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컬렉터, 歷史를 蒐集하다 [유성호 칼럼]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l승인2020.07.20l수정2020.07.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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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렉터, 歷史를 蒐集하다-평범한 물건에 담긴 한국근현대사’ 책표지. [사진=휴머니스트 제공]

[미디어파인=유성호 문화지평 대표의 문화‧관광이야기] “나는 사람들의 삶을 모으고, 역사의 흔적들과 대화하는 일에 빠져 있다.”

자칭 역사 수집 컬렉터가 책을 내면서 내건 슬로건 같은 말이다. 책은 앞선 사람들의 삶이 담긴 흔적에서 그들이 가졌을법한 생각을 읽어 내고 때론 묻고 추리하는 형식이다. 이름 하여 ‘컬렉터, 歷史를 蒐集하다’란 책이다. 작가는 이를 ‘역사를 수집하는 컬렉터의 특별하고 가슴 뛰는 수집 일기’라고 명했다.

예서 잠시 한자 공부 시간을 갖는다. 수집이란 한자어가 비슷한 게 네 종류나 된다. 흔히 ①과 ②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책에서는 첫 번째 수집을 썼다. 그냥 모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연구를 위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책 제목도 어렵지만 한자로 쓰지 않았을까 한다.

①蒐集 : 취미나 연구를 위해 여러 가지 물건이나 재료를 찾아 모음. 또는 그 물건이나 재료. 우표수집.
②收集 : 거두어 모음. 재활용품수집.
③蒐輯 :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 모아서 편집함.
④粹集 :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 골라 모음.

책은 엽서, 편지, 일기, 사진(뒷면 기록), 책자, 공문, 수첩 등 14가지 기록물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해석, 그리고 파생되는 역사적 사실을 ‘적절’하게 인용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이해하기 적당한 폭의 역사적 사실을 끌고 온 흔적이 엿보여서 적절하단 표현을 했다.

예를 들어 이렇다. 1907년 청주 군수 윤태흥이 산내이상 면장 송영수에게 실종자 조용익을 찾으라는 훈령 문서에 대한 챕터인 ‘정미의병과 사라진 통역관’에서는 문서에 적힌 내용을 먼저 해석한다. 다음엔 190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의 퍼즐을 찾아 한 귀퉁이를 짜 맞춘다.

자연히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인한 고종의 강제퇴위와 뒤이은 군대해산,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발발한 정미의병 이야기. 을미의병, 을사의병에 이은 구한말 국권에 대한 마지막 저항인 정미의병은 충북 제천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곳이란 사실을 언급한다. 1907년 8월 제천 천남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은 며칠 뒤 보복으로 이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그래서 오늘날 의병전시관, 의병도서관, 의병기념탑, 의병광장 등이 제천에 들어선 근거가 된다는 퍼즐 한쪽을 끼운다.

훈령 등장인물인 조용익은 당시 재정고문 충주지부 제천출장소 통역이었다. 조용익이 제천을 찾은 때는 이미 초토화된 이후인 9월이었다. 의병들이 조용익을 납치한 것은 자신들의 건재함을 알리는 동시에 죽이지 않고 납치한 것은 그로부터 정보를 빼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퍼즐 한 조각을 조심스레 끼워 넣는다.

▲ 청주군수 윤태흥이 이상면장 송영수에게 내린 훈령으로 한지에 등사한 문서로 군수이름과 면 이름, 면장 이름은 직접 붓으로 적었다.(가로 34cm, 세로 28cm, 박건호 소장) [사진=박건호 제공]

이어 글로 된 훈령으로 어떻게 조용익을 특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당시 쓰던 호패에 담긴 개인 신체정보 상황을 연계시킨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호패에 대한 상식을 짧게나마 소개하고 훈령에 담신 조용익의 특징을 풀었다.

납치된 조용익의 생사 여부와 그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적 근거를 더 이상 찾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질문으로 작가 자신과 독자에게 물음을 던지면서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는 식이다.

작가는 “그날을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면서 역사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시간은 희열과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의 역사퍼즐 맞추기 방식이 유연하고 흥미롭다. 무엇보다 확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예단이나 종결보다는 상상의 여지를 줌으로써 역사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전 국민이 다 아는 고 손기정 옹의 베를린 마라톤 우승 3일 후에 써준 손바닥만 한 사인부터 누구도 알지 못하는 한 정읍 청년의 생사가 달린 절절한 엽서까지, 작지만 그 속에 담긴 텍스트에서 필자의 심정과 심리를 읽어낸다는 것, 이것은 분명 가슴 뛰는 일이다. 단지 글자를 대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서 그와 대화를 나눠야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작가에 따르면 33년 전인 서울대 국사학과 1학년 때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선사유적지 학술 답사에서 우연히 발밑에 빗살무늬 토기 파편을 주운 것이 컬렉터 활동의 시발이 됐다. 그동안 사진 한 장에서부터 생활문서, 잡지, 팸플릿, 신문, 일기장, 편지, 영수증, 사인, 사직서, 온갖 증명서까지 크기가 재질에 관계없이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은 본인도 정확히 모른다고.

작가의 말대로 책은 ‘평범한 물건에 담긴 한국근현대사’(부제)다.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라 기억이 겹치는 재미도 있고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게 되는 지적 유희도 있다. 무엇보다 집집마다 서랍이나 장롱 깊숙이 있을 법한 소품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끌어낸 천착이란 점이 좋다. 장마철 비를 피해 시간여행하기 적당한 책이다.

▲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문화공동체 ‘문화지평’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축제 현장 평가위원
지자체 근현대문화유산‧미래유산 보존 자문위원
한국약선요리협회 전문위원
대중음식평론가(‘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일간지 연재 중)
前 뉴시스 의학전문기자, 월간경제지 편집장
前 외식경영신문 대표이사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shy19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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