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소설 <동의보감>에서는 허준이 구안와사(口眼喎斜)라는 질환을 치료하는 대목이 나온다. 입과 눈 주변 근육이 마비돼 얼굴이 한쪽으로 비뚤어지는 증상이다.

조선시대 선조(1552~1608)의 후궁이면서 임해군, 광해군 두 왕자를 낳은 공빈의 남동생 김병조가 구안와사가 되었다. 궁중의사 양예수가 침으로 김병조의 얼굴을 돌려놓으며 임금 앞에서 자신의 의술을 자랑하려했으나 병자의 얼굴이 다시 돌아가자 허준에게 진료가 맡겨졌다.

허준은 침 치료보다 환자의 허약해진 위를 달래기 시작했다. 약재로 위를 깨어나게 한 연후에 뜸으로 병뿌리를 훓어내려는 것이었다. 약을 하루에 6번 다려 먹이고 뜸을 떴다. 며칠 후 환자의 얼굴은 온전한 모습이 되었고 눈알도 제 모습이 되면서, 허준의 명성이 높아지는 계기도 됐다.

허준의 치료법은 한방의학의 표리겸치(表裏兼治)이론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로도 꼽힌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 곧 표증(表證)인 구안와사를 치료하는 데 근본원인, 곧 이증(裏症)인 병자의 무력해진 위를 같이 다스려 다시 재발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한의학에서는 구안와사를 얼굴에 맞은 풍으로 보아왔다. 몸이 약해졌을 때 풍이 들어오기 때문에 허증을 치료하면서 구안와사를 통제해왔다. 지금도 구안와사 환자가 적지 않고, 한의원을 찾는 비율도 높은 편이다.

한의학의 오랜 치료전통을 감안할 때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구안와사(안면신경마비)를 비롯해 뇌혈관질환후유증, 월경통 질환 등 3개 질환에 대해 한방 첩약에도 건강보험을 시범 적용하는 것은 국민건강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의사에게 3개 질환의 첩약을 처방받을 경우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어 한의원을 많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첩약은 여러 한약재를 섞어 탕약으로 만든 것으로, 한 번 먹는 양을 보통 1첩이라고 한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이전에도 침, 추나요법 등이 건강보험에 적용됐을 때 이용자가 급증한 사례를 보았다. 한방 만족도는 높은 데 비용 때문에 그동안 주저했던 환자들이 건강보험 적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열리자 한의원을 찾았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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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통을 호소하는 여성들도 한방 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으로 한의원 진료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의학에서는 표리겸치 이론처럼 질환을 현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여러 원인을 찾고 있는데, 희로애락 등의 감정적인 요인도 감안한다.

월경통도 마찬가지다. 통증이 나타나면 진통제를 먹이는 대증방식이 아니라 감정적인 요소까지 고려해 월경통을 다스리는 게 한의학의 접근방식이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한방으로 월경통에서 벗어나는 의료 서비스를 받는 여성들도 많아 질 것이다.

이런 기대와는 달리 한방은 구안와사, 월경통을 진단할 의료기술과 장비가 없다는 일부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얼토당토 않는 얘기다. 한의사들에게 엑스레이 초음파 등을 아예 못 쓰게 해놓고 이제 와서 장비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만 좆아 무리수를 두는 주장이어서 더욱 볼썽사납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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