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반도’(연상호 감독)는 말이 ‘부산행’의 속편이지 규모, 메시지, 재미, 완성도 등에서 완전히 다르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이나 워쇼스키 자매의 ‘매트릭스’ 3부작은 동시에 찍었기에 별 차이가 없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시간 차이가 있음에도 완성도가 유사하다.

그런데 시간차를 두고 찍은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3부작은 수준을 떠나 장르, 내용, 메시지가 확연히 다르다. ‘반도’가 그렇다. ‘부산행’을 안 봤어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을 만큼 전혀 다른 작품이다. 시사회 직후 극찬 일색인 이유다. 흥행에 걸림돌이 있다면 오직 코로나19뿐.

할리우드의 자본과 기술이 만든 탄탄한 완성도의 블록버스터에 이젠 도전해 볼 만한 자신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작비 190억 원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해 ‘껌값’이니까. 사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강동원의 원맨쇼가 예상됐다. 하지만 이정현, 이레, 이예원 등 여전사가 주인공이었다.

정석은 처음엔 반도에 다시 들어가라는 제안을 거부하지만 변한다. 살고자 탈출한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할 이유는 현재 사는 홍콩도 만만치 않기 때문. 좀비의 창궐로 반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됐고, 전 세계는 더 이상 한국 난민을 받지 않는다. 반도에 잔존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무법천지.

하지만 그건 편견일 수도 있다. 홍콩엔 좀비가 없지만 그렇다고 안전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난민은 바이러스 유포의 위험군으로 분류돼 차별 대우를 받는다. 정석 일행이 죽음을 무릅쓰고 반도에 재입국하려는 이유다. 일확천금으로 부자가 되면 홍콩에서 사람대접을 받으며 산다는 희망이다.

왜 하필 홍콩일까? 본래 미국은 한국 난민을 일본으로 보내려 했지만 항해 도중 홍콩으로 바뀌었다. 홍콩은 근대에 중국이 세계 열강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던 때 영국에 임대된 자치구다. 1997년에 중국에 반환됐지만 지난 155년간 영국에 할양됐기에 주민들은 생김새와 달리 생각은 대륙과 달랐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홍콩의 제법 한다는 감독들은 죄다 우울한 현재와 미래를 그렸다. 반환이 싫거나 최소한 두려웠던 것. 그 우려는 코로나19 이전까지의 홍콩의 대규모 시위로 입증됐었다. 홍콩 주민은 중국인도 영국인도 아니다. 그냥 홍콩인이다. 남한사람이었던 한국인은 이제 이도 저도 아니다.

제목이 한반도가 아니라 반도인 이유다. 인트로에서 난민선의 지휘관이 미군 장교인 시퀀스로 증명한다. 전시군사작전권이 없는 한국이 한국에 대해 주권국일 수 있을까? “곧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거야”라는 어른의 위로에 준이는 “제가 있던 세상도 나쁘지 않아요”라고 비상식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라는 김 노인의 사과에 “가족이 함께 사는 데 왜 지옥이냐”던 유진의 의문과 맞닿는다. 4년 전 ‘부산행’이 시작되기 전이 지금의 ‘반도’와는 완전히 다른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연 4년 전은 평화로웠을까?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이었을까?

감독은 작은 작품들부터 ‘부산행’과 ‘염력’에 이어 ‘반도’까지 여전히 악마적 인간을 말한다. 천사와 타락천사를 기독교가 만들었듯 거의 모든 종교는 천사와 악마를 창조했다. 이는 실제 인류에 현자와 악인이 공존한다는 뜻이다. 정석은 본래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이었다.

4년 전 난민선을 타기 위해 승용차에 누나 가족을 태우고 피신할 때 민정 부부가 나타나 어린 딸 유진만이라도 구해달라고 애원했건만 외면했다. 결국 난민선 안에서 누나와 조카를 잃고 매형 철민과 홍콩에 정착했지만 외면하고 산다. 이번 일로 어쩔 수 없이 만났지만 끝나면 보지 말자고 한다.

정석은 그러나 631부대원들에게 목숨을 잃을 찰나 준이와 유진의 도움으로 살아나자 오대수였던 과거를 뉘우쳐 민정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뒤 그녀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건다. 이런 설정은 공간에 대한 인식론이다. 다소 신파적일 수 있는 가족애의 클리셰를 미리 방지하는 철학적 장치다.

남들은 반도를 지옥이라고 하지만 준이와 유진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기에. 그리고 그 가족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희생정신을 완벽하게 갖췄기에. 색깔은 완전히 다르지만 631부대원들도 현실에 안분지족하기는 마찬가지. 참치 캔 하나면 진수성찬이다.

주인공들이 정작 상대해야 할 강적은 좀비보다 631부대원이다. 원래 민간인 보호 목적으로 구성된 631은 그 전투력으로 자기들만의 ‘국가’를 만들어 운영한다. 민정 가족은 원래 631부대의 공간에 함께 살았지만 이탈했다. 좀비보다 더한 악마로 변한 631부대원들과 달리 태생적으로 천사였기 때문.

세 여자는 한때 악마 같은 631과 살았기에 강하다. 민정은 정석 못지않은 전사의 기질과 더불어 담대한 희생정신까지 보여주고, 준이는 10대 중반이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엄청난 카 체이싱 능력을 발휘한다. 유진은 RC카로 무시무시한 좀비와 631을 농락한다. ‘레지던트 이블’에 뒤지지 않는다.

민정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임모탄의 폭정에 항거한 사령관 퓨리오사다. 카 체이싱은 이 작품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존 한국 영화와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의 땀과 아이디어로 구현한 황폐한 한반도의 지옥도와 각종 액션 시퀀스는 지루할 틈을 안 준다. 1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미디어파인,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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