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69살 효정(예수정)은 유일한 혈육인 딸과 인연을 끊고 나이 든 남자의 간병인으로 일하는 조건으로 그의 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다가 시인 겸 책방 주인 동인(기주봉)을 만나 그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다. 그런데 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받다가 29살의 남자 간호조무사 중호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처음엔 이를 숨기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끝에 동인에게 알리고 함께 경찰서를 찾는다. 담당 권 형사는 처음엔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 때문에 신뢰하지 않고 효정을 치매 환자로 의심하는 가운데 수사를 시작한다. 중호는 뻔뻔하게 “합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하고 법원은 계속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수사의 흐름은 효정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나 효정과 동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동인은 고발문을 만들어 뿌리는 한편 중호가 유부남이고 강화도 펜션의 장인 집이 주소지라는 것까지 알아낸다. 효정은 동인을 마주하는 게 불편해져 슬며시 짐을 싸 전에 숙식하던 간병인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50여 편이 넘는 영화의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했던 임선애(42)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 ‘69세’로 노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칼럼을 읽은 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말미 효정의 “제 얘기가 여러 사람에게 불편할 수도 있다”라는 글처럼 결코 편하게 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용기 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뒷글처럼 우리는 살아있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는 성폭행 피해 수사나 재판 과정의 2차, 3차 피해에 대한 고뇌에 집중하는 문제의식이 고매하다.

효정과 동인이 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할 때 강 형사는 둘 사이를 묘한 시선으로 보며 “부부 같진 않고”라고 말한다. 동인이 “동거인이요”라고 일갈하자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강 형사는 수사가 진전이 없자 마지막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질 신문을 시도하지만 효정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강간당한 사실에 치를 떠는 효정이 밀폐된 공간에서 중호와 마주앉고 싶을까? 대질신문 자체가 제2의 성폭행인 고문이 아닐까? 왜 판사, 검사, 경찰은 그런 수사나 재판이 피해자에 대한 가해란 걸 고려하지 않을까? 작품이 집중하는 지점은 선입견(혹은 편견)과 개연성, 유심론과 실재론의 충돌이다.

효정은 오십견과 관절염 때문에 다른 운동을 포기하고 수영에만 집중해 몸매가 좋다. 게다가 패션 감각도 있다. 가해자인 중호는 훤칠한 몸에 잘생겼다. 감독의 영민함이 돋보이는 캐스팅이다. 누가 봐도 중호는 40살이나 많은 할머니를 강간할 스펙이 아니다. 그런데 효정은 나름대로 매력을 갖췄다.

법원의 중호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가 개연성이다. 전술한 조건이 배경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69살 할머니를 여자로 안 보고 그냥 할머니로 본다. 그걸 보편성이라고 우기지만 선입견이고 편견이다. 개연성의 사전적 의미는 절대적으로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는 성질이다.

보편성은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하는 성질이다. 그렇다면 개연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보편성은 아니다. 확정 판명도 아니다. 즉 개연성 자체에 그게 아닐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아이러니다. “개연성은 논증을 지배하지만 정신의 반성을 통해 수정된다”고 쓴 데이비드 흄은 시대적 흐름을 읽는다.

감독은 효정이라는 ‘할머니 여자’를 통해 유명론과 실재론의 대결을 재현한다. 과연 효정은 여자라는 정체성만 가진 곧 죽을 노쇠한 육체인가, 그래도 아직은 매력이 남아있는 효정인가? 인트로에서 수영하던 효정은 성폭행당한 후 수영장 라커룸에서 자신의 몸매를 칭찬하는 아줌마들에게 화를 낸다.

이 시퀀스는 관객들에게 효정에 대해 유명론이냐, 실재론이냐를 묻는 의도를 담았다. 이는 곧 보편주의(플라톤, 보편)와 개체주의(아리스토텔레스, 개별)의 문제다. 보편주의는 보편자(전체)를 개별자(개인)보다 상위에 둠으로써 개인은 전체와의 관계에서만 그 존재의미를 가진다는 구조주의적 입장이다.

효정은 동인의 핑크색 셔츠를 다림질하다 태운다. 동인은 그 색이 자신에게 안 어울렸는데 잘됐다고 한다. 수사가 불리해지자 효정은 동인의 집을 떠나며 핑크색 셔츠를 마지막 선물로 남긴다. 이름이 동인인 건 효정의 행동의 원인이란 의미다. 동인을 떠난 건 이제 스스로 동인이 되고자 하는 의도.

동인은 아내와 사별했다. 아들 현수는 변호사인데 아버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효정 사건을 외면한다. 다 이유가 있다. 엄마의 기일을 으레 알고 있으려니 하고 불쑥 나타난 현수는 미처 몰랐던 아버지에게 실망해 “이 집의 그릇 하나까지 저나 엄마 뜻이 들어간 게 어디 있어요?”라며 제사를 가져간다.

그렇다. 동인 역시 여성에 대해, 젊은 세대에 대해 가해자였다. 그는 나중에 비로소 효정에게 “의심해서 미안해요”라고 사과한다. 남자는, 기성세대는, 이 사회는 여자에게, 젊은이에게 불친절하다. 위압적이고, 패악하다. 동인은 효정에게 지금 숙소에 외풍은 없냐고 묻는다. 이 사회는 여자에게 외풍이다.

흄은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독단에 빠지게 되고, 순수한 경험주의는 터무니없다고 해 칸트가 경험론과 합리론의 화해를 시도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뤼크 페리는 “인간의 본성이란 없다”고 했다. 연속성의 원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지배한다. 인간 사회에 상궤란 없고 변한다는 진리. 20일 개봉.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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