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필자는 자신 또는 배우자의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상담을 의뢰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 대개는 가정 내에서의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것인데, 사회적으로는 묻지마 범죄, 보복 운전, 데이트 폭력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분노’는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롭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따라서 ‘복식호흡’이나 ‘숫자 세기’ 등 분노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해서 분노를 잘 다스릴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살다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거나 또는 참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경우들도 분명히 있어서, 그저 참는 방법만 이야기하기보다는 분노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답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분노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분노에 대한 기본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분노는 우리 인간에게 부여된 여러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들 중의 하나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상황’에 대한 판단에 따른 반응이다. 우리가 가진 또 다른 판단 기능으로는 ‘이성’이 있는데, 감정이 즉각적인 유쾌 또는 불쾌의 표현이라면, 이성은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대응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분노라는 감정은 이성과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때 비로소 그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폭력적인 분노 표현은, 이성의 통제를 전혀 받지 못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흔히 ‘너무 화가 나는데 어떡하느냐?’ 또는 ‘뚜껑이 열려서 나도 모르게’와 같은 말을 하는데, 이런 것이 바로 이성과 분리된 분노의 위험성을 말한다. 주로 남성들이 저지르는 폭력적인 모습과 외형적으로는 다르지만, 일부 여성들의 과도한 감정 폭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지뢰’ 같아서,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와 반대로 이성이 너무 강하게 분노를 억압하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분노뿐 아니라 다른 감정들도 함께 억압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은데, 자신의 감정 표현도 서툴 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도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차갑다’거나 ‘기계 인간 같다’는 평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삶에서의 깊은 행복을 느끼기가 어렵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에는 우선 반사적으로 서둘러 떨쳐내려고 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억압하려 하는 대신,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분노하는 것인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후 그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할 방법을 검토하여야 한다.

만약 그 해결에 오랜 시간과 준비가 필요할 것 같으면, 그 기간을 견디는 데 분노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반대로 즉각적인 표현이 요구되는 경우라는 확신이 들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할 용기를 분노로부터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그 상황이 종료된 후에는 자신이 잘한 점과 잘하지 못한 점을 검토하는 습관을 기르면 다음에는 훨씬 더 ‘잘 분노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러한 과정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격은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노력을 통하여 보다 바람직하게 발달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과 이웃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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