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심요한 감독)는 제목처럼 다소 장난기가 많지만 의외로 재기 넘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발랄한 희망을 주는 독립영화인데 웬만한 상업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다. 학점 미달로 졸업이 유예되고 계절 학기 수강 신청에 밀려 기숙사에서 쫓겨났으며 취업도 불투명한 준근(이학주).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데 장사가 안 된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통에 아쉬운 말도 못 하고 일단 강원도 양양의 민박집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를 임시 숙소로 정한다. 주로 서퍼들을 대상으로 한 민박집인데 한겨울인지라 손님이라고는 친구인 유나(박선영), 태우(신민재), 원종(신재훈) 등 달랑 3명뿐이다.

사장은 발리에 놀러 가겠다며 태우에게 제 대신 ‘알바’로 민박집을 맡아달라고 하지만 태우는 들은 체도 안 한다. 그러자 준근이 다급하게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한다. 공짜로 먹고 잘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그는 서핑을 못 한다. 사장이 곤란해 하자 세 친구들은 자기들이 가르치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양양에 눌러앉은 준근은 매일 서핑을 배우지만 실력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런 어느 날 고급 캠핑카를 몰고 유학파 부잣집 아들 성민과 그의 연인 지호가 나타난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매너는 매우 나쁜 성민은 제 혼자 즐기느라 마침 연습 중이던 준근에게 큰 부상을 입힐 뻔하고 다투게 된다.

성민은 돈 자랑을 하며 양양 출입 자격을 놓고 배틀을 제안하고 크게 자존심이 상한 준근은 얼떨결에 그걸 덥석 문다. 대결은 한 달 뒤. 준근은 세 코치의 살신성인의 교육을 받지만 실력은 안 늘고 피로와 세 선배와의 추억만 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교수로부터 면접이 잡혔다는 연락이 오는데.

일단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는 점에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장한다. 세 친구들의 다소 비약적인 언행은 웰메이드 연극이나 세련된 개그 프로그램 못지않은 재미를 준다. 광고 형식을 도입한 과장된 시퀀스도 B급 매력을 팡팡 터뜨린다.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과 고민을 담으니 완성도는 보증수표.

유나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 태우는 촬영 작가고, 원종은 입만 열면 “대기업 마케팅팀 출신”이라고 자랑한다. 준근은 전문직이거나 대기업 출신인 이 선배들이 부럽다. 제가 해 본 건 오직 ‘알바’뿐. 오직 기업에 정식 입사해 정상적인 급여를 받고 안정되게 사는 게 꿈.

세 친구도 아픔은 있다. 한국의 인터넷 개인 쇼핑몰이 무려 100만 개니 유나의 사업이 순탄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그녀는 리시가 목에 감겨 죽을 뻔했던 트라우마 탓에 서핑을 중단했지만 겨울이면 으레 친구들과 모인다. 태우는 말이 작가지 지명도가 거의 없다. 원종은 거짓말이 거의 확실하다.

이들이 한적한 한겨울에 서핑의 성지로 오는 이유는 모든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준근의 미래다. 그래서 미래의 준근은 현재의 준근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한다. 태우는 서핑을 잘하려면 파도를 볼 줄 알고, 좋은 파도를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파도는 인생의 여로의 은유.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겪기 마련인데 그게 바로 파도다. 서핑을 하기 좋은 파도도, 하기 두려울 만큼 거센 파도도, 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파도도 있다. 어느 파도(길, 방향)를 선택하느냐에 잘 살고, 못 사는 게 달렸다. “앞에 뭐가 있다고 앞을 봐? 네가 가고 싶은 방향을 봐야지”라는 민재의 충고.

처음에 준근은 “열심히 공부했는데 안 좋은 대학(지방대)에 갔고,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업이 안 됐으며, 열심히 ‘알바’했지만 나아진 게 없다”고 하소연만 들어놓는다. 그의 결론은 “결국 될 놈은 (놀아도) 되고, 안 될 놈은 (몸부림을 쳐도) 안 되나 봐요”다. 그 패배주의를 깨뜨리는 패배자들.

태우는 “어쩔 수 없다가 입에 붙었구먼"이라며 크게 실망한다. 서핑 배틀 날짜와 면접 날이 겹치자 준근은 면접을 선택하고 선배들과 갈등한다. 유나는 “넌 교수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말 거니?”라고 다그치며 “취업보다 뭘 하고 싶은지가 우선”이라며 참된 행복을 위한 삶의 진로를 가리킨다.

보더들은 다 알겠지만 보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그래서 준근은 육지에서 균형 연습을 한 뒤 새벽에 달리는 버스 안에 서서 균형 감각을 키운다. 이토록 대놓고 균형과 선택을 주제로 취하는 저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균형)과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개인의 행복)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국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다. 영국을 대표하는 사상은 경험론이다. 선험적 본유관념의 합리주의적 관념론의 대척점에 선다. 민박집 프런트 데스크의 ‘Independence day’라는 글자가 노골적이다. 수면 위를 외로이 나는 한 마리 갈매기는 균형적 중용을 찾아 사회로 나온 준근.

키에르케고르는 “개인의 주체성이 진리”라고 했고,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는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서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게끔 운명이 정해져 있다”라며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창했다. 준근에게 자립을 가르치는 유나.

태우와 원종이 갑자기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익현의 말투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유나가 성민의 ‘밉상’을 참다못해 “팰까?”라고 묻자 태우는 “네가 패면 죽어”라고 겁을 먹는 등의 유머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오마주한 음악도 참으로 재치 있다. 13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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