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도 양성평등하게 [김주혁 칼럼]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l승인2020.08.25l수정2020.08.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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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주필의 성평등 보이스] 세계적인 여성학자 바바라 G. 워커가 여성의 시각으로 새로 꾸미거나 창작한 동화 10여 편을 묶었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를 패러디한 ‘흑설공주’에서 계모인 왕비는 백설 공주를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오히려 위기에 빠진 공주를 돕는다. 왕의 사위를 꿈꾸는 신하 헌터경이 공주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왕비의 시기심을 부추기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흑설공주가 가장 아름답지. 젊은이가 늙은이의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죠. 새 엄마가 어째서 전처의 딸들을 미워해야 한단 말입니까? 왜 우리가 불필요한 싸움에 말려들어야 하죠?” 흑설공주는 피부가 눈처럼 하얗지만 머릿결은 칠흑같이 검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여자 주인공은 예쁘면서도 야수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온전한 인간으로 변신시켜주는 헌신적인 아내 또는 어머니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패러디한 ‘못난이와 야수’에서는 여 주인공이 곱사등에 다리가 구부러지고 뚱뚱하고 곰보이며 머릿결도 뻣뻣한 모습이지만 마음씨만은 고운 것으로 묘사된다. 야수도 흉측한 외모가 아름다운 왕자로 변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 두 사람은 비록 못난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잘난 외모가 주는 자기도취나 오만함 따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여는 글에 담겨 있다. ‘아름다운 여자를 제외하고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기존 동화들은 매우 위험한 메시지를 전파한다. 이런 동화를 읽으며 자라는 여자 아이들은 외모가 재산이며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은연중 받아들이게 된다. 여성에게 못생겼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의 동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외모를 무기 삼아 왕자님과 결혼을 꿈꾸지 않는다. 재기발랄하고 긍정적이며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멋진 여성들이 나온다.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동화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산물이다. 과거에 지어진 동화에는 가부장제 당시의 성 역할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반영돼 있다. 여자는 예쁘고 날씬해야 하고, 집안일과 아이 돌봄은 여자의 몫이고 등등.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동화도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다시 쓰고 읽어야 한다. 양성평등은 남녀의 차이는 인정하되 성별을 이유로 차별은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도 새 창작 동화 뿐 아니라 기존 동화 개작도 많이 나와서 어릴 때부터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도록 여건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우리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은 남자가 여자의 목욕 하는 모습을 함부로 훔쳐보고(관음), 옷을 훔치는(절도) 것이 범죄행위인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인식시킨다. 날로 늘어가는 몰래카메라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출근하고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레고 장난감이 출시되는 등 장난감 업계도 성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아이일수록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사실도 실험 결과 밝혀졌다.

우리 사회에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차별이 아직도 만연하다. 어릴 때부터 거기에 익숙해진 성인들은 잘 느끼지 못한다. 4월 13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제작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홍보영상 ‘설현의 아름다운 고백’이 논란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해당 영상은 화장품과 스마트폰은 꼼꼼히 고르면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투표를 엄마의 생신으로 비유해, 바쁘다는 이유로 엄마의 생신에 참석하지 않는 여동생을 나무라는 오빠의 모습도 나온다. 여성들이 외모만 중시하는 것처럼 성역할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성차별적인 내용이라고 여성단체가 지적했지만 선관위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도적인 성차별도 문제지만 무의식적인 성차별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우리 모두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인식을 바꾸고 더 민감해 지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그 노력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myhappyhom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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