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의 비밀 [김광훈 칼럼]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l승인2020.07.21l수정2020.07.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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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오랜만의 포스트다. 사실 이 ‘제목’으로 다음 칼럼을 쓰자고 몇 달 전부터 생각, 정말 생각만 하고서는 이토록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 과르네리우스

각설하고, 일반인들조차 현악기의 명품인 ‘스트라디바리’, 정확한 풀 네임으로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Antonio Stradivarius)를 한 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트라드와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과르네리, 풀 네임으로 과르네리우스 델 제수(Guarnerius del Gesu, ‘예수의 과르네리’라는 뜻으로 악기 안에 + 마크를 그려놓은 것에서 비롯한 별칭이다)는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현대 연주자들에게는 스트라드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명기다.

이토록 제대로 된 이탈리아 올드 현악기는 그 어떤 자산 투자보다도 확실한 느낌인데,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십여 년 전, 불과(?) 일 이억 밖에 호가하지 않던 명기들이 이제는 몇 십 억을 줘도 사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때문에 일본 유럽 등, 굴지의 은행이나 기업, 그리고 자산가들은 악기에 투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군다나 바이올리니스트 이착 펄만(Itzhak Perlman)이나 정경화처럼, 우리가 알만한 연주자가 사용한 악기들이라면, 악기는 글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名器의 秘密’ 이라는, 지극히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놓았지만, 이 칼럼에서 분명하게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도대체 어째서 이 악기들은, 이 악기들만 소리가 좋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다.

▲ 스트라디바리 라벨
▲ stradivari

1700년대 초 중반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이탈리아 올드 명기들 -스트라드와 과르네리 외에도 수십, 수백의 메이커들이 있다- 의 비밀, ‘도대체 왜?’ 라는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실험과 연구가 있어왔다. 혹자는 이 시기 이탈리아 크레모나(Cremona, 현악기 제작으로 유명한 도시다) 지역의 독특한 재료(화산재가 작용한 밀도 높은 나무)에서, 혹자는 악기에 칠하는 도료(Varnish, 바니시라고 한다)에서, 또 혹자는 현대에는 결코 전수되지 않은 당대의 독특한 제작 기법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실제 십 수 년 전, 이태리 명기의 비밀은 바니시에 있노라고 떠들던 유명한 사기꾼이 있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10만 원짜리 악기에도 고급 도료(바니시)를 바르면 명기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로 터무니가 없다.

자극적인, 드라마틱한 결말을 원했던 분들에게는 다소 김새는 답일 수 있겠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태리 명기의 비밀은 ‘없다’. 아니 있다면, 그것은 ‘장인 정신’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쉽게 이야기해서 똑같은 음식 재료를 주고, 같은 조건에서, 같은 요리를 만들라고 해도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 결과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훌륭한 재료와 도구를 가지고도, 그저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반대로 열악한 조건에서도 뛰어난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그 결과물이 ‘바로 그 사람’ 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 스테판 페터 그라이너

현대의 스트라디바리라 불리는, 몇몇 유명 현악기 제작자들 중에서도 독일 출신의 스테판 페터 그라이너(Stefan-Peter Greiner)가 특히 유명한데, 전 세계 수많은 콘서트 아티스트들이 그의 악기를 애용하고 있다.

▲ 그라이너 바이올린 앞면
▲ 그라이너 바이올린 뒷면

그라이너는 한 인터뷰에서, 또 다른 바이올린 제작자와 함께 그가 만든 악기를 처음부터 복기하기도 하고, 심지어 같이 공동 제작도 해 보며, 어째서 그가 만든 악기와 자신이 만든 악기의 소리가 다른지, 여러 가지 실험도 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어 보았지만(그리고 심지어 똑같이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끝내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결국, 제작의 비밀은 없으며 오히려 있다면 그것은 장인정신에 다름 아니라는 방증(傍證)이 아닐까.

모든 분야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지만, 여전히 최고의 걸작은 그러한 정보의 과잉에서가 아닌, 깊은 장인정신과 예술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비단 현악기 제작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정단원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겸임 교수
전주 시립 교향악단 객원 악장
월간 스트링 & 보우 및 스트라드 음악 평론가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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