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소년 아메드’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 장 피에르와 뤽의 다르덴 형제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주인공으로 칸이 다르덴 형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입증한 영화다. 배경은 유럽 국가 중 무슬림이 많다는 다르덴 형제의 고국 벨기에. 아직 성장하지 않은 13살 소년 아메드가 주인공.

자라면서 이맘(이슬람교 지도자)의 극단적 교리에 세뇌된 아메드는 죽은 유대인 아버지를 배교자라며 배척하고, 술을 마시는 벨기에 백인 엄마를 술주정뱅이라 부르며, 자유분방한 옷차림의 누나를 창녀처럼 입고 다닌다고 경멸한다. 중년의 돌봄 학교 여선생 이네스는 아메드를 어릴 때부터 가르쳤다.

이네스가 학생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아랍어로 노래를 만들어 가르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이맘은 신성모독이라며 그녀를 배교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아메드는 칼로 이네스를 살해하려다 실패해 감호 시설에 보내진 뒤 전담 복지사의 감시 하에 매주 동물농장에서 사역한다.

그 또래의 농장 딸 루이즈는 처음부터 아메드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하더니 일방적으로 입을 맞춘다. 그러자 고민에 빠진 아메드가 무슬림이 되라고 요구하지만 루이즈는 단칼에 거절한다. 이네스는 아메드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다며 면회를 요구하고 복지사는 아메드가 변했다며 면회를 허락하는데.

‘항상 현재를 영화화’하는 다르덴 형제는 그동안 많은 사회적 문제에 돋보기를 댔듯 이번엔 극단적 이슬람교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집중한다. 외형상 특정 종교를 소재로 하지만 넓게 보면 모든 종교가 대상이란 걸 깨닫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맘은 편견투성이고, 아메드는 더욱더 확대 해석한다.

아메드는 작별인사를 해달라는 이네스에게 “무슬림은 여자랑 악수 안 한다”고 외면하고, 농장의 애완견이 손을 핥자 미친 듯이 손을 씻는다. 그뿐만 아니라 루이즈가 입을 맞추자 역시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하며 “죄를 지었다. 그런 이유로 지옥에 가는 건 싫다”며 그녀에게 무슬림이 될 것을 강요한다.

루이즈가 거절하자 그는 “내가 천국에 가는 게 싫어서 그러냐”고 분노하고, 루이즈는 “천국은 없다”고 단호하게 외친다. 카를 카우츠키는 “신이 도덕을 만든 게 아니라 도덕법이 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순서가 어떻든 정통 종교들의 박애정신, 도덕, 선, 인도주의, 무욕 등의 교리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교리가 첨삭을 거듭하더니 여러 계파가 생기고 거기서 본래의 선이 변질되는 게 문제다. 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에서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돌판에 십계명을 새긴다. 물론 신의 계시를 받은 것으로 설정됐지만 종교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암시한다.

이맘과 아메드는 “이렇게 가다간 이슬람교가 유대교, 기독교에 흡수될 것”이라고 한탄한다. 세 종교가 뿌리가 같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역사다. 그런데 유독 세 종교인들은 서로를 배격한다. 이네스는 쿠란에 타 종교와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쓰여있다고 가르치지만 아메드는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만약 아메드의 논리대로라면 전 세계 15억여 명의 무슬림을 제외한 45억여 명의 타 종교인, 혹은 무신론자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말이다. 그가 고무줄로 안경테를 고정시키고, 수염이 별로 없는 데도 면도를 하며, 13살 채 성숙하지 않은 심신의 소유자란 건 종교적 가치관이 미숙하다는 은유다.

루이즈가 그에게 안경을 벗어보라고 한 뒤 “벗은 모습도 좋다”고 말하는 건 비뚤어진 해석으로 인해 고착된 편견과 선입견을 벗고 세상과 대화를 하라는 의미다. 또 “난 흐릿한 게 좋아”라고 말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고정관념으로 세상과 마주하지 말고 때론 두루뭉술하게 타협, 화합하라는 뜻.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얘기다. 그녀는 천국을 안 믿는다는 걸로 봐서 무신론자다. 소크라테스는 알게 모르게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그 신비주의는 플라톤에 이르러 영혼불멸설로 완성됐으며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와 함께 기독교에 스며들어갔다고 적지 않은 철학자들은 주장한다.

자연주의 철학자 중 유신론자는 범신론에 기운다. 자연의 신비로운 힘이 신격화된 게 범신론이라고 본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신이 사람을 만든 게 증명된 건 천지창조론 등 종교와 신화일 뿐 과학에는 없다. 진화론이 깨지지 않는 한. 물론 종교에는 위로와 희망이라는 매우 긍정적 강점이 있다.

신화와 종교는 인간만이 고뇌할 수 있는 존재론에 열쇠를 제공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거해 주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질서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적이면서 지적이고 도덕률이란 미덕을 갖췄다. 정통 종교의 그 어떤 신도 이교도를 죽이라고는 안 했다. 사형제도마저도 폐지되는 추세다.

숲을 질주하는 아메드는 그릇된 해석으로 테러를 일삼는 극단주의자들의 폭주를 환유한다. 건물 지붕까지 거침없이 오르던 그가 아래로 떨어지는 건 종교를 핑계로 악행을 일삼는 원리주의자들의 결말을 의미한다. 쓰러진 채 꿈틀대는 건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으로의 진화, 진실을 깨우치는 과정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의 입에서 절로 나오는 단어는 알라가 아니라 엄마다. 그는 알라가 없다고 느꼈을까? 최소한 알라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거나 살인을 주문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것. 맹신과 본능의 진실, 화해와 독단의 가치관을 묻는 마스터피스다. 무조건 믿으라는 도그마라니! 3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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