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중국이 만들면 등반마저도 무협 액션이 된다. ‘흑협’, ‘성월동화’, ‘삼국지-용의 부활’로 잘 알려진 리옌쿵(이인항) 감독의 ‘에베레스트’다. 1960년 중국 국립등반대는 에베레스트에 도전해 대장 등 7명의 대원을 잃고 3명이 등정에 성공하지만 카메라를 잃어 촬영을 못 해 국제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다.

5년 후. 당시의 생존자 팡(우징)은 교단에서 강의를 하지만 거짓말쟁이로 의심받자 강단에서 내려온다. 기상학을 전공하는 그의 연인 쉬(장쯔이)는 학교의 배려로 소련으로 유학을 떠난다. 1973년. 정부는 팡을 대장으로 등반대를 재결성하고, 팡은 함께 생존한 송린과 졔파오를 부르고, 쉬도 합류한다.

2년의 훈련 끝에 드디어 1년에 가장 등반하기 좋은 창구기가 찾아오자 등반대는 정예 멤버로 등정에 도전한다. 그러나 대열에서 낙오된 쉬를 찾으러 다니던 팡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큰 부상을 입는다. 사진 기자를 겸한 리가 청년대원들의 용기를 북돋운 후 팡에게 자신이 대장을 맡겠다고 하는데.

히말라야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Hima와 안식처 혹은 집을 뜻하는 laya의 합성어로 눈의 집, 만년설의 집이란 뜻이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이 산맥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 세계 등산가들이 가장 많이 도전하는 에베레스트(해발 8848m)인데 티베트에서는 초모룽마로 부른다.

세계의 어머니, 혹은 성스러운 어머니란 뜻.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하늘의 여신)라고 한다. 그런 에베레스트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다분히 중국식 ‘국뽕’ 냄새가 짙고, 중국 특유의 과장이 심하다는 걸 제외하면 한여름의 피서용으로는 썩 괜찮다. 특히 등반 시퀀스는 손에 땀이 마를 겨를이 없다.

최악의 기후 속에서 약간의 도구와 방한복만으로 하늘과 마주한 산꼭대기에 오른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지만 등산이 생긴 이래 수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서 오르고 또 오르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정말 실감 나게 보여주는 가운데 무협 액션으로 풀어 지루할 틈을 안 준다.

‘그린 호넷’ 냄새가 폴폴 풍기는 ‘흑협’(1996), 장궈룽의 마지막 멜로라 더욱 돋보이는 ‘성월동화’(1999)로 유명한 감독은 액션, 재난, 우정, 멜로, ‘국뽕’ 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버무리면서도 결코 산만하지 않고 침착하게 배열할 줄 아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결말까지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솜씨.

플롯의 큰 틀은 당연히 ‘왜 목숨 걸고 산에 오르는가’다. 영국의 등산가 조지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작품 속 목적은 미래지향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려는 탐구정신이다. 그건 곧 ‘그 산은 우리 산’이라는 대사 속에 담긴 강력한 중화사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인트로의 내레이션은 쇠재두루미 떼를 보여주며 매년 겨울 이 무리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에베레스트를 넘는다고 읊는다. 산에 오르는 건 공간적 이동과 시간적 흐름을 살아가야 하는 유기체의 숙명과 같다. 언젠가는 죽을 목숨이기에 산에 오르다 죽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본능이니까.

등반대는 등반 전 스님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산에 오르지 말라는 말만 듣지만 이를 무시한다. 창구기가 지나갔다고 하지만 쉬는 아직 남았다며 폐수종에 걸려 각혈을 하면서도 팡의 꿈을 돕는다. 그리고 팡은 대원들에게 쉬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하며 정상을 향한 마지막 걸음을 내딛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통쾌한 시퀀스다. 히말라야 인근의 사람들은 산을 신성시하지만 팡은 과학을 외친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이란 저서를 통해 자신의 무신론을 설득력 있게 웅변한다. 사람의 생명은 신이 좌우하는 게 아니라 과학에 근거한 사람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이 작품이 강력한 ‘국뽕’ 색채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고 설득력이 강한 근거는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신비주의나 종교로 핑계를 대기보다는 과학적 근거와 주의주의(지성보다 의지가 우월하다는 사상)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신의 은총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에 있다고 강하게 부르댄다.

팡은 말로리가 공식적으로 정상으로 인정받은 곳은 사실 800피트가 낮고, 자신이 오른 비공인 정상이 제일 높다고 외친다. “우리 산이야. 우리가 올라야 해”라는 대사와 함께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고, 서아시아까지 모두 중국 땅이라는 중화사상은 불편하지만 중국의 시각에선 감동의 도가니일 듯.

물론 모든 시퀀스가 ‘충성’ 일색은 아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5년간은 중국공산당 초대 주석 마오쩌둥이 집권과 추락을 반복한 시기다. 결국 그는 1976년 4월 천안문사건 때 고립된 채 사망했다. 그는 통일과 독립으로 주권을 회복해 외세에 국토를 유린당한 중국인들의 자존감을 되찾고자 했다.

제도 정비와 대중의 정치 참여를 유도해 자립을 이룬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대약진운동 즉, 개혁 정책은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다. 1981년 정권을 잡은 덩샤오핑의 정부는 마오의 문화대혁명은 내란이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영웅이었지만 독재자였던 마오에 대한 비판도 살짝 삽입했다.

팡과 쉬의 데이트 장소가 하필 폐공장인 건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심이자 부러움이다. 산이 팡과 쉬 사이의 간극인 동시에 서로를 이어준 인연이라는 양가성은 가슴이 미어진다. 액션도 시원시원하지만 배경이 설산이기 때문에 한여름 피서용으로는 썩 훌륭하다. 쿠키 영상을 놓치지 말 것. 22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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