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악마지!” [김주혁 칼럼]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l승인2020.07.14l수정2020.07.1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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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키세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주필의 성평등 보이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외곽 주택가. 11살 소년 딜런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폭력에 자주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산다. 가끔은 자신도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다. 친구도 없이 늘 혼자서 게임을 하며 지낸다. 이웃인 10살 소녀 카일리는 삼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겪고 가족들에게서도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딜런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려다가 아버지와 부딪히면서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다.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카일리도 그와 함께 떠난다.

더블린 시내로 향한 두 사람은 화려한 도시의 아름다움에 들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치며 색다른 경험을 한다. 2년 전 아버지에게 맞고 가출한 딜런의 형을 찾아 나섰지만 실패한다. 두 꼬마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딜런의 장래 희망은 “그 인간(아버지)을 다시 안 보는 것”이다. 카일리는 성추행을 저지른 삼촌의 악행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집 밖의 생활이 달콤하지만은 않다. 어둠이 찾아온 가운데 딜런은 돈이 떨어지고 배가 고파 햄버거를 얻어먹기도 한다. 아버지가 “아무 걱정 없이 돌아오기만 하라”며 그를 찾는 소식을 음식점에서 TV를 통해 듣는다. 뒷골목에서 잘 곳을 찾다가 카일리가 괴한에게 납치되는 위기를 겪는다. 딜런은 운동화 뒤에 달린 바퀴 덕택에 납치범의 차에 매달린 채 필사적으로 추격한 끝에 여자 친구를 구출한다. 카일리는 “네 말대로 악마는 없어, 사람이 악마지!”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달콤한 키스를 맛본다. 뒷골목에서 종이 박스를 덮고 자다가 노숙자의 시신에 놀라기도 한다. 날이 밝자 두 사람은 결국 자진해서 경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아이들이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피해 아동은 희망을 잃고 친구도 없이 외톨이로 지낸다. 영화에서는 소년 소녀가 가출했다가 납치 위기를 극복한 채 큰 탈 없이 돌아오지만 현실에서는 성폭력 성매매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 영화 <키세스> 스틸 이미지

아동학대가 최근 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천에서 11살 소녀가 아버지와 동거녀로부터 2년간 감금된 채 학대를 받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구조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기결석 학생 전수조사가 실시됐다. 부천에서는 초등생이 친부모에 의해 살해된 뒤 냉동고에 3년여 동안 보관됐다가 발견되는 등 끔찍한 아동학대 살해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같은 지역에서 여중생이 아버지와 계모의 모진 매를 피해 가출했다가 교사의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간 날 매 맞아 숨진 뒤 시신이 1년간 집에 방치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정성국 검시관 등의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7년 3개월간 발생한 자녀 살해 사건은 경찰청 전산망 기준 총 230건이다. 매달 2.64건 꼴. 자녀를 살해한 동기는 가정불화 102건(44.6%), 경제 문제 62건(27%), 정신질환 55건(23.9%) 등이다. 살해자는 친부모가 대부분이다.

2015년 상반기 아동학대 피해아동 5432명을 기준으로 가해자의 81.7%가 친부모다. 계부모는 4.1%, 양부모는 0.2%, 보육시설 종사자는 6.1%에 그친다. 유형별로는 중복학대 47.1%, 방임 26.8%, 정서적 14.6%, 신체적 7.2%, 성적 학대 4.3% 등이다.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1등을 강요하며 괴롭혀온 고3 우등생 아들에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살해를 포함한 아동학대는 인권을 유린하는 반인륜적 행위다. 학대 피해아동은 수치심, 열등감, 불안감과 함께 자존감 저하를 경험하며, 본인이 가치 없는 아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성격에 따라 아이를 가해자(외향적)나 피해자(내향적)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꽃으로라도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모든 범죄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비롯해 강력범죄자 중 67%가 어린 시절 아동학대 등 부모 문제로 고통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 영화 <키세스> 스틸 이미지

아동학대는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인식해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잘못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약자인 자녀를 대상으로 분풀이를 하거나, 부모의 어린 시절 학대 등 경험에 따른 분노가 작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학대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도록 돼있으나 실제로는 대부분 가볍게 처벌되는 경우가 많아서 끊이지 않고 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아동학대의 피해자였거나, 가해자 또는 목격자일 수 있다. 피해자였다면 상담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가해자라면 당장 아동학대를 멈추고 상담치료를 받아야 한다. 목격자라면 경찰(112)에 즉각 신고해야 한다. 신고는 해당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불빛을 비춰주는 일이다. 신고자의 비밀도 보장된다.

정부는 매달 8일 ‘보라 데이’로 정해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이 주변에 없는지 관심 있게 살펴보고 발견되면 신고하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실은 1년 내내 이뤄져야 할 일이다. 학대와 폭력은 무관심 속에 자란다. 우리의 관심이 아동학대를 멈추게 할 수 있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myhappyhom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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