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강변 봄버들 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가노라~’

▲ 효사정에서 바라 본 동작대교 너머 해뜨는 풍경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한강대교를 건너 노량진 가는 길에 노랫소리가 구슬피 들린다. ‘노들강변’이라는 경기민요다. 세마치장단에 맞춘 일제강점기 대중음악인 신민요다. 요즘 대세인 트롯이 전국을 강타하듯 100여 년 전 민요풍 음악이 낯설지 않다. 왜일까?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힘든 삶 속에서도 즐겁게 흘러나왔던 노래다. 스마트폰 대신 라디오에서 가장 구성진 노랫소리가 경기민요로 세상에 나왔다. 세상사 한을 한강에 띄워 보내는 심정인데, 노랫말과 달리 음악은 경쾌하니 인생을 달관한 걸까?

용산구와 동작구 사이 노들섬이 있다

▲ 한강변 흑석동 언덕 위에 있는 효사정 현판

경기민요에 노들섬이라. 한강 한가운데 용산구 이촌동을 지나 동작구 노량진을 가는 길인데 경기민요라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노들강변의 노랫속에 노들은 노돌(老乭)이고, 노량진의 다른 말이니 노량 나루터가 있던 강변이다. 일제강점기 노량진까지 한강철교가 놓여지기 전에는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곳이었다. 한양도성 밖 성저십리 용산에서 한강을 건너니 경기(京畿)다. 배를 건너 노들섬을 지나면 서달산 보이는 언덕에 별서가 있었다. 한강 건너 둔지산과 목멱산 그리고 응봉이 보이고, 한강을 거슬러 송파나루에 해 뜨는 모습도 보였다. 압구정이 있기 전 한강 건너 경치가 가장 좋은 누정이 있었으니 효사정(孝思亭)이다.

한강변 언덕에 가장 아름다운 누정, 효사정

▲ 한강변 흑석동 언덕 위에 있는 누정_효사정

효사정은 600여 년 전 한성부윤 노한의 별서로 한강변 언덕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추모한 공간으로 쓰였다. 그 당시 효(孝)의 상징으로 한강을 끼고 있는 누정 중 경관이 가장 뛰어났으니 아마 태종 이방원과 동서간이라 동네의 실세였을 것이다. 그리고 강희맹의 효사정기(孝思亭記)와 문신들이 효사정과 관련된 시문을 남겼으니 오늘날 효사정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비 그친 언덕 위에 오르니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햇살이 강물에 출렁이고 바람 소리 따라 날라가는 왜가리는 한 폭의 그림이다. 한강 너머 빌딩 숲 사이로 삼각산과 목멱산이 보이고, 강물 따라 롯데타워와 남한산성까지 보이는 높지 않은 언덕이 도성 밖 별천지다.

▲ 한강변 흑석동에서 태어난 그날이 오면 시인이자 계몽운동가_심훈의 상

언덕을 내려와 노들섬을 보니 한강을 잇는 다리가 보인다. 과연 한강을 잇는 다리는 몇 개인가? 눈앞에 보인 다리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로 100여 년 전 서울과 경기를 잇는 철로이자 대로이었다. 세상이 바뀌는 순간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와 만고풍상 비바람이 강물을 따라 흘러갔다. 물은 거슬러 흐르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모든 물을 받아들이니 말없이 유유히 흘러갈 뿐이다. 노들강변 바라보며 효사정을 내려오니 심훈 선생의 상과 ‘그날이 오면’ 시가 큰 돌에 새겨져 있다. 한강변 흑석동에서 태어나 시와 소설을 쓰고 3.1운동과 계몽운동을 하였다. 청년 심훈의 발자취를 한강이 보이는 이곳에서 만나니 노들섬이 또 다른 눈으로 보인다.

▲ 용양봉정저에서 바라 본 한강변_한강철교와 원효대교

한강 다리가 없었다면 이곳은 어떻게 건넜을까? 한강변 오솔길을 말없이 걷다가 상도터널 가기 전 오래된 기와집으로 들어간다. 비 그친 새벽녘 인적이 드문 시간 돌계단 올라 현판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수없이 지났던 길목, 차량과 차량 속에서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공간이다. 책 속에서 보았던 꿈에 이야기했던 배다리의 실체를 상상케 한다. 한양도성 안에서 아버지 사도세자를 만나러 가는 기나긴 행차길, 숭례문 나와 용산강 따라 노들섬에 배 400척 줄을 달고 있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배다리를 놓아 건넜던 정조의 모습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배다리를 건너기 전 잠시 머물던 쉼터, 아니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전 마음을 추스렸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참배 후 한양도성으로 입성하기 전 마음을 다잡았던 기와집이 바로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이다.

정조 어가가 머물던 효의 공간, 용양봉저정

▲ 정조가 수원 현륭원 가기전 어가가 머문_용양봉정저

용양봉저정은 용이 머물던 곳, 말이 머리를 서서히 치켜들 듯 봉황이 두 날개를 사뿐히 펼 수 있는 한강 변 작은 언덕에 정조가 머물던 누정이다. 효심이 지극한 아들은 왕이 되어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묘인 수원에 있는 현륭원을 찾았다. 어가가 머물던 쉼터,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들었던 힐링공간,한강이 보이는 노들강변에 주정소(晝停所)가 애뜻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한강변 언덕에 효심이 가득한 효사정과 용양봉저정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평상시 함께 못한 점심을 이곳에서 나 혼자 먹어야겠다.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삼 망령으로/ 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경기민요 노들강변 소리를 박부용 원조 가수 노래로 들으며 걷는다. 노랫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흘러가는 강물 소리가 노들강변을 느릿느릿 걷게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 차에서 내려 시나브로 걸어보면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역사와 문화가 가득 넘치는 거리,
용산구와 동작구가 노들섬으로 이어진 도시,
우리 동네의 숨겨진 유래를 찾아 시간여행 해 보실까요...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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