됐을 것이다. 그런 그가 고등학생이 돼 ‘광주비디오’를 접했다. 그래서 왜 시민들이 궐기했는지, 시민군이 장렬히 목숨을 바쳐야 했는지 깨닫게 됐다.

올해 40주년을 맞은 광주민주화운동처럼 47살로 성장한 감독은 학살 주범과 사살 명령자는 왜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도, 처벌받지도 않았는지, 왜 보수주의자들과 특히 연로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 투쟁을 북한이 개입한 반란이라고 왜곡하고 폄훼하는지 파고든다. 국민에게 진실을 보라고 절규한다.

1980년 5월 21일 오전. 계엄군이 정오까지 철수하겠다던 약속을 깨뜨리자 분노한 시민군은 전남도청 앞으로 몰려든다. 낮 1시 계엄군의 무자비한 발포로 집단 살육이 벌어졌다. 광주의 참상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은 전두환 신군부와 광주항쟁에 참여한 민간인에게 많지만 낮 1~5시의 4시간은 없다.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그 처절했던 아비규환의 10일 중에서도 가장 잔인했던 그날의 4시간의 기록이 전무하다는 건 다분히 의심의 소지가 짙은 이상현상이다. 본인이 부인하거나 입을 다물어도 민간인 학살과 고문의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나마 노태우는 뉘우치는 듯하다.

그런데 전두환은 지난 4월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항의하는 시민과 취재하는 기자에게 고압적 태도를 보였다. 골프를 즐기고 값비싼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도 벌금 낼 돈은 없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아프지만 꼭 알아야 할 우리 역사다.

일제 강점기 시절 박정희는 교사를 관두고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해 만주 괴뢰군 장교로 복무하며 팔로군 격파에 공로를 세웠다. 해방 후 광복군이 됐다 공산주의자인 형 박상희가 우익에게 피살되자 복수심으로 남조선로동당에 들어가서 대한민국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들의 총책으로 활동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에서 감행했던 작전 중에 가장 큰 규모였으며 거의 성공에 가까웠던 정부 전복 기도 사건(대한민국 국방경비대 침투 사건)을 지도한 뒤 여수·순천 반란 사건에 연루돼 체포됐다 동료 300여 명을 팔아 사면돼 국군에 복귀해 결국 군사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 장기 독재를 펼쳤다.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22살의 가수 심수봉과 여대생 신모 씨를 데리고 주연을 벌이다 김재규 열사의 총에 사라졌다. 교과서, 인터넷, 기사, 각종 자료 등에 명명백백하게 나오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과 ‘남산의 부장들’이 거의 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끔 잘 그려내고 있는 분명한 팩트다.

먼발치서 그런 박정희를 보며 야망을 키워온 전두환은 거의 비슷하게 군사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광주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거나 그걸 방조했다. 그래서 광주민주화운동은 좁게는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으로, 넓게는 1979년 12·12 군사반란부터 5개월 15일로 본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구성된 신군부가 군사력을 장악하자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고, 반란군은 곧바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으며, 결국 광주항쟁을 야기했다. 82분에 불과한 이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계속 아파서 눈물이 흐르며 희생자들에게 마냥 미안해서다.

한 할머니의 “한국전쟁 때도 이러진 않았어”라는 날카로운 절규가 광주의 참상을 폐부에 찔러준다. 한국전쟁 때는 이념의 대결이라도 있었다. 남과 북의 지도자의, 주권을 쥔 미국과 소련의 입장이 달랐다. 하지만 광주 때는 ‘같은 편’끼리 싸웠다. 시민군은 계엄군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대상이었다.

‘광주비디오’에는 뉴욕 한인들이 만든 ‘오 광주!’, 영화 ‘택시운전사’로 알려진 독일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촬영한 걸 기저로 한 ‘기로에 선 한국’, 광주 시민들이 만든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일본 NHK가 제작한 ‘계엄령 하의 한국’ 등이 있다. 영화는 그걸 기초로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감독은 “기계적 중립성이나 친절한 답변을 위한 객관화 대신 주관적 판단 하의 저널리즘의 형식으로 모드 아카이브 필름을 뒤져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미디어로서 타 매체에 비해 접근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그 파급력과 데마고기에 찬 프로파간다적 기능은 엄청나다.

감독의 진실성과 참 명제를 밝히려는 노력은 스크린 곳곳에 오롯이 녹아있다. ‘사라진 4시간’이란 어젠더가 보다 더 많은 국민들의 화제와 논제가 되길 바라는 감독의 바람은 감동하기 충분하다. 특히 2019년 11월 30일 서울역 앞의 태극기부대 집회 장면은 오늘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백미다.

보수주의자들은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인포데믹스를 믿고, 자신의 믿음만 옳다는 확증편향에 빠져있다. 이 작품은 후설의 ‘판단중지’와 니체의 ‘가치전도’다. 지금까지 믿어온 걸 중단하고 한번은 ‘반대가 진실이라면’이라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질문을 해 보라고 태극기부대에게 외친다. 1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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