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남매의 여름밤’은 눈에 익은 얼굴 하나 없는 독립영화지만 김단비란 주목할 만한 신예 감독이 나타났다는 사자후를 내지르기에 손색이 없다. 병기는 이혼한 뒤 사춘기 딸 옥주, 초등학생 아들 동주와 함께 사는데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되자 여름방학만 아버지의 이층집에서 보내려 한다.

영묵은 건강이 매우 안 좋아 통원치료를 받고 있기에 아들과 손주들을 받아들인다. 고모 미정도 아버지 병간호를 핑계로 이층집에 눌러앉는다. 병기와 미정은 영묵의 병세가 날로 악화되자 요양원에 보내고 집도 팔자는 쪽으로 뜻을 모으고 옥주와 동주에게 의견을 묻지만 남매는 화내며 반대한다.

병기는 작은 승합차에 ‘짝퉁’ 운동화를 싣고 다니며 판매하거나, 배달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잇지만 안정적인 삶을 위해 굴삭기 기사 시험을 준비한다. 미정은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고 온 속내를 감추지만 남편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모든 게 드러난다. 오빠와 유산 문제로 갈등하게 된다.

옥주는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있다. 아빠의 차에서 몰래 운동화를 훔쳐 그에게 선물하고 나머지는 용돈 마련을 위해 인터넷으로 파는데 ‘짝퉁’임을 들켜 그만 지구대에 잡혀간다. 옥주가 몰래 엄마를 만나고 온 동주를 때리자 영묵이 말린다. 말은 없어도 그렇게 남매와 교감하던 영묵이 세상을 뜨는데.

로테르담 국제영화제는 관계와 감정으로 이 영화를 평가했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거기에 더해 ‘미련’이다. 처음 옥주와 동주를 만난 영묵은 그들의 인사에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다. 말 한 마디 없던 그는 나머지 4명이 마련한 깜짝 생일파티에 드디어 표정이 풀리고, 동주와 마당에 물을 준다.

콩국수를 먹는다. 병기가 “눈치 보지 말고 편히 먹어”라고 말하자 옥주는 “눈치 보는 것 아냐”라고 반박한다. 병기는 영묵에게 “애들 방학동안만 머물게요”라고 말한다. 눈치는 제가 보고 있다. 영묵은 아무 말이 없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안 남았고, 이 집의 새 주인은 아이들이란 걸 알고 있다.

플롯은 다섯 식구가 이끄는데 중심은 단연 옥주다. 첫날 2층을 자기 영역으로 선언한 그는 제 방에 모기장을 친 뒤 동주의 ‘침입’을 막는다. 그러나 미정이 오자 모기장 안의 공간을 공유한다. 미정은 남자를 많이 사귀되 제 가족을 챙기는 남자를 만나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옥주는 여자로 성숙한다.

옥주가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 집을 파는 걸 반대하는 건 집은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한 데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고 할아버지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 집은 할아버지이자 아버지고 고모며 미래의 옥주와 동주다. 그 집이 있기에 가족이란 관계가 형성되고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원래 옥주네가 살던 집은 허름한 빈민 아파트의 반지하였다. 쫓겨난 걸로 봐 병기 소유가 아닌 임차였을 것이다. 옥주는 병기에게 쌍꺼풀 수술하게 70만 원만 꿔달라고 한다. ‘알바’해서 갚을 테니 꿔달라고. 병기는 “너 충분히 예뻐”라고 소리친다. “그 돈이 어디 있니”라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다.

가족의 관계에 대해 병기와 미정보다 오히려 옥주와 동주가 더 잘 알고 잘 관계한다. 옥주는 엄마를 만나고 온 동주를 때렸다. 할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 가고 아빠와 고모가 병원에서 밤 새던 날 남매는 라면을 먹는다. 옥주가 폭행을 사과하자 동주는 “우리 싸운 적 있나? 기억 안 나”라고 말한다.

그렇게 끈끈하게 관계를 맺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사춘기를 달뜨게 만든 남자 친구는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의 발에서 신발을 빼앗은 뒤 자전거 페달을 밟음으로써 열과 부아를 식힌다. 자신은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면서 동주가 그의 오디오를 만지는 건 막았었다.

신중현이 쓴 ‘미련’은 초기 식구들이 이동할 때 임아영이 부른 초월적 허무주의의 분위기로 흐른다. 영묵이 떠나기 얼마 전 늦은 밤 계단을 내려오던 옥주는 발걸음을 멈춘다. 거실 오디오로 장현의 ‘미련’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영묵을 발견한 것. 그의 얼굴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흘렀다.

옥주는 등을 돌려 계단을 오르더니 영묵이 안 보일 즈음의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영묵은 인생을 깨달았고, 옥주는 그런 할아버지를 깨달았다. 세 식구가 앉아 밥을 먹는다. 병기는 “찌개가 싱겁지? 아까 짠 듯해서 물을 넣었더니 도로 싱거워졌네”라고 말한다. 아등바등해봐야 거기서 거기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결정론적이다. 인생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는. 심지어 기계론적이다. 찌개를 한 숟갈 뜬 옥주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오열을 하며 밥상에서 벗어난다. 인생 별 것 없다는 숙명론. 그녀는 어른이 돼간다는 게 뭔지 알고 있다. 미정은 자신의 추억이 한낱 꿈에 불과했다고 한다.

옥주는 자신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놀랍게도 엄마가 나타난다. 다시 다섯 식구가 된 그들은 동주의 재롱을 보며 단란하게 밥을 먹는다. 옥주의 얼굴에도 미소가 흐른다. 엄마를 배척했던 그녀였지만 엄마를 받아들인다. 동주가 깨운다. 엄마가 왔다 갔다고 한다. 그녀도 꿈을 꾼다.

영묵이 갔어도 변함없는 이층집을 배경으로 김추자의 ‘미련’이 흐른다. 다만 사람과 각 유기체가 나그네처럼 왔다 갈 뿐이라는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영묵이 구닥다리 오디오를 좋아하듯 옥주는 낡은 미싱을 좋아한다. 옥주가 울리고 동주가 웃기는 보석 같은! 엄청난 신예 감독의 발견! 2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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