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지난 호에 이어 특정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을 가진 이들에 대한 얘기를 이어가 보자. 과자를 못 끊는 남성, 떡으로 고민하는 여성 외 필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이는 채식을 고집하는 60대 초반의 남성이다. 1m 줄자로 허리둘레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복부 비만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즐기는 음식은 채소와 두부 등 사찰 음식류라 한다. 사찰식은 마늘·파·달래·부추 등을 넣지 않아 맛이 담백하고 정갈하며 영양이 우수하다.

여기에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기본적으로 소식을 고집하므로 건강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탁발만 안 했을 뿐이지 스님처럼 먹고산다는 그에게 필자는 본인만이 알고 있는 문제를 이실직고할 것을 넌지시 권한다. 같이 동석한 지인이 뚱뚱한 스님도 있다고 거들자 그는 면류를 좋아하는 자신의 식습관, 즉 밥보다 면을 더 선호하는 누들 마니아임을 고백한다.

맛있는 반찬이 있다면 밥과 곁들여 먹기보다 면과 같이 먹는 걸 더 즐긴다는 고백이 연이어 이어진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진대 고백남의 표정은 영 어둡다. 필자는 밀가루 옹호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면을 반대하지도 않는다. 밥숟가락 위에 김치를 올릴 것인가, 면 젓가락 사이에 김치를 끼울 것인가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의 선호와 관련된 것이니 문제 될 일이 아니다.

필자 역시 면을 즐기는 편으로 냉면과 고기 몇 점을 함께 주는 식당에서 점심 또는 저녁을 해결하기도 한다. 밥이든, 면이든 그저 한 끼 식사에 불과할 뿐이니 반찬을 쌀과 먹든, 밀과 먹든 뭔 상관이 있겠나. 더군다나 음식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시대의 흐름이 반영하듯, 쌀 중심의 식문화는 점차 쇠퇴하는 양상이다. 게다가 살찌는 음식의 대명사격인 탄수화물의 중심에 쌀과 밀가루가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데 점점 상석을 쌀이 양보하는 형국이다.

여기서 잠깐 쌀과 밀을 구분 짓는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자. 왕겨와 겨층을 벗겨내어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한 벼의 열매를 우리는 쌀이라 부르며, 볏과 밀속의 풀로 낱알을 빻아 주로 가루로 이용하는 것을 밀이라 부른다. 밥이든, 면이든 한 끼니 식사는 맞지만, 그 차이는 뭘까. 밥공기에 담겨 정형화되어 있는 밥과 달리 면은 그 양을 가늠하기 힘들며, 배가 쉬 꺼지는 특성상 많이 먹어둬야 한다는 인식도 있다.

지은 후 슬슬 퍼 담아 공간이 있는 쌀밥과 달리 면류나 가공하기 위해 치대거나 뽑아내기 위해 강제로 좁은 틈 속을 통과했으므로 치밀한 구조를 가진 농축된 에너지원이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필자에게 고민을 호소한 세 사람은 공통으로 자신의 뱃살 원인을 과자와 떡, 면에서 찾고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 쌀과 밀의 가공품들이다. 소화와 흡수가 용이하도록 가공되어 정제된 백색 탄수화물이 1차 원인이라면 그것에 소금, 설탕, 기름을 더 해 만든 가공 식품의 음용 횟수와 전체적인 양을 조절하지 못한 비합리적 식습관을 2차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3회에 걸쳐 몇 사람의 고민과 그 식습관 사례를 소개하며 원인을 분석했지만, 돌출된 결과를 법처럼 따를 수 있을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럴 필요성에 대해 필자는 회의적이다. 늘 언급하지만 인간은 기호에 맞는 음식을 먹거나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늘 자신의 주관적 신념을 가지고 신앙을 선택하듯 먹거리를 취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일이다.

우리가 자신의 박약한 의지를 탓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 우리를 유혹하는 가공 식품 업계의 현란한 전략이 있음을 간과해서 안된다. 중독성있는 강렬한 맛을 전면에 내세우고 텅 빈 공약과 같은 요란한 마케팅으로 우리를 현혹한다면 그 꼬임을 벗어나기는 영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충분히 극복할 힘이 있다. 음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양을 조절하는 능력을 지닌다면 어떤 음식이든 우리는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최종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 박창희 다이어트 명강사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동대학원 박사과정 중)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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